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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 한미사진미술관

출생

1955, 서울

장르

사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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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 RT015 BHM, 2012

젤라틴실버프린트, 132 x 1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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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헌

민병헌의 작품을 마주하면 ‘희미함’이란 단어가 맨 처음 떠오르고, 흐르는 시간, 지금은 사라져버린 잊혀졌던 감각들이 느껴진다. 그는 동양적이며 동시에 서구적 회화 전통에 기반을 둔 채 ‘자연’을 주제로 일련의 시리즈로 작업을 꾸려나간다. 눈 덮인 산야, 안개 낀 도시와 들녘의 하늘, 갈대 숲, 어둠, 나신(裸身)등 실재 현실의 풍경은 그의 ‘순간 포착’으로 담겨지며, 이어서 섬세하고 덧없는 감동의 추상화로 발현된 독특한 이미지로 창조된다. 
민병헌의 관심사는 자연의 변형, 그 변신으로서, 예를 들어 식물, 비, 바람, 폭풍, 눈, 피어나고 사라지는 안개 등에 대한 작가만의 재해석을 통해 작업에 이르는 것이다. “자연이 거기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거기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거나, 모습을 바꾸면, 우리는 그제 서야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오로지 결핍의 순간에만 다시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대단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 사소한 것,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자하며, 그것들을 정말 몸소 느낀다”. 이렇게 민병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음미하고 느끼며, 자연과 일체가 되는 자신만의 열정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민병헌은 오직 흑백으로 작업한다. 비단처럼 윤택하고 은은한 회색조와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은 시적이고 세련된 그의 창작세계를 한층 더 강화시키며, 마치 한 폭의 수채화나 서예 작품을 보는 듯 거의 동일한 미감을 뿜어낸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을 “새벽녘 입안에 남은 전날 밤 꿈의 맛과 닮았다”고 표현한다. 모든 것이 그에겐 감각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 그 순간을 프린트 과정에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란 것이다. 그는 1998년 이래로 서울 집에서 양평군 서정면 문호리 작업실을 오가며 <안개> 시리즈를 구상했으며 마침내 완성했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 강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그의 길을 뒤덮고, 식물과 가옥, 자욱하고 빽빽한 하얀 운무 속에 파묻힌 산봉우리를 연기처럼 채운다.
민병헌의 <안개> 시리즈 작품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엄밀하게 말한다면, 구성의 단순함, 형태의 순수함, 미니멀리즘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색채와 관련해서, 흔히는 밝은 회색에서 순수한 백색, 그리고 드물게는 진한 단색조 회색을 추구하며 그 색조들의 단조로움을 지키기 위해 일종의 원근법과 콘트라스트의 부재로 특징지을 수 있다. 물론 그의 <안개>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온통 세밀한 것들로 넘쳐나며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져 버리는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갖가지 감각들의 세계로 감상자의 시선을 인도한다. 
공학을 전공한 뒤 독학으로 사진을 익힌 민병헌은 그 무엇보다도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처럼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사진의 기록적 역량에 작업의 가치를 두고자 한다.(1970년대 한국의 사진가들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일단 처음 기록된 이미지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실재를 훼손하기 때문에 이미지를 다시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민병헌은 ‘순수 사진’의 신봉자로서 이미지에 대한 일종의 추상화를 지향하며,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한 시리즈에서 다른 시리즈로 나아가며 서로를 융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눈 덮인 작은 골짜기는 여성의 나신을, 산 정상은 하늘을 향한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눈보라는 숲을 덮으며, 운무는 나무 꼭대기에서 하얀 장막을 드리운다. 반면  민병헌은 최초의 음화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지만, 현상 시에는 기꺼이 손을 대어 교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사진을 찍었을 때 자신이 보았던 것, 느꼈던 감각, 그러나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느낌을 생생히 재생시키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은 무한히 작은 것, 만질 수 없는 어떤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작가는 자신이 어떤 것을 느끼는 찰나를 기다리고, 자신의 무의식이 명령하는 그 순간 마침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다시 암실로 돌아와 현상과 인화작업을 거치며 그 찰나의 경험을 재차 반복하는 것이다. 민병헌은 프린트의 색조가 그의 첫 감동을 정확히 반영해줄 그 순간 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추상적 형태, 뒤엉켜 변형된 시각, 을씨년스런 풍경, 무의식의 역할 등은 우리에게, 우리 서구인들에게 초현실주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민병헌은 유럽의 초현실주의(surrealisme)에 특별한 관심을 둔 적이 없다고 말한다. 특히 그의 <안개>시리즈는 브라사이(Brassai)의 <파리의 밤> 모습을, 안개 속의 네이 장군(le Marechal Ney) 상을 떠오르게 하는데, 브라사이는 스스로가 초현실주의자로 비춰지는 것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작품에 있어서 초현실주의란 시각에 의해 환상적으로 표현된 현실일 따름이다. 나는 사실을 표현하려고만 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그 이상 초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예술 사조나 예술 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던 민병헌 역시 이 문장을 공감할 것이다. 결국 민병헌의 작품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듯, 시간의 밖에 놓여 있는 듯,  사적 은밀함 속에 격리된 듯 오늘날 한국 동시대 미술의 일부가 된 대형 사이즈의 ‘조형적 칼라 프린트의 해일’ 주변에서 자신을 방어하며 키워나가고 있다. 극도의 섬세함으로 이뤄진 민병헌의 작품은 자연을 관찰하는 인간의 감성이 더해져 낭만적, 서정적 흔적을 간직한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메아리로 울리며, 살아있거나 잊혀진 감성들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평화의 안식처로서 명상과 내적 성찰의 순간을 제공한다.

엠마누엘 드 레코테 (파리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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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상상의 환상곡

  우리는 개인의 감성적 경험이 서사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측량 가능한 공간의 시대를 뒤로 하고 개별화된 시공간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 시절에 이른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활용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경험을 차별화하는 감성이 행동을 변화시키기에 이르렀으며, 무엇에 어떻게 몰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문제가 되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직접적인 감성적 소통의 매개로 활용되어 왔다. 처음 사진이 등장했던 19세기에 움직임을 담은 사진이 시간을 재구성하였다면, 그 다음 세기에는 세밀한 입자와 극명한 심도가 우리 시야의 공간을 분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시대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여 변주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섬세한 감성의 표현이라는 면에서 민병헌은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만큼 강한 집중력과 흡입력을 보여왔다. 그는 차별적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공감시키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톤의 재현은 흑백사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체 특정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만이 느끼는 자연에 대한 찬사이고, 말로는 이루기 힘든 타인과의 교감이다.

  풍경에 대한 예술적 해석이 원초적인 시공간 경험의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실존적이라는 지적은 민병헌의 경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별거 아닌 풍경>으로부터 시작하여 <섬 Island>, <잡초 Weeds>, <깊은 안개 Deep Fog>, 그리고 <Snow Land>와 <숲 Trees>에 이르기까지 민병헌은 전형적인 자연의 소재들을 다뤄왔다. 평범한 소재를 사유화(私有化)하기 위해 그가 고집하는 방법은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 프로세스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듯 하얗게 부서지는 찬란한 나뭇잎, 부드럽게 번지듯 스며드는 짙은 어둠의 숲, 심연(深淵)처럼 온 세상을 감싸 안은 짙은 안개를 담은 흑백의 계조는 소재를 뛰어 넘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에게 순수한 시각적 즐거움을 주어왔다.
  그의 작품에서 흑백의 계조는 평범과 비범, 일반과 개별을 구분하는 중요한 표현요소이다. 흑이나 백으로 치우쳐진 영역에서 세밀한 밝기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을 쓰거나 중간 회색을 기준으로 풀스케일(full scale)의 풍부한 계조를 선택하거나, 그는 온전하게 자유롭다. 자연 앞에서 그가 느낀 바에 따라 톤을 조정하는 것일 진대 그 미묘하고 섬세한 몰입의 경지가 감탄스럽다보니 자유롭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사진이 흑백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회색조로 전환된 세상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육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병헌의 흑백사진에 담긴 자연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사진 앞에만 서 있어도 작가가 겪어낸 엄밀한 선택의 순간들이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자연을 마주하고, 나만의 자연으로 만들기 위해 교감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재단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고, 인화지 위에서 한 번 더 은염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한 장의 사진마다 생생하다. 
 
  그의 사진에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민병헌의 작품을 통해서만 감지되는 지점이 있다. 사진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특정 밝기의 회색이 마치 하나의 층을 이룬 것처럼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인데, 화면에 고르게 퍼져 있는 그 한꺼풀이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감싸 안는다. 그것이 흩날리는 눈발이거나 구름이 사라진 하늘이거나 혹은 시야를 가로막은 안개이거나 물보라가 이는 폭포의 물줄기이거나, 그 회색으로 인해 현실은 멀어지고 상상이 다가온다.
  <폭포 Waterfall> 연작 중의 많은 작품은 수직으로 하강하는 물줄기를 중립적인 셔터 스피드로 촬영해서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운동감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폭포사진들은 셔터를 길게 늘려 물의 흐름이 과장되었거나 반대로 셔터를 아주 짧게 끊어서 극적으로 고정시킨 것들이었지만, 그의 사진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폭포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딱 ‘중간’으로 흘러내린다. 운동감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물줄기에 집중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물의 흐름과 반대로 내 몸이 끌어올려지는 듯한 착시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커튼처럼 드리워진 물줄기를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물줄기 그 자체를 사진의 온전한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함에 몰입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물줄기 사이에도 회색이 자리잡고 있다. 정서 혹은 가치 판단으로부터 중립적인 좁고 세밀한 범위의 회색층이 만들어낸 엄정성이 정적인 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몰입과 상상은 감각으로부터 일깨워질 때 가장 생생한 체험이 된다. 오감으로 체험된 몰입은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로부터 자유로운 상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병헌의 작품 앞에서 “이 폭포는 여름에 찍었을까, 겨울에 찍었을까?” 또는 “저기는 경상도일까, 강원도일까?”를 궁금해 하는 감상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폭포의 부분을 과감하게 떼어내는 프레이밍으로 본래 찍혀진 때와 장소로부터 사진을 분리시켰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거품이 이는 장면을 담은 작품의 경우, 심지어는 폭포라는 소재는 저 멀리 있다. 몽실몽실한 거품의 형태는 가변적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촉각으로 기억한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금세 물거품이 손끝과 발끝을 간지른다. 이러한 촉각적 경험에 청각적 감흥이 더해지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갔던 소박한 폭포나 순교자가 몸을 던지던 영화 속의 장엄한 폭포, 홀로 득음을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은밀한 폭포가 모두 나의 것이 된다.
  민병헌의 사진은 폭포 이상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 평면의 흑백 사각 프레임에 옮겨진 시각적 요소들이 입체적인 감성 체험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것은 직접적인 감각을 통해서 생생하고 강렬하게 뇌를 자극하는 현재진행형의 상상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폭포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사진에 담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겠지만, 그의 작품들이 지니는 힘은 오히려 그 어느 곳에서도 작가, 즉 관찰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에서 나온다. 관찰자는 화면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언제라도 우리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며 상상의 세계의 주인이 되라고 청한다. 따라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매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 속에서 감각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감각적 몰입을 통해서 내적 상상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시각으로부터 시작되어 촉각과 청각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 경험이야 말로 아이디어와 개념이 우선하는 작품 사이에서 민병헌의 풍경사진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일 것이다. 과거의 민병헌 작품은 광택이 없는 인화지를 사용해서 회화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었는데, 근작들은 대부분 표면 광택이 분명한 인화지에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기술적 엄정성이 더욱 두드러져 심지 굳은 기개까지 느껴진다. 그를 쉼 없이 도전하게 하는 사진, 자연과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스타일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치열함을 아는 사람만이 넘어섬의 경지를 논할 수 있지 않겠나. 그가 만든 물 속에 세계가 있고, 또 내가 있다.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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