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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 사비나미술관

출생

1955, 의령

장르

회화, 설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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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 개인전_정복수 기획
참여작가
정복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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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정복수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인물화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번뇌와 육체의 허망함’에 대한 기록이요 ‘영원히 고독한 인간의 심리 지도’이다. 그의 인물화를 보면, 철학적 인간상과 생물학적 인간상 사이를 오가는 불확실한 사색들이 이미지로 형상화된 것 같다. 그의 인물화의 일부는 자아에서 인식된 자기를 복제하거나 인용한 것이며 나머지는 타자를 흉내 낸 것이다. 그 결과 자기와 타자가 구별되지 않는 혼란을 사색하고, 타자의 번뇌와 허무함이 자기의 것으로 동일시된다. 그래서 그의 인물화는 거의 모두가 누드로 그려지는데, 누드란 자체가 인간의 본질과 순수성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어서, 자타가 하나로 뭉치는 보편적 인간상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인물화는 여전히 몸의 추억에 대한 기록이요, 몸의 생리적 실존에 기초한 명상들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복수의 인물화 ; 가면 쓴 인간상의 실존

전통 인물화는 오늘날 열등한 장르가 되었다. 인물화의 한 장르인 초상화는 절대 지배자의 초상화 덕택에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기도 했지만, 황제의 초상화나 임금의 어진은 이제 옛말이다. 서구에서는 꽤나 오래 동안 인본주의 휴머니스트의 덕택으로 신격화된 인물상이 그려졌다. 그들은 인격을 존중하며 인간의 숭고한 면을 내세워 모든 여성의 인물은 비너스를 닮아갔고, 남성은 제우스나 군신 마르스를 닮아갔다. 그랬던 인물화가 20세기에 접어들어 풍경화나 정물화, 추상화에 밀려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물화는 오래전부터 사군자나 수묵산수화보다 열등한 장르였다. 인물이란 그저 자연의 일부로서 바위나 계곡에 무쳐서 무위자연의 도를 좇는 미미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래도 거기엔 선비나 군자의 이상적 삶을 지향한 동양식 휴머니즘이라도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현대의 인물화는 동서를 막론하고 왕년의 인물화다운 인물화에 염증을 느꼈다. 현대의 인물화는 ‘외형적 인물’ 대신 ‘내면적 인간성’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인물대신 인간성
전통 인물화가 시들해지긴 했어도 그 맥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 팝아트를 풍미했던 앤디 워홀의 인물 초상화(마린린 먼로, 리즈 테일러, 모택동 등)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유럽의 프란시스 베이컨과 루시안 프로이트의 인물 초상화들이 명성을 날린다. 그 말고도 자화상을 주제로 한 많은 현대적 작품들이 유화나 사진, 비디오를 매체로 발표된다. 하지만 이 다양한 인물화의 갖가지 특성들은 대체로 근대의 인물화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근대의 인물화들이 인물의 외적인 됨됨이에 초점을 두었다면, 현대의 경우는 삶의 깊은 체험으로부터 느껴지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자하는 경향이 강하다. 적자생존 사회에서 서로 살아남으려는 인간 자체의 본성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겨냥한다. 사회 생물학자들이 동물과 곤충의 생리와 생태를 분석하듯이, 현대 인물화가의 섬세한 화필은 사람들의 심리를 해부하는 예리한 칼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육체를 탐사하는 초정밀 카메라가 되는가 하면, 무언인가에 놀라 움츠리거나 사르르 떨리는 몸의 감각을 도표로 작성하는 섬세한 촉이 되기도 한다. 인체의 의학적 신비함을 형과 색으로 디자인하고, 정신과 영혼의 영역을 끊임없이 훔쳐보고 감지하고 상상한다. 타인의 분노와 기쁨을 자기 초상화에 모방해 넣기도 한다.
사실 거의 모든 것을 의인화했던 서구미술의 정통 주제는 여전히 ‘사람’이다. 삶과 죽음, 성, 권력, 정치에 대한 주제들은 모두 ‘사람’에게 딸려 온 부제들이다. 인물 초상화에서는 한 인물의 개성과 성격, 인품, 사회적 신분, 업적, 사상까지도 묘사하려했다. 인물화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추상미술조차도 인간의 내면적 정신세계와 감각적 공감대를 표현하고자 했다. 여러 면에서 미술은 인간학의 개척자이다.



가면 쓴 인간상의 실존
아주 오래전에 정복수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인물화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번뇌와 육체의 허망함’에 대한 기록이요 ‘영원히 고독한 인간의 심리 지도’이다. 그의 인물화를 보면, 철학적 인간상과 생물학적 인간상 사이를 오가는 불확실한 사색들이 이미지로 형상화된 것 같다. 그의 인물화의 일부는 자아에서 인식된 자기를 복제하거나 인용한 것이며 나머지는 타자를 흉내 낸 것이다. 그 결과 자기와 타자가 구별되지 않는 혼란을 사색하고, 타자의 번뇌와 허무함이 자기의 것으로 동일시된다. 그래서 그의 인물화는 거의 모두가 누드로 그려지는데, 누드란 자체가 인간의 본질과 순수성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어서, 자타가 하나로 뭉치는 보편적 인간상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인물화는 여전히 몸의 추억에 대한 기록이요, 몸의 생리적 실존에 기초한 명상들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점에서 실존주의 인물화가 베이컨과 통하는 일면이 있다. 그의 인물화는 사람을 감각기능과 신경계통을 지닌 살덩이로 압축했다. 그의 인물화들은 오직 그런 살코기로서의 부패하는 육체, 감각기능과 신경계에서 자극하는 성적 쾌감과 그것에 반응한 목구멍의 외침에서 생존의 실존을 보았다. 그런 그의 인물화에서 가면이란 있을 수 없으며, 신체의 가면과도 같은 피부조차 벗겨져야만 했다. 그리하여 점점 더 신경계만 남는 동물성이 돋보이게 된다. 그러나 정복수의 인물화는 그것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한다.
오히려 정복수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그의 인물화는 어쩌면 가면 때문에 인간성이 두드러지는 지도 모른다. 사실 타인에게 얼굴을 가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도 가리는 것이며, 가면에 대한 도덕적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 가면 속의 정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진짜 얼굴이 가면 뒤에 있어 사뭇 인간적이다. 우리들의 진짜 얼굴을 찾을 때까지 그의 인물화는 계속될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의 참된 전체와 부분이 환하게 다 보일 때까지…

윤익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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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비망록: 운명과 욕망의 주체사이

정복수는 79년도 개인전에서부터 얼굴과 벌거벗은 인체에 내장을 그리는 <몸>에 관한 주제로 계속 작업해 오고 있다.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육체에 내장을 그리고, 민머리의 단순한 얼굴에 눈, 코, 입, 귀를 입체적으로 꼴라주 한 것처럼 그린다. 캔버스 화면배경은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운명처럼 공허하게 비워두고 그 안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존재자체를 인체로 표현하며 때때로 언어를 삽입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안 보이는 부분을 드러낸 생체 해부학 도판이나 동양의학에 사용되는 경혈도를 연상하게 한다. 정복수는 탐욕과 배설의 인간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육체라고 말하며 얼굴부위와 몸의 안과 밖 부분을 도구처럼 절단하고 조합하여 인간이야기들을 그려 낸다. 그의 작업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하며 은유로 표현된 형상으로 부터 작품 제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사유와 표현의 이해를 돕는다. 그의 상징적이며 은유적 표현의 회화는 문자와 언어의 시지각과 함께 총체적 감각으로 소통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2006년에서부터 2011년까지 제작된 유화, 조각, 설치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이전의 드로잉성향이 강한 작업과는 달리 다양한 질료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인조 꽃, 인형, 마스크 등의 오브제들이 회화의 화면에 마티에르로서 사용되고, 자유로운 터치와 밝은 색채가 시대적 인간형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장의 추억 2010년작>은 몸의 내장으로부터 외부소통과의 관계를 보여주며 예전 작업과 연결고리를 갖는다. 벌거벗은 중년남성은 튀어나온 배를 중심으로 얼굴을  위로 하고 구불구불한 곡선의 내장들을 내 보이며 화면 중앙에 서 있다. 외부로부터 타인의 시선(눈)이 그려진 뱀 같은 관은 남자의 가슴(심장)으로 파고 들어가 내장에 영향을 미치고, 가장 굵은 소화기내장과 연결된 혀끝으로 말의 파편들이 화려한 색점들이 되어 쏟아져 나온다. 이 색채 줄기는 화면을 마구 흔들며 무채색 연필로 문질러 그린 표면적 육체 안의 내장들에게 쾌락을 제공하고 영향을 미친다. 귀로부터는 들어오는 소리는 가늘고 깊은 소화기관을 거쳐 항문으로 연결된다. 인체의 눈은 외부의 화려한 색(욕망)의 파편들을 보고 즉각적으로 뇌에게 인지시키며 군데군데 잠정적 욕구를 만들며 중심인 등을 떠받고 있다. 이렇게 욕망은 남자를 관통하며 생산과 소비로 순환되고 있다.  <세상에 하는 말 2008년작>에서 보면 남자는 화면중앙에 수직으로 배치되는 전형적인 남근적 형태로 유아독존을 부르짖는다.     붉은 반점의 살갗을 가진 남자는 점잖은 베이지색에 꽃무늬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발기된 작은 여러 개의 페니스들을 슬며시 내보이고 있다. 그의 주변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들로 남자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욕망을 표출하지 못한 싸구려 인생임을 알 수 있다. 정복수가 표현하는 남자들은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과 큰 몸통을 갖고 있지만 하체는 부실해 자신의 이야기만을 내지르며 살아가는 거만하고 고집스러운 허풍쟁들로 그려진다. 반면 자궁 안의 아이를 가진 여성은 합판과 골판지위에 윤곽선만을 따서 그려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되어 어느 공간에서든지 자유롭게 배치되는 평화로운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하늘로의 여행, 2008~11년작>에서의 인물은 사선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져 자유가 극대화된다. <하늘풍경, 2009~11년작>은 우주의 별자리 같은 모성으로부터 아기가 태어나 현실세계에서 인생이 시작되는 탄생의 드라마를 그린 것이다. 회화와 3차원 입체의 작품이 함께 설치되어 우주, 자연으로부터 땅으로 내려온 인간의 여정을 보여준다.  정복수는 <존재의 구조2003~10년작, 2004~2010년작>시리즈에서 인간이 파편들로 끼어 맞춰지는 즉물적 욕망의 실체임을 보여준다. 잘린 얼굴, 몸, 다리는 기관의 파편이 되어 작은 캔버스에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고, 그것들은 이어지면서 한 화면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배경에 존재하는 마네킹 같은 인체는 머리나 몸통 안에 작은 부분들이 포함되거나 빠져 나오며 서로 맞춰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전략기구의 기관으로 작동한다. 특히 얼굴은 종교, 권력, 경제 안에서의 매커니즘적 도구로서 언제나 상황에 따라 바꿔 끼게 되는 기만의 기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존재의 초상 2007~11년작>, <기념일, 2011년작>, <대화의 기술I, 2011년작>에서 한 가지 표정이 아닌 정면, 옆, 위, 아래 다 다르게 그린 가면을 화면에 부조처럼 붙여 표현의 확장을 시도한다. 
   
화면에서 가면을 쓴 인간은 정면을 향해 있는데 원래 얼굴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타인을 관찰하는 관음증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언제든지 사회 안에서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표정을 바꾸는 소통의 기술적 도구라는 것을 그대로 재현한 작업이다. 이 시리즈들은 실제 마네킹위에 인체 내부를 그려 넣은 입체 작품으로도 보여준다. 이것은 가장 도덕적이며 심지어 신의 형상으로까지 보이는 추상적인 평면 육체와 극히 대조를 이루며 화면과 충돌하여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인생반세기를 살아온 작가의 존재론적 탐구는 사랑, 만남, 출산, 죽음이라는 인간원론에 관한 것으로 부터 종교, 자유, 정치, 전쟁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까지를 섭렵한다. 머리와 성기에 얼굴을 얹힌 <만남2006~11>, 타인의 식도가 자신의 귀로 연결된 <인연학 2006~11>, 가슴으로 담고 입으로 출산하는 <악몽-출산, 2005>,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강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웃는 여인2003~06>, 세상을 향해 다양한 표정의 얼굴로 내지르는 <세상이 2005~11>, 가혹한 삶을 참고 살아온 잿빛 얼굴과 인생을 사랑하자라는 문자를 메아리처럼 그린 <인생을 2007~08> 등의 작업에는 얼굴표현만으로 그의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얼굴 표정은 사회적 체계의 규율과 관계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기능으로 대변 된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우선 인간을 더 증오 하는  사르트르의 휴머니스트에 대한 정의처럼 정복수의 얼굴은 구토의 파편들로부터 승화된 인생을 담아낸다. <종교의 탄생 2006~2008>에서는 물질을 탐닉하는 도구인 손이 잘려 나간 해탈과 포용 그리고 사랑의 표정인 부드러운 미소만 띠고 있는 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반면 온몸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는 육체들은 <집착과 죽음>의 주제가 된다.
<자유와 혼돈 2010년작>에서의 인체의 부분들은 더욱 해체되어 화면에 자유롭게 배체되고 있다. 손은 기술의 극인 도구로, 얼굴은 언어의 극으로 서로 대조를 이루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호체계로부터 자유경쟁체제에서 생산되는 도구와 언어의 끝없는 출현은 화면을 단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들뿐이다. 반면 <낙원에서 온 편지(2008~11년작>에서 꽃 밭 위에 벌거벗고 누워있는 남녀는 평화로워 보인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보이나 선악과를 따 먹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중년의 남녀다. 남성은 발기되어 있지만 탐하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며 여성 역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다. 이 작업은 그림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찰자의 시선과 화면에 붙인 플라스틱 꽃잎 오브제 그리고 그림 앞에 설치된 나뭇가지의 직접적인 감정이입이 되는 직선적 시선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현재와 원초적 시간의 나선적 공존은 <꽃이 떨어지는 시간, 2008~11년작>에서 마네킹으로 된 인간 두상의 입체작품을 함께 설치해 대 우주적 세계 안에서의 존재론을 보여준다. 정복수는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근대와 초현대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계속 살아오며 작업하고 있다. 그의 삶에서 경험한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인간사는 더욱 성숙되고 깊은 관점의 대서사시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는 실시간으로 생중계 되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큰 충격을 주며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겪게 한다. 그리고 비이성적이며 미쳐가는 물질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자연과 우주의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의 생은 새로운 낙원이며 신화적 모델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표현적 회화로 보여 주었던 정복수의 인간 비망록은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주변에서 발견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재료로 하여 회화, 조각, 설치 등의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운명과 욕망적 존재들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김미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교수, 비평?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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