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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기, 사비나미술관

출생

1951, 충주

장르

회화, 설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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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산, 2015

플라스틱 블럭, 269 x 57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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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의 동시대적 부름, 황인기(Inkie WHANG)의 ‘디지털 산수화’

황인기는 주변 자연풍경이나 동양 고전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산수화로 동 서양,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에 서 있는 작가이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 그리고 응용물리학과 순수미술의 교육과정, 전통문화와 히피문화의 상반된 경험을 접한 황인기는 스스로 이질적인 것, 다중적 가치가 섞여 있는 기질을 작업 성향과 연결해 언급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경험은,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도 세계미술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이 가진 내적 가치와 함께 세상의 구조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양가적 척도를 작업에 자유자재로 반영하는 기저로 보인다. 그간 열린 황인기의 작품명인 <한바퀴 휙>, <바람처럼>, <훈풍이 건듯 불어>, <오래된 바람 An Old Breeze-63> 등을 살펴보면 그의 관심은 자연적인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986년 그가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에서 서울로, 그리고 다시 1996년에 도심을 벗어난 산야의 충북 옥천으로 작업환경을 이동하여, 인공적인 관계나 구조,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멀어져 간 여정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관심은 세속화된 삶에서 잊혀져 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라기 보다는, 세계를 구성하는 틀, 세상에 있어 불변의 가치로서의 자연에 접근하면서 시대가 바라본 자연을 드러내 지금/여기의 시선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작가는 작업의 밑그림으로 고전 산수화와 실경 산수에 큰 구분을 두지 않는데, 이것은 작가의 관심이 자연이라는 대상을 재현하는 미술의 형식이 아니라, 다른 시대에 존재한 산수화가 동시대 자연 풍경을 반영한 방식에 관심을 둔 것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작가의 작업실에 인접한 서울 내 국립공원인 북한산 풍경을 360도 둘러본 풍경을 오브제 꼴라쥬와 드로잉으로 담은 <한바퀴 휙>(1995)과 충북 옥천 작업실 주변을 광목에 호방한 먹선으로 그림과 글을 담아낸 <소풍>(1997)은 작가가 직접 접한 풍경을 좌우로 긴 두루마기 형식을 취해 마치 동양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이것은 형식적 차용만이 아니라, 작가 주변을 둘러싼 자연풍경을 인식을 드러내는 것 이기도 하다. 서양의 풍경화 전통이 소유지를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기록의 역할에서 18세기 그림 같은 풍경을 의미하는 픽쳐레스크 개념으로 이어진 반면, 동양 산수화는 자연이라는 이상을 항상 곁에 두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수양이자 사고의 확장을 담았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 시켜 단일시점으로 재현한 서양 풍경화와 다르게, 산수화는 화자가 그 풍경 안을 넘나들고, 마치 이야기가 흐르듯 시점이 점진적으로 흘러간다. 작가는 이와 같은 산수화 특징을 현대적 물성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부각시키는데, 10m 크기의 판넬에 리벳과 와셔를 박은 <바람 좋은 날>(1997) 은 작가의 작업실 주변 풍경을 금속재료로 재현한 것이다. 작품을 가까이 보면 평면에 어슷하게 박혀 돌출된 금속 리벳과 와셔의 금속 물성을 보게 되고, 멀찍히 물러 보면 리벳의 밀도 차이로 만들어 내는 풍경을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다. 리벳에 걸쳐 있는 와셔는 작은 움직임에도 반짝이는 금속 광택을 퍼뜨리는데, 공간의 공기흐름이나 빛에 의한 이런 변화는 작품 면과 작품이 놓인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이처럼 작가는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골짜기 사이를 걷기도 하는 산수화의 특징인 시선의 움직임을 관람객에게 경험하도록 했다. 이것은 산수화가 여백을 두어 대상을 한정 짓지 않고 대상을 프레임 밖으로 확대시켜 결국 그림을 마주한 이가 그림 속 자연을 유람하게 하는 것과 같이 2차원의 평면을 매개로 사고의 흐름을 신체와 함께 자연의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로 작가는 서로 다른 시기의 풍경을 공존시키기도 하는데,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가는 외부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이는 유리창 위에 조선시대 산수화인 ‘무이구곡도’ 를 실리콘점과 아크릴 거울조각으로 제작했다. 픽셀로 변형된 고전 산수화는 유리창 밖 실제 풍경을 배경으로 드리워져 현실과 부재의 풍경이 따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풍경 속으로 섞이게 된다. 이와 같은 소통은 미니멀리즘 조각에서 언급하는 현상학적 체험과도 결부될 수 있어 서구 모더니즘의 맥락과도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작가는 전통 산수화의 자연관을 가지고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공감각적 체험을 유도하여 서구 미술사에서 규정한 회화와 조각 같은 형식적 매체 구분을 넘나들고자 한다.
2000년도부터 황인기는 주변 풍경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중국의 고전 산수화를 차용하여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을 도입했다. 이 과정으로 풍경과 산수화는 흑과 백 즉, 있고 없음의 0과 1로 대변되는 동시대 시각이미지의 어법으로 치환하여 이미지의 크기, 픽셀의 밀도 등을 자유자재로 가공 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바람처럼>을 28m의 벽화로 선보였으며, 2004년에는 애틀란타 미술대학갤러리에서 조선말 이자장의 불화 ‘18나한도’ 를 144배 확대하여 전시장 전체를 둘러싼 <훈풍이 건듯 불어>를 설치했다. 자연의 면면을 담고 있는 풍경 이미지들은 복제나 변형이 손쉬운 디지털 이미지에 힘입어 소위 사람의 키를 웃도는 규모로 제작이 가능해진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각 소재를 붙이고 바르는 작업 과정은 크기에 비례하여 역시나 전통적 작업방식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회화를 작가의 손 즉, 신체적 활동이라고 보았을 때, 황인기의 디지털 산수 역시 평면을 채워가는 측면에서 보면 회화로 구분 될 수 있다. 특히 회화가 물감과 붓이라는 매체 사용뿐만이 아니라 사각 프레임을 채워나가는 행위라고 특징 짓는다면, 실경이나 산수화를 구성하는 픽셀 하나하나 점 찍어 물성을 얹혀가면서 화면을 구성해가는 것 또한 회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이미지가 가진 비물질적이고 탈신체의 특성을 수공을 요하는 치밀한 절차의 과정으로 전용시킴으로써 반복과 복제 그리고 변형에서 오는 디지털 이미지의 얇팍한 습성을 회화적 가치로 이끈다.
이런 과정에서 황인기의 디지털 산수는 전통 회화를 차용하면서 회화의 기록 및 내러티브의 의미를 반영하는 동시에 이를 픽셀 즉, 점으로 환원한다. 원본을 이미지화 하고 이것을 점묘화 시키는 과정에서 원본이 되는 풍경과 고전 산수화는 그것이 존재한 시간성, 공간성 및 상징성을 일순간 응축한다. 이로써 전통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어법으로 전복하는 셈이다. 원본 이미지를 디지털화 하고 이를 확대하여 구현된 픽셀을 작가는 크리스탈, 리벳, 레고, 실리콘과 같은 지극히 현대 산업의 산물이자 동시대적 질료를 이용하여 풍경을 재현한다. 마치 전통적인 회화가 각 시대별로 특징적인 화법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으로 과거에 재현되었던 풍경은 현재의 물성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다. 특히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을 흉내 낸 크리스탈, 세계의 모습을 블록단위로 단순화시켜 재현하는 레고 블럭, 대상을 비추면서 유리의 물성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한 아크릴 거울, 액체와 고체의 중간단계의 화학소재인 실리콘과 같은 소재를 주로 이용하는데, 이것들은 작품의 재료라기보다 일상적이면서 저렴한 소재들로 동일한 형태로 반복이 가능해, 수 없이 복제가 가능한 밑그림이라는 내용에 걸맞는 일종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형식은 매체 선택의 당위성을 획득과 더불어 물감이라는 매체구분으로 정의되어 온 회화의 특성을 재정의하여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작가의 자연풍경에 대한 관심은 때로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배치 하며 드러내는데, 일찍이 <한바퀴 휙>(1997)과 <훈풍이 건듯 불어>(2004) 에서 광고판을 이용 하여 동시대 시각문화를 작업으로 끌어들인 바 있다. 실경 산수와 조선말 이자장의 불화 <18 나한도>는 커다란 외부용 광고판 위에 각각 리벳과 실리콘으로 이미지를 펼쳐 낸다. 현실의 욕망을 대변하는 상징과 그 위에 겹쳐진 신앙의 상징은 소비문화와 종교적 정신의 가치에 대한 대립이라기 보다 서로의 시간성을 병치하여, 순간과 지속이라는 개념을 극대화 시킨다. 이는 2011년 열린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에서 기아, 전쟁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담은 보도사진을 레고 블럭으로 리메이크한 것과 페라리 로고가 부패하는 과정을 설치한 작업과 맥락을 같이한다. 작가는 동시대성이란 시간성이 흘러가는 과정으로 혼재되어 있는 시간성, 즉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구현한다. 더불어 동양 고전뿐만이 아니라, 세잔과 고흐의 명작들을 참조한 레고 블럭으로 이루어진 정물화를 선보여 시대성을 비롯한 서로 다른 시각문화 배경을 한데 어울러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확장하였다. 
이렇듯 작가가 담는 대상, 즉 자연을 “볍씨로 싹을 틔워 모를 심고, 김을 메고 햇빛과 물로 성장하고, 이것을 거두고……하는 일종의 법칙과 같은 것, 눈에 안보이지만 존재하는 것.” 이라 설명한 작가는 존재하지만 존재를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이 재현되어 온 양상을 현재적 시점으로 가져와 자연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 3차원의 깊이와 일루젼을 포기하고 2차원의 평면으로 스스로를 규정지은 모더니즘 회화에 기대고 있는 현대미술의 회화는 최근 사진, 디지털 이미지에 그 위상과 역할을 내주며 동시대 회화의 가능성을 다시금 모색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는 서구미술에서 출발한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작가 정체성의 기반인 동양의 시선으로 산수화를 통해 모더니즘 회화 이후 회화의 새로운 존재 가치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디지털 산수를 통해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양가적 가치를 어우르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내용과 형식의 재배치로 현대미술에서의 회화, 전통의 현대적 계승, 동서양 미술의 융합과 같은 지금/여기에서 현대미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장윤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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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곳 그리고 지금/여기

1.
디지털 산수화로 정평 있는 작가 황인기, 이번에 그는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전을 통 해 작품세계의 확장, 변화를 감지케 하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통 산수화 이외에도 세잔의 사과 있는 정물화, 언론 보도사진을 디지털 수법으로 리메이크하고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주매체로 플라스틱 레고 블록을 전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레고의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시스템, 컬러풀한 색채, 연마된 플라스틱의 표면 광택을 활용하여 동양전통의 지필묵 산수화, 서양전통의 유채 정물화, 현장 보도 사진에 색다른 의미와 조형적 풍요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신작들인 레고 산수화 <오래된 바람>, 레고 정물화 <플라 세잔>, 레고 보도사진 <플라 차일드> 연작은 그가 이제동양 산수화, 서양 명작에 대한 미술사적 참조 뿐 아니라 동시대 현실에 주목하면서 주제적, 미학적, 방법론적, 매체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음을 말해준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적 구획을 넘나들며 정신과 물질, 자연과 문명,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해소하려는 작가의 예술 의지는 현대 하이브리드 문화 속의 작가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정체성의 문제는 이산작가, 한국계 미국작가가 아니더라도 유목민적 정서와 코스모폴리탄 정신으로 작업하는 글로벌 시대 예술가들에게 최대 이슈로 부각된다. “내 자신의 감수성 발달에서 두 다른 문화의 혼합이 파괴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그에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관용을 가능케 하는 진취적 카오스라고 생각한다”("American Debut, Inkie Whang", Frey Norris Gallery 개인전 도록 2008, p.1.)는 작가 진술이 뒷받침하듯이, 가족의 미국 이민, 본인의 미국 체류의 경험을 가진 황작가에게 정체성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일대 도전이자 과제였던 것이 분명하다.
2.
황인기는 미국 유학 당시 뿌리에 대한 관심과 통찰로 전통 산수화 그리기를 학습하였고, 1986년 귀국 후 자연을 주제로 자신 특유의 산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1994년 금호갤러리 개인전에 발표한 <한바퀴 휙>은 자신이 살던 홍지동 주변 북한산에 올라 한 바퀴 둘러본 360도 비전을 화폭에 옮긴 실경 산수이다. 관람객도 한 바퀴를 돌아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전시장 전면을 둘러싼 이 파노라믹 산수화에는 산세를 그린 자유스러운 흑백 드로잉 위에 가시철망, 고깔 같은 다채로운 오브제들이 돌출되어 있고, 차후 그의 주매체가 되는 리벳과 레고가 자유 드로잉에 조형적 균형을 부여하듯 탄탄한 기하학적 구조를 만들며 부착되어 있었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초대전에서는 한 해 전 이사한 옥천 소정리의 풍경을 드로잉, 페인팅, 오브제, 설치 등 다매체로 재현하면서 산수화의 대하드라마를 연출하였다. 온갖 조형실험이 총망라된 이 작업을 위해 작가는 화면 위에 리벳 10만개를 박으며 허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그에 대한 방법론적 대안으로 발상된 것이 디지털 산수화였다.
그러나 디지털 산수화 역시 엄청난 작업량과 공정을 요구 하였다. 전통 산수화의 원본 사진 필름을 컴퓨터 픽셀로 전환시키고 그 위에 매 점마다 일일이 리벳, 거울 조각, 크리스털, 레고 블록을 부치거나 실리콘을 쏘아 완결시키는 이 디지털 산수화는 원화를 확대하는 크기에 따라 비례적으로 일 양이 많아진다. 2000년 인화랑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산수화를 선보인 이래, 작가는 벽화 크기의 대형 산수화를 연이어 제작, 발표하였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초대된 황작가는 조선조 화백 이성길의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1592)를 50배 확장하여 12밀리 거울조각 13만개, 같은 크기의 실리콘 점(dot) 6만개로 구성되는 높이 2.4미터, 길이 28미터의 벽화 <바람처럼>을 설치하였다. 2004년 애틀란타 미술대학 갤러리에서 발표한 <훈풍이 건듯 불어>는 조선말 이자장의 불화 <18 나한도(羅漢圖)>를 144배 확대하여 전시장 전체를 둘러치게 한 환경 설치작품으로 70만개의 붉은 실리콘 점이 소요되었다. 2007년 인화랑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재해석하여 발표한 4점의 <몽유> 연작 역시 최장 8.5미터 길이의 긴 벽화로 제작되었다. 이번 아르코 미술관에 전시하는 레고 산수화 <오래된 바람>도 중국 송나라 왕선의 <어촌소설도(漁村小雪圖)>를 밑그림으로 제작한 3미터/7미터 크기의 대형 작품이다.   그러면 작가에게 크기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림이나 오브제의 범주를 훌쩍 넘는 <한바퀴 휙>이나 소정리 풍경화도 그렇거니와, 컴퓨터 처리로 한정 없이 커질 수 있는 이후의 디지털 산수화는 커다란 화면 속에 관객을 작품에 함몰시키며 주·객체의 상호 주관적 교류 또는 현상학적 소통을 가능케 한다. 관객의 현상학적 인식은 시각에서 공감각으로 보는 방식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이는 리벳, 크리스털, 실리콘, 레고 등 픽셀을 이루는 물질의 물리적 촉각성, 동시에 촉각성을 탈물질화시키는 크리스털 광채나 레고 광택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빛으로 탈물질화되는 전자 입자로 인해 평면과 입체 사이에 존재하는 촉각적 모자이크 영상을 창출하는 비디오와 마찬가지로, 황인기의 디지털 산수화는 물질적 픽셀과 탈물질적 광택이 관객의 촉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각적 차원의 소통을 성취하는 것이다.
3.
레고 산수화는 배경과 형상 모두를 레고로 부착시키는 ‘올-오버’ 화면이라는 점에서 중성적 바탕 면에 형상을 재현하는 리벳, 크리스털, 실리콘 산수화와 구별된다. 올-오버 화면에서는 레고 블록 자체가 픽셀이 되어 구조적이고 수치적인 디지털 과정을 반복, 가시화하는데, 이런 점에서 레고는 디지털 산수화에 가장 적합한 선진 매체라고 볼 수 있다.
<오래된 바람>은 레고 블록의 체계적 구조, 표면 광택 뿐 아니라 컬러까지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 레고 산수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흑, 백이나 색조 모노크롬 바탕에 다양한 보색으로 형상을 재현하는 리벳, 크리스털, 실리콘 산수화는 물론, 흑/백 또는 노랑/까망으로 이루어진 이전의 두 색 레고 산수화와 달리, 이 작품은 컬러풀한 다색조로 통상적 흑백 수묵 산수화와는 사뭇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중국 전통 산수화의 디지털 컬러링, 또는 그것의 유화 버전인 듯 한 이 컬러 레고산수화는 채색된 옛날 흑백 영화처럼 고풍스럽고 환상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플라스틱 재질과 체계적 구조가 현대적 미감을 발산할 때에 과거와 현재, 고전 미학과 현대 미학이 충돌, 공존하는 초시제적이고 양면적인 이중 감흥이 유발된다.    플라스틱 레고로 세잔의 정물을 리메이크한 <플라 세잔>은 또 다른 측면에서 레고의 매체적 가능성, 나아가 디지털 미학의 잠재력을 과시한다. 레고의 구조적 속성과 세잔 회화의 구조적 원리를 유추시키는 이 디지털 정물화를 통해 작가는 세잔의 회화적 고민을 계승하는 동시에 디지털 마인드로 일말의 해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복수시점 발상으로 대상의 실체감이나 공간감을 단축법이나 원근법적 재현보다 입방체로 표현하고자 했던 세잔의 큐비스트 방법론이 여기서는 레고의 규칙적 모듈과 재질감으로 암시되는데, 이는 특히 레고를 복층으로 쌓아 올려 부분적 부조를 만든 돌출면으로 더욱 강조된다. <플라 세잔>은 세잔의 비원근법적 큐브, 레고의 미니멀적 반복구조, 디지털의 바이너리 프로세싱에 깃든 수학적, 논리적 감성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명화의 복제, 인용, 차용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복제 기술, 디지털처럼 무한 복제가 가능한 플라스틱 제조, 나아가 디지털이나 플라스틱으로 조형, 성형되는 현대 시뮬레이션 문화 현상에 대한 코멘트로서도 효력을 갖는다.   
4.
레고 보도사진 <플라 차일드>는 작가의 관심이 과거로부터 현재, 미술 내적 참조로부터 미술 외적 사건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폭행 현장 검증 장면 <플라 차일드 - 김수철>, 병들고 굶주린 아프리카 아이들 <플라 차일드 - 아프리카>, 이라크 전쟁터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 소녀 <플라 차일드 - 이라크전쟁> 등, 작가는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 사진을 리메이크한 작품군을 통해 현대 물질문명의 이면을 고발한다. 
현대 물질문명의 또 다른 이면이 소비주의의 병폐이다. 작가의 스튜디오에는 소비주의의 대명사 루이 비통, 로렉스 같은 명품을 소재화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전시 출품작<페라리>는 메주콩, 우유, 계란, 바나나를 짓이겨 만든 어두운 갈색조 반죽 화면에 페라리라는 단어를 새긴 일종의 문자도인데, 시간이 경과하면서 단백질 부패로 생긴 균열과 곰팡이로 작품이 완성되는 프로세스 아트이기도 하다.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오는 반나체의 여인 역시 같은 수법으로 제작되었다. 여기에는 시간의 추이를 암시하는 LED 타이머가 부착되어 있다. 소비주의 문화에 일침을 가하듯, 작가는 트렌디한 명품이나 세속적 여성 누드에 화려함보다는 칙칙함, 영구성보다는 시간과 함께 부식, 소멸되는 일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보도 사진과 마찬가지로 명품, 여성 누드는 팝아트의 대표적 주제들이다. 산수 풍경으로 일가를 이룬 황작가에게 이러한 주제 설정이 일면 낯선 변신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는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산수 풍경> 일부에 이미 광고를 차용하였고, 2004년 애틀란타 미술대학 갤러리에서 발표한 <훈풍이 건듯 불어>에서는 광고 이미지를 전격 활용하였다. 70만개의 붉은 실리콘으로 리메이크한 나한도의 바탕면을 지하철 라이트박스 광고 사진으로 장식한 것이다. 훈풍으로 험난한 세상을 치유하듯, 작가는 광고 사진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남녀 모델들을 위해 고전 불화속의 도덕적인 성자들을 불러 들였다. 병치된 화면 속에서 모델들과 성자들이 한데 어울려 일대 향연을 벌이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 고전과 현대, 산수화와 팝아트가 혼합, 용해되고 이와 함께 하이브리드 양면가치 미학이 발산된다. 
5.
양면가치성은 황작가의 타고난 기질과 조형 학습으로부터 유래된 미학적 결과물이자, 현대를 사는 코스모폴리탄 작가, 동시에 미국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타자의 소외를 체험한 한 개인에게 맞닥뜨려진 이중 정체성을 반영한다. 그는 뉴욕 체류 시부터 미니멀리즘 계열의 하드에지 추상작업과 제스츄랄하고 자발적인 드로잉을 함께 진행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담한 추상표현주의 페인팅과 함께, 린넨의 올을 풀거나 색 잉크로 린넨 올을 따라 그리는 섬세한 선묘 추상을 시도하였다. 미세한 올을 하나하나 뽑거나 채색하는 행위는 수놓듯 무수한 픽셀 하나하나 채워가는 디지털 산수화의 수공(手工)을 유추시킨다. 이 당시 작품 가운데 종이나 캔버스 롤을 옆으로 펼쳐가며 읽게 한 두루마리형 그림은 그 안에 대담한 붓질, 섬세한 라인 드로잉, 때로는 칼집 구멍까지 곁들인 조형적 실험의 장으로 이런 점에서 <한바퀴 휙>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1986년 귀국 무렵에는 손가락 페인팅을 시작하였다. 자연스럽게 신체의 리듬을 타고 그려지는 손가락 그림은 제스츄랄한 드로잉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개념이나 주제 의식 대신에 체질과 성향으로 그린다는 맥락에서 자아 정체성의 문제로부터 놓여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다. 손가락 그림은 작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문인화 풍의 산수화로 경도시켰는데, 특히 귀국 후 서울과 파주 스튜디오의 동네 풍경에 심취하면서 실경 산수화에 정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비중으로 구조적이고 상징적이고 분석적이고 개념적인 조형작업을 실험하면서 연금술적 ‘허니콤’ 연작을 내놓게 된다. 1990년 현대갤러리 전시에 이 두 경향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었고, 1992년에는 정화랑과 포름화랑에서 각기 허니콤과 산수화를 동시 발표하였다.   결국 작가는 동시기에 서로 상반되는 두 경향의 작업을 공존시켜온 것이다. 하나는 분석적이고 조형적인 구축주의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표현주의 경향으로 이 작가에게 있어 이는 각기 서양식 미술교육의 영향과 타고난 동양적 감수성의 표출로 이해될 수 있다. 특기할 점은 작가가 종래는 이 두 경향을 한 작품 속에, 한 몸 속에 녹여낸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귀국 후 자신의 고유 브랜드로 정립시키게 되는 산수풍경과 함께 이다. 무당적 에너지를 발산하며 산수화의 압권을 보인 1994년 금호 <한바퀴 휙>과 1997년 올해의 작가전 소정리 풍경에서 작가는 산수풍경 속에 다매체 조형 실험을 용해시키며 새로운 탈경계적 산수화를 제안하였다.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디지털 산수화는 인식론적으로, 존재론적으로 모두 두 경향의 종합이자 양면가치적 총체이다. 즉 그것은 대표적 동양 장르 산수화 전통과 디지털이라는 서양적 발명, 자연주의 풍경화와 수리적 방법론, 공대 입학후 미대로 편입한 황인기의 우뇌와 좌뇌의 양가적 협업의 결산인 것이다.   6.
디지털 산수화의 양면성은 전통의 현대화 또는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의 병치라는 점에서 시간성의 함의를 갖는다. 제목부터 시제를 암시하는 이번 출품작 <오래된 바람>은 물론, 안견 작품을 리메이크한 <몽유> 연작, 겸재 정선을 차용한 <방금강전도>, <방인왕제색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조각 작품으로 각색한 <세한 빌라>에서 작가는 현대적 매체와 방법론으로 그때/그곳을 지금/여기로 이동, 이전시킨다. 지금/여기로의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매체 발굴이다. 작가는 다양한 색깔의 크리스털, 실리콘, 레고 불록은 물론, 녹슨 리벳, 반짝이는 거울조각과 홀로그램으로 흑백 수묵화에 현대성의 활력을 불어 넣는다.
작가의 지금/여기에 대한 관심은 무엇보다 주변 풍경이나 명소의 실경 산수를 통해 표출된다. 작가는 2000년 이전에도 북한산과 옥천의 소정리 풍경을 화폭에 담았지만, 이후 디지털 산수에서도 실풍경을 주제화하였다. 일례로 2008년 샌프란시스코 프레이 노리스(Frey Norris) 갤러리 개인전에서 기존 산수화의 부분을 확대 재생산한 ‘블로우 업’ 풍경과 함께 발표한 낙동강 지류에 있는 우포늪의 풍경 <우포의 황혼 Sunset in Upo> 연작을 들 수 있다. 때로는 그림 속 고전 풍경과 동시대 실풍경을 공존시키기도 한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벽화 <바람처럼>에서 작가는 거울 조각으로 재현한 조선조 산수화 재현작업에 건물 유리벽을 통해 내다보이는 베니스 해안가 실풍경을 오버랩시킴으로써 가상과 현실, 전시장 안과 밖의 풍경을 일체화 시켰다.  실경 산수의 의미의 확장에서 작가는 현대 문명의 세속적 풍속화를 그린다. 조선조 나한도와 함께  현대 광고 이미지를 차용한 <훈풍이 건듯 불어>가 예증하듯이, 작가는 전통 문화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동시대 현실과 대중 문화에 흥미를 갖는다. 명품, 대중 잡지 이미지를 소재화한 <페라리>, <플레이보이>에서는 이러한 시대성에 대한 관심이 시간성에 대한 탐구로 구체화된다. 즉 음식 단백질을 부식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물리적 시간과 그 흔적을 가시화하는 것인데, 이러한 프로세스 아트의 실험은 이미 리벳을 부식시키거나 산화철을 사용한 디지털 산수화에서 예시되었다. 황인기의 작품은 제작 과정 뿐 아니라 감상 방식에서 시간의 차원을 포용한다. 특히 두루마리를 펼친 듯 한 기다란 벽화형 산수화에서 작가는 보기보다는 읽기를 제안함으로서 평면 작품에 시간성을 도입한다. 또한 시각보다는 촉각과 공감각을 활성화시키는 환경적 다매체 설치로 관객관의 현상학적 소통을 유도하고 4차원 연극성을 확보한다. 황인기의 디지털 산수화가 동영상으로 보는 이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지각매체로서의 비디오와의 유추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간 속을 흐르는 비디오 이미지를 가리켜 “본다는 것은 미리 본다는 것과 같다”(Paul Virilio, "Image Virtuelle", Video-Video, Paris: Revue d'Esthetique(10), 1988, p 33-34.) 라고 지적한 폴 비빌리오의 진술이 시간성을 동반하는 황인기의 디지털 산수화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전통 산수화와 현대 디지털 아트의 양극을 이어주는 황인기의 작품 세계를 자신이 명명한 전시제목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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