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백 Yongbaek LEE 의 예술과 그 이면
“나는 여러 미디어를 다루는 미술 작가다. 예술은 사회적 편견과 강요된 형식을 타파하면서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실험하는 인생의 영원한 동적 과정(dynamic process of life)이라고 믿는다….” (이용백)
1.
이용백은 미디어 예술과 조각, 설치, 사진, 회화 현대미술의 모든 영역을 소화하면서 감수성과 형식, 그리고 태도의 각 편대를 자유자재로 지휘하여 승리로 이끄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표피적으로 이해하기에는 그렇다. 그는 아시아 작가로는 드물게 자기가 발현시킨 기제로써 글로벌한 형식성을 자랑한다. 더군다나 한국 미술 내부에서 그로 하여금 매우 추상적이게도 포스트모던 작가로 애써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을 거칠게 총체성, 보편타당성, 역사적 거대 담론, 인간 실존의 든든한 기반, 의심할 여지 없는 지식의 가능성 등의 가치들을 거부하는 사상적 동향 내지 운동이라고 정의할 때 이용백을 포스트모던 미술가라는 말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이용백이 정의하는 예술이란 자기 가능과 한계의 범위를 스스로 세우고 그 가능과 한계라는 벽과 가장 강인한 태도와 기세로 부딪혀 외부세계에 드러내려는, 언어로 설명 불가능한 충격파이다. 여기서 자기 가능과 한계의 범위를 카를 만하임의 표현대로 ‘사유의 존재 구속성’이라고 하자. 사유 존재의 구속성이란 생각하며 행동하는 주체는 그가 뿌리내린 토양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한계치의 영양분을 기본으로 꿈꾼 이상이 형식이 될 때 구속은 부정적 가치가 아니라 오히려 시대의 시상(時狀)이 되며 세기를 넘는 공감으로 탈바꿈된다는 진실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용백이 태어난 시대의 미술의 분위기는 군사독재 시절은 이치관념(二値觀念)의 시기였다. 예술에 그 어떤 정치적 발화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한국의 예술가들은 모노크롬 미술이나 미니멀리즘, 추상표현주의 등의 형식들을 각각 동양적 선(禪, zen)에서 비롯된 호흡, 유가의 수신(修身), 도가적 풍류(風流)와 연계해서 해석하려 했다. 말하자면 서구적 형식에 동양의 이름이라는 번역어를 덧씌운 이식구조였다. 둘째, 1980년의 기억으로부터 한반도 무속, 굿 등의 토착신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군부독재 자본주의의 병리를 해부한 민중미술(Minjung)이 세력을 확산시켰다. 이와 동시에 한국은 1985년부터 해외여행 및 해외유학이 자율화되었다. 그런데 1989년 이후 연속적으로 진행된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1993년 민권이양(民權移讓)의 확립, 그리고 최초의 보편적 유학파 유입 속에서 위의 두 세력은 동력을 잃었다. 1990년대는 서구미술의 무비판적 형식의 유입이 일반화되었다. 처음 보는 미디어, 영상, 사진, 설치 미술이 일대 홍수를 이룬 가운데 보는 이는 관전 포인트마저 설정할 수가 없었고 자체적 비평의 정신은 사라지고 서구 포스트모던의 잣대에 의존했다. 세계를 이끌던 두 개의 중심 기단(氣團)이 와해되고 다자적 양상의 포말(泡沫)로 분열되던 시기가 1990년이었다. 다원적 개인주의는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으나 좋은 예술가와 그렇지 않은 예술의 구분, 즉 전형과 모범이 사라진 시대이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에서 이용백이 전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예술 형식의 자발적 창안과 한국 동시대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한 작가들 중 하나였다.
2.
1990년대 이용백은 모든 포스트모던의 조건들을 거절했다. 포스트모던이란 모더니즘의 무기력과 권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충격 요법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서구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사상적 쌍생아이듯이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의 육체에서 발아한 제 3의 변성된 육체이기 때문이다. 이용백은 한국과 아시아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자기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용백의 예술을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과 비교하면 그 특질이 명료해진다. 모더니즘은 기존의 법규와 명령(장르의 환원 불가능한 최종적 본질은 무엇인가 모색하라는 명령)에 기초해 이루어지는 완전히 합리화된 예술행위이므로(이성적 사유 중심) 언제나 재생산성을 띈다. 따라서 그것은 무색무취의 합리적 사유방식이다. 이에 반해 이용백의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발적 창조이며 형성이다. 이용백의 창조는 ‘무(無)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주어진 사회적, 역사적 현실로부터의 창조이다. 때문에 이용백 예술의 기저에 언제나 잠재되어있는 사실은 그가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피동적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려는 적극적 발견자인 동시에 이를 예술이라는 구체적 형식으로 증현시키려는 행동자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그의 예술 속에는 아시아의 현실, 한국의 역사, 이 특정 지역이 세계와 마주선 관계, 21세기 세계의 시류 등이 포섭되는데, 그 형성 방법은 반드시 구체적이라기보다는 해석의 여운을 강하게 남기는 상징에 기반을 둔다. 이용백의 물질의 감각성과 의미의 다양성이 서로 밀고 당기는 게임을 벌이는 가운데 그 양자의 힘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기에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특정 지역의 특수한 의미와 글로벌한 감각의 재료가 갖는 보편적 감수성이 서로 조우하면서 창발된 에너지의 유례는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일찍이 없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뉴 폴더-드래그’를 뛰어넘는 또 다른 작품 역시 이용백이 이미 2005년에 그 토대를 완성한다. 그러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성과 보완을 거듭하며 2011년 드디어 완결판이 나왔다. ‘엔젤-솔저’는 인간이 치세하는 위장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동물계의 생존수단을 인간계, 아니면 적어도 한국의 상황은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명사로 충분하다. 바로 전시 자본주의이다. 부도덕하고 명분 없는 지배 이데올로기는 그간 국민들을 기만했다. 야만 사회주의 적대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압도밖에 도리가 없고 부의 분배나 사회적 차별 철폐, 인권, 사상의 자유, 노동궐기의 자유 등은 뒷날을 기약하며 묵인되어왔다. 몇몇 재벌과 그 종사자들, 사회 중심세력 외에는 대부분 국민들이 보이지 않는 소외에 내몰림에도 불구하고 그 소외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주류 미디어, 패권의 스포츠, 타락의 향연, 폐륜적 TV 드라마, 물신(物神)의 병적 신화,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득세한 한국형 대규모 교회, 연예인의 멋진 이목구비와 육체는 한국 사회의 천사이며 동시에 전사이다. 이 천사이자 전사인 무리들은 조화(造花) 정글 속을 꽃무늬 군복을 입은 채 느린 속도로 서서히 잠입한다. 망각의 화려함으로 불편한 진실을 가리는 전략은 동물세계와 진정으로 유사하다. 이 작품이 세간에 처음 등장했을 때 비교적 남북관계가 온화하던 때라서 이 작품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2011년의 시점에서 남과 북은 가열찬 신경질적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양자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적대적 공존과 본질의 은폐를 골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 천사와 전사라는 이형동질(異形同質)의 위장 전략으로 생존한다. 작품이 상징하는 복잡한 사회역학적 관계를 떠나 작품의 사운드인 풀벌레 소리와 바람소리는 싱그럽기만 하다.
또 이용백의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은 ‘피에타’이다. 모든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활동의 원형에는 희생양(victime emissaire)의 기제(機制)가 들어있다. 희생양의 메커니즘은 하나의 희생 타겟을 설정함으로써 여타 이외의 희생의 가능성을 막는 일종의 액막이이다. 동물로써 인간의 희생양을 막는 경제적 기능 외에 좋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막는 주술적 기능도 함께 수행한다. 그리고 희생의 대상으로 설정된 희생양은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대상화된다. 이 희생양에게 희생양 이외의 공동체 전체 구성원은 격렬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더 큰 재난의 폭력을 미연에 정화하는 수단이다. 즉, 희생양은 상징적인 신에게 봉헌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에 봉헌되는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 경기 침체가 진행되거나 전체주의 파시즘이 완성되어가던 시기에 나타났던 유대인의 희생 문제, 미국 서부 개척사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원주민 인디언의 학살, 1923년 관동대지진때 자행되었던 6000명의 조선인 학살, 1980년 한국 광주의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공동체나 문명이 성장해갈 때 그 반발적 기운을 제거함으로써 나머지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의든지 타의든지 지도층에 대해 긍정적 수긍 내지 체념적 방관을 하면서 상승 무드로 고조되는 사회 분위기에 일조한다는 점이다. 어떤 시기의 어떤 문명이라도 수많은 수난을 발판 삼아서 재건된 물리적 집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대의 문명과 공동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주지와 같이 글로벌리즘의 무한경쟁의 사회에서는 전인적(全人的) 자기 수신(修身)이 불가능하다. 동시대 사람들은 수량화된 개별적 개체로서 도구화된다. 개별적 개체로서 제도적 자유는 보장받지만 자기 인생의 풍부한 지평은 사형선고를 받게 되어있다. 동시대는 자기 희생의 시대를 암시한다. 즉, 이용백의 ‘피에타’가 어째서 사이보그를 연상시키는지 간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품은 회화 시리즈 ‘플라스틱 피쉬’이다. 이 회화 연작에 등장하는 플라스틱 물고기들은 화면을 전면적으로 가득 채울 뿐이다. 중심의 테마가 없는 무차별의 균등한 체계이다. 그 명목상의 균등함은 사실 혼란 그 자체이다. 진정한 진짜의 가치를 서로 낚아채려는 가짜들의 치명적 작태다. 서구에서 ‘명예’라는 단어는 도덕적 차원의 확립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공동체에 봉헌하는 삶을 가리킨다. 맹목적 서구 추종에 여념이 없는 한국에서 명예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부로 오인되어있다. 서구에서 ‘사죄’라는 단어는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강한 책임이다. 말과 다른 행동, 책임 없는 변칙의 표리부동함이 한국에서 사죄라는 단어이다. 임시변통으로 치부한 성공이 곧 명예인 사회에서는 미래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회화 연작에서 불온한 예감 말고도 희망의 예시도 잘 드러난다. 중심주의의 해체, 곧 다자적 가치의 사회가 한국사회에 아시아 사회에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주의는 밀실의 공포극이다. 이 무서운 연극의 최종회가 종언을 알렸다. 다자적 가치의 민주주의, 개체의 운명을 전체의 명분과 동등하게 인정하려는 풍토는 너무나 찬란한 것이다. 이 회화 역시 동시대 한국이라는 지역의 의미를 충분히 발현한다. 여기까지 살펴보았듯이 이용백의 최대 미덕은 자신의 감상주의나 개인적 취미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은 그가 세계에 대해서 실존적으로 확신한 의미를 매개한다. 끝으로 이용백의 예술이 한국에서 어떠한 위상을 갖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이치관념이 성장동력을 상실한 이후 1990년대 문민정부의 시기, 자기 토양의 자양분에서 발현된 형식이 아니라 외재(外在)의 외피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신사조의 홍수가 한국 미술계를 덮쳤을 때, 그 누구의 판단도 잠시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이용백은 자기 가능과 한계의 벽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그 벽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해왔다. 이 노력은 2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관철된, 스스로에 대한 요청이자 명령이었다. 현재 우리는 이용백의 예술여정을 목도하면서 어지러운 한국 미술의 혼란기에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인지에 대한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어떤 예술의 형식이 그 형식을 발현시킨 예술가의 인생과 일치했을 때, 그리고 그 예술이 인생의 험난한 여정의 시행착오로 빚어낸 결과였을 때 비로소 예술은 진정성을 얻는다는 첫 번째 대명제가 그것이다. 둘째, 기존 예술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기존 예술과 지난 시대 사이에 엄존하는 내적 필연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명찰한 연후에 자기의 인생과 자기가 속한 시대의 내밀한 관계를 날카롭게 꿰뚫어 형식으로 발현시킨 예술을 우리는 아방가르드라고 규정한다. 이 아방가르드의 태도야말로 세계를 지속적으로 재건시킬 수 있는 동력이다. 셋째, 자기가 속한 시대와 사회적 정황의 모든 문제의 씨앗들을 동시대의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는 자기 감수성이라는 지반에서 발아시키려는 독창적 노고를 가리켜 예술가의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예술가가 세계에 대해 취했던 인생의 무게와 깊이가 작품 개체의 형식적 탁월함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거시적 관점을 언제나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들은 이용백이 보여준 25년 예술이력 덕분에 현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작지만 위대한 덕목들이다.
이진명 (큐레이터)
이용백의 작업 그리고 디지털매체의 이종적(異種的) 힘
이용백은 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싱글채널 비디오에서부터 상호작용, 음향예술, 키네틱예술, 심지어 로보틱스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실험해 왔고, 특히 한국에서는 이 방면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서 그 위상을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대한 높은 평가는 그러한 기술적 실험 자체보다는, 이러한 테크놀로지적 형식 속에 전자매체시대의 특유한 문화적 쟁점과 상상력을 표현해 내는 그 만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90년도 초반 이후 현재까지의 이용백의 작업 중 중요한 사례 몇가지를 발췌하여 논할 것이며, 이를 통해 "시뮬레이션 시대에 있어 현실과 가상의 관계", "탈중심화된 정체성", "디지털매체가 수반하는 이종적이고 전복적인 힘"과 같은 그의 관심사와 시각적 어법이 드러날 것이다.
우선
이어서 다른 작업인
작품
실제와 가상의 문제 이외에도 이용백의 작업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은, 상징적 질서에 대한 위반, 혼성성 그리고 탈중심화된 주체의 문제이다.
이러한 관심사는 그의 신작 <피에타>에서도 잘 나타난다. <피에타>에서는 전통적인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이 사이보그 혹은 로보트로 대체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이제 디지털 시대에는 휴머니즘적 의미의 인간과 신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온갖 불경스러운 혼성적 사이보그나 로보트, 그리고 생명공학적 괴물들이 차지하리라는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통찰을 환기시키는 듯하다. 이 <피에타>에서 사용된 기계적 구성, 즉 반반사 유리로 덮힌 상자와 그 안에 숨겨진 채 왕복운동하는 모니터로 구성되는 방식은 과거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다양하게 응용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이용백의 몇몇 중요한 작업들을 통해 확인되는 바는, 정보의 소통이 아니라 상호변질이, 그리고 매체를 통해 확장, 변질, 분열된 인간의 모습을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을 보면서 우리는 오늘날 첨단매체 예술이 열어나가는 포괄적 지평을 함께 읽어내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가상성'이란 것이 이 실제세계의 인식론적 질서에 개입하는 '불순하고 전복적인 이종적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통찰,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기본적으로 후기 인간적, 후기기계적인 새로운 문화의 지평으로 인도해 가리라는 통찰이다.
김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