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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원, 한미사진미술관

출생

1972,  고양

장르

사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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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섬, 2013

C-print, 148 x 1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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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향해 봉합되는 시공간의 블록

제대로 지각되고 기억될 틈도 없이 모든 것이 급격히 사라져 버리는 ‘역동적인’ 한국에서 <1978년 일곱 살>(1978, My Age of Seven)(2010)전을 비롯한 원성원의 작품에 등장하는 도상들은 향수를 자아낸다. 그것들은 분명 가까운 현재의 여기저기에서 직접 채집된 것들이지만 작가가 유년기를 보냈을 70년대적 풍광과 분위기가 남아 있다. 엄청난 발품을 들여 수집했을 거의 생활사 박물관 수준의 주거지와 환경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중이라서, 그 시간적 공간적 간격에서 생성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과거와 현재는 잠재적인 고문서 보관서가 되어 미지의 장면 속 세포로 되살아나 숨 쉰다. 불연속적인 시공간적 블록들이 몽타주 된 원성원의 작품은 마치 현재하는 풍경처럼 그럴듯하고 생생하다. 수집광적인 열정으로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모아온 도상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풍경에는 유년시절의 동경과 희망, 꿈과 모험, 고통과 좌절 등이 내포된 상징들이 빼곡히 자리한다. 풍경을 이루는 도상의 밀도는 상징의 강도에 상응하는 것이다. 가상으로 연출된 스펙터클 속 동네의 좁은 길목, 초라한 집, 작은 텃밭, 궁색한 살림살이 같은 무언의 사물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멀리서 본 풍경과 지나간 시간들은 삶을 여행하는 이를 너그럽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공간적 간격을 통해 화해가 가능하다 해도, 원초적 사건이 잊혀지지는 않는다. 원성원에게 이 잊을 수 없는 원초적 사건은 곳곳에 상처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장면 하나하나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들은 끝없는 해독과 해석을 통해 채워지고 정리될 것을 요구하는 빈 구멍과 균열들이다. 작가에게 상처를 준 사건은 모년 모월 모일에 일어났던 사실이기도 하지만, 진실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 자리한다. 심리학에서 깊은 상처의 출발은 출생의 체험이라고 말해진다. 모체의 완벽한 보호 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는 사건은 그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자극들이 쇄도하는 고난의 연속이며, 이후의 삶에서 개체가 겪게 될 모든 외상의 원형이 된다. 작가가 주목한 일곱 살은 사회의 상징적 구조에 진입하기 위해 일체가 되었던 모체를 떠나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종갓집 며느리였던 엄마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린 원성원과 떨어져야 했던 때도 바로 7살이다.
작가는 7살 이전과 이후는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그녀의 영혼과 육체에 강한 흔적을 남긴, 그래서 사소한 것까지 낱낱이 기억하게 한 사건들은 7살에 일어났고, 이후 작가가 되어서 했던 작업들은 과거와 화해하기 위한 치유의 여정이다. 작품은 쉽지 않은 과정들이 다시 상연되는 무대이며, 이를 통해 작가는 타자와 소통한다. 타자는 타인들 뿐 아니라 자기 안에도 있다. 원성원의 작품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지금 작업과도 연관되는 초기작품 < My life >(1999)는 독일 유학 당시 학업중단이라는 위기에 처하자 2x4m 넓이의 좁은 방에서 살고 있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것이다. 속옷을 비롯하여 방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찍은 628개의 사진 및 관련 메모들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은, 한국에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가 규모가 크고 개념적인 작업으로부터 작지만 내적 필연성이 있는 작업으로 전환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공간과 개인 간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이후의 작업들로 이어진다.
< Dream room >(2000-2004) 시리즈는 작은 상자 같은 곳에서 살기 마련인 현대인의 갈망을 꿈을 찍은 사진처럼 만든 것이다. 지인들의 드림 룸은 대개 좁은 방이 넓게 변형되면서 그들의 갈망이 투사된 공간으로 변화한다. 그것은 또한 공간이 몸의 연장이며, 영혼은 몸에 기거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드림 룸은 개인의 내밀한 콤플렉스나 병까지도 치유하는 공간이다. < Tomorrow >(2008) 시리즈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그 주인공들을 이용하여 만든 가상의 풍경이다. 조각과 설치에서 드로잉과 사진으로의 전환은 작업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거시적인 차원이 미시적인 차원으로 옮겨간 경우인데, 작품의 밀도와 강도를 높임으로서 구체성 및 특수성은 도약하여 보편성 및 일반성과 만난다. 원성원의 작품은 무한 복제와 속도가 특징인 디지털 언어를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2년에 10개 정도의 작품밖에 나올 수 없는, 아나로그 보다 더 아나로그적인 과정을 거친다.
사실과 환상이 분리불가능하게 얽힌 장면들은 차라리 그림으로 그려도 될 듯 싶지만, 작가는 사진이 가지는 인덱스(index)로서의 특징을 작품의 현실과 진실을 보증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원성원의 작품에서 드로잉은 사진만큼 중요하며, 그래서 사진작품과 함께 전시되곤 한다. 그것은 무수한 보정을 거치는 사진작업과 달리 단번에 이루어지며, 의식과 무의식이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드로잉은 은유와 환유로 교묘하게 연결된 사진 작품보다 직설적이다. 여기에서 뇌는 손과 직접 연결되며 여러 단계의 첨삭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개인전이라는 거사를 치룰 때 꼭 꿈에 나타난다는 용들을 한 장면에 합쳐놓은 작품, 그리고 자신과 친밀하거나 또는 그렇지 못했던 가족들의 손길을 그린 것들은 꿈과 무의식, 그리고 기억의 현실성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사진작업은 의도로부터 시작되지만, 드로잉은 의도를 역추적 하는 계기가 된다. 어느 것이든 결론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주도면밀한 그녀의 작품은 총체성을 지향하지만, 이 총체성은 열려 있다.
사진작업에서 아이디어 스케치가 끝나면 현실 속에서 사물과 장면을 찾는 오랜 여정이 시작된다. 이렇게 수집된 수 백 개의 장면이 정교하게 짜깁기 된다. 초현실주의자의 ‘발견된 오브제’처럼 작가의 의도와 갈망이 담긴 사물을 발견하는, 우연과 필연이 수없이 교차된 순간들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투입된 시간과 공간의 간격들 속에서, 현실에서 나왔지만 현실과는 다른 것들이 만들어진다. 의도와 각본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자신 만의 삶을 살고 있는 무심한 현실에서 필요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행히 작가가 찾는 것은 진기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다. 일상은 새로운 사건으로 구조화된다. 과거의 사건이나 그것을 연출하기 위해 동원된 현재의 사실들은 붙박혀 있지 않다. 인과적이거나 연대기적 시간과 연속적인 공간은 파편화되어 불확실한 생성의 이미지로 재편집된다. 원성원의 작품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사건이 실제의 이러저러한 에피소드임과 동시에 심리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재가공을 위해 탈 맥락화 된 현재적 소재의 의미와 위치 또한 가변적이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향해 열려있기에, 다음 장면들은 주사위놀이처럼 결정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을 찾아나서는 어린 소녀의 여정에는 미로를 헤쳐 나가기 위한 실이 여기저기 묶여 있지만 목적지만큼이나 출발점 또한 불확실하다. 그것은 매번 갈라지는 길이 나타나는 보르헤스 소설 속 정원처럼 이 길 또는 저 길이 아닌 동시적 선택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것은 매번 재 맥락화되고 다시 해석되며 다시 씌여져서 서로 다른 미래를 향한다. 잊을 수 없는 단일한 사건조차 각자 다른 버전으로 상연될 수 있는 다원론적 우주로 펼쳐진다. 새로이 맥락화 된 시공간속의 기호들은 해독되어야 할 명확한 답을 탑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자체가 연속적으로 제기될 문제의 계기가 된다. 이야기는 뿌리줄기처럼 맞딱뜨려진 삶의 굴곡 면을 타고서 끝없이 분지하면서 미지의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그것이 과학이나 역사와는 다른 예술의 차원이다. 예술이 가지는 이러한 유동성과 가변성은 정확한 재현을 통해 해법을 찾으려는 전략과 차이가 있다. 작가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초적 사건과 상처는 해결되거나 치유되지 않는다. 상처의 두려움은 끝내 채워지지 않을 욕망의 이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실제라고도 허구라고도 확정지을 수 없는, 과거와 현재가 맺는 사실임직한 관계가 드러날 뿐이다. 작가는 현실성 속에 잠재성을 발견하고, 그 잠재성을 무한히 분할하고 재연결함으로서 선택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발견한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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