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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한미사진미술관

출생

1954, 서울

장르

설치, 사진, 미디어

홈페이지

www.sanghyun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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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타임스, 2011

Single Channel video, 4min 2s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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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

얼핏 보아, 특히 아웃사이더인 서양인에게 이상현의 최근작인 사진과 비디오 작품은 고도의 기술적인, 혼합된 한국 현대사회의 전형화된 진부함을 꾸밈없이 환기시켜 줄 수 있다. 그것들은 지난 150년 동안 무자비한 변화를 겪어낸 한 사회의 수없이 많은 이미지, 상징, 관념 그리고 개념들에 의해 특징 지어진 세계의 초현실과 완벽하게 융합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다. 사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불과 한 세대동안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이동될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되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외부의 침략과 전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생활방식의 총체적인 붕괴는 서구문명의 영향 아래서 진행되어져 왔다. 이상현의 비디오, 사진 작업 대부분은 이 점을 완벽하게 구현한 듯하다. 이상현의 디지털 합성 이미지는 서양과 동양, 자연과 산업화, 과거와 현재, 이성과 비이성, 대중문화와 전통적인 풍경, 좋고 나쁨,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병치하여 역사의 광경과 허구적 장면들을 묘사하는 선명하고 밝은 팝 느낌의 색채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많은 역사와 신화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있지만, 작가 자신이 전통적인 이분법을 넘어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선호하므로 거기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 이상현은 그의 그림들을 동시대의 현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노스텔지어, 꿈결 같은 이미지, 공상 과학 소설 등과 같은 다양한 환경들을 동원한다.
문화적 재활용은 지난 과거의 모든 것에 사로잡힌 현 시대의 결정적 국면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개축하는 것에 대한 욕구는 인간조건의 한 부분이겠지만, 이러한 충동을 수반하는 속도, 강도 그리고 인접성은 날로 증가하는 듯하다. 지난 반세기에 있어서,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우리의 최근 과거는 가차 없이 착취되어졌다. 우리는 과거에 행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하다. 관습은 우리를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 원래의 개념들을 규정짓게 만든다. 어떤 경향의 음악 또는 미술도 절대로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니꼴라 부리오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불분명해졌다. 부리오에 의하면, 우리는 생동하는 집단의 기억(디스크, 비디오 카세트, 비디오 게임 등, 구입이 가능한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문화적 기호들을 소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적 기호들은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해내기 위해 재사용된다. 문화는 선택적으로 우리 경험의 주체가 되거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재활용 될 수 있는 기호들의 집합으로서, 하나의 사용 가능한 실재가 된다. 오늘날 작가들은 새로운 상황들을 창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아카이브를 파헤친다. 이것은 모든 원자료를 차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실천이다. 모든 종류의 실험들은 샘플링과 재전유를 통해 가능하게 된다. 원형은 새로운 문맥 안에서 생존한다. 과거가 삭제되는 것은 옛 이미지들과 기록된 기호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니체의 영겁 회귀론은 우리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매 순간마다 같은 방식으로 순환하는 것,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상상하도록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문맥에서, 이상현은 단순히 자신의 나라인 한국의 역사적 과거와 서구 문화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과거 또한 들여다보고 있다. 미술계로부터 고립되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미술계에서의 자신의 경험과 좌절을 미술작업에 통합시키면서 복귀를 결정했다. 이상현은 1988년에 미술계에서 그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1995년도에는 그의 세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국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1997년에는 여고생과 조각가 사이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를 그린 영화 <거짓말>(1999)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었다. 당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가 나왔을 때, 한국의 모든 영화관에서 상영이 금지되었고 이상현은 명성과 비판, 그리고 불운을 동시에 경험하였다. 결국 그는 미술계를 잠시 떠나 뒤로 물러섰고, 2004년에 이르러 그의 미술작업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접근방식을 들고 미술계로 돌아왔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매우 미래지향적인 설치작업이었음에 반하여 최근 작품들은 ‘미래주의적인 과거’를 탐험하고 서술하고자 비디오와 사진작업에 집중하기를 심사숙고해 결정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공과 현실, 하나의 이미지 안에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들과 연관된 질문들에 대해 성찰하고 탐구하기 위한 도구들을 그에게 가장 적절히 제공할 수 있는 매체들이기 때문이다.
5년간의 공백기 이후 제작된 첫 작업인 <자아 이탈적 명상> 시리즈는 여성으로 분장한 작가 자신의 초상사진 시리즈로 작가의 경력에 있어서 전환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작업을 일종의 선언문과 같이 기능하게 하면서, 이상현은 고의적으로 관람객을 혼란스럽게 하기를 선택하여 특정 시각의 리얼리티가 전달되기 위하여 어떻게 이미지들이 조작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시리즈는 <거짓말>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주인공으로 인한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과 그리고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거짓 이미지를 극복하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희망에 직접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자서전이다. 12점의 사진들은 부처의 모습처럼 각기 다른 명상 자세로 앉아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마도 성별 또는 나이와 같은 경계가 어떠한 의미도 없는 니르바나에 도달하고, 속세의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의 행위로서 명상을 시작했던 당시, 즉 그의 인생드라마 후 그가 택한 주요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모든 초상화들은 작가 자신을 드러내는지 또는 사진 속의 변장한 주체를 드러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하다.
수많은 예술가들 중, 몇몇만 예를 들면, 마르셀 뒤샹, 피에르 몰리니에, 우르스 뤼티, 브루스 노만 그리고 신디 셔먼은 환영의 창조자와 이야기의 발명가처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논점을 제기하고자 위장과 가면과 같은 방식을 사용해왔다. 브루스 노만의 <예술 화장>처럼, 이상현의 자화상은 자아의 재창조,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들, 실재의 위장 등, 타자의 창조와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뒤샹의 말놀이를 활용한 여성 이중 자아, 에로스 세라비(에로스가 삶이다)와 유사하게 이상현의 가면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에 머물게 하는 반면 또한 가깝게 다가오도록 이끈다. 따라서 이상현은 한 가지 이상, 한 사람 이상 아니 한 술 더 떠 한 사람의 시각 이상을 드러내기 위한 기교와 포장을 사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의 두번째 자화상 시리즈는 그가 2005년에 작업한 또 다른 사진 작업 시리즈 <리틀 시타르타>인데 10대 소녀들이 각기 다른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시타르타는 수도자라는 뜻으로 부처가 해탈하기 전 이름이다. 시타르타는 명상의 실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으나 끊임없이 궤도를 벗어나고 부와 속세의 유혹을 대면하게 되는 시험을 받았다. 이런 배경 설정에 따라 사진 속 소녀들은 모든 종류의 보석으로 치장되고 샤넬, 루이 뷔통,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들로 휘감고 있다. 그들은 헛되게도 니르바나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다소 물질적인 소녀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번쩍거리는 패션 잡지에서 찾을 수 있는 전형적인 광고 이미지들을 모방하고 조롱한다. 예를 들면, 폴 스미스 향수병 위에 명상 자세로 서 있는 소녀 사진이 그러하다. 또 다른 작품은 명백하게 루이 뷔통 광고를 패러디한 것으로 루이 뷔통 가방들을 움켜 쥔 두 명의 중국인이 소녀를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작품 중 하나인, <漁不畏網>(어불외망 - 물고기는 그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즉 욕심 없는 어부의 그물이 물고기를 얻는다)은 소녀 낚시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 지폐로 만든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미지 <한류열풍>은 널리 알려진 한류스타로 유명해진 두 명의 배우 모습이 후광처럼 있고, 삼성 디지털 카메라가 쌓인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녀를 통해 한국 영화 산업을 비꼬고 있다. 유머와 풍자는 이상현 프로젝트에 있어서 중요하며, 많은 방법으로 나타나지만 특히 일종의 자기 조롱으로 지각되거나 해석될 수 있는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이상현은 자신의 작품 속에 계속 등장한다. 항상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작가는 묵묵히 낚시를 하고 있거나, 나비날개를 달고 작품 속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사진이나 비디오의 작은 구석에 미니어처 처럼 등장한다.
궁극적으로 ‘초월하기'까지 여러 번의 탈바꿈을 거치고 날아가 버리는 존재인 나비는 그의 작업에서 메타포와 같은 역할을 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의 창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행위를 바라보는 관객이자 배우로서 자신의 행위를 영속시킨다.풍자적 희극과 유머는 신성한 대상이건 혹은 카리스마적 행동에 구현되어 있건 간에 권위가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방식과 관련된 중요한 예술 수단이다. ‘풍자적 희극’이란 단어는 심각한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다루거나 관습으로부터 그 신뢰성을 제거시킴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기표들, 상징들 그리고 원형의 뒤섞임은 친밀함으로부터 무질서를 창조하는 데에 핵심적이다. 이상현 특유의 코미디는 선과 악의 관습적 기호들을 폭로하고 그것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양식적 자유의 영역을 창조해낸다. 이는 어떻게 좌절된 기대감들이 능란한 손재주에 의해, 그 구원이 반드시 보장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코믹한 구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감이다. 이상현은 공상과학 소설과 스토리텔링의 예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기술적으로 대중 매체와 인터넷 게임으로부터 차용한 이미지들을 디지털화된 오래된 역사적 사진들과 병치하고 조합하면서 조작한다. 이렇게 흡사한 가공의 낙원을 창조함으로써 현실의 초월성이 바로 우리가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 주제에 관련되어 지속되는 관심의 한 부분으로, <선인기우도>(2007) 비디오 작업은 이상현이 외로운 여행자로 등장하여 동화와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구술하고 있다. 이상현은 우리를 긴 여행으로 인도하며, 이 여행에서 다른 공간과 시간대를 계속적으로 넘나드는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첫 장면에서, 이상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양복을 입고, 손에는 금속 탐지기를 들고 도시 풍경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찾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다음, 미니멀한 전자 음향과 더불어 빠르게 시간 영역 이동을 하여 신비한 물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은하계를 거치면서 조정석에 앉아 비행하는 우리의 영웅 이상현이 그의 노란 우주선을 타고 있는 새로운 장면이 전개된다. 우주에서 그는 갑작스럽게 님프(뜻밖에도 리틀 시타르타에 등장하는 소녀를 상기시키는)와 마주친다. 보석으로 치장한 안드로메다의 수호여신인 그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작가에게 전달한다. “이것은 중국 상인인 옹계방의 청에 의해서 조선의 김홍도가 소를 타고 있는 선인을 그린 ‘선인기우도’에 대한 보답으로 옹계방이 선물한 청동소이다. 소더비 옥션에서 100만 달러에 팔릴 수 있으니 용궁의 벽 밑에서 찾아보아라.” 다음 장면은, 이상현이 잠에서 깨어나 이것이 단지 꿈이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곧 우리의 영웅은 청동소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끝에 조선의 산, 계곡, 대나무 숲 등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면서 과거로 빠져든다. 그리고 여정은 계속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이아몬드와 함께하는 하늘 속의 이상현(비틀즈의 ‘루씨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패러디한)”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한국 사회에 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에 이러한 쾌락주의적 낙원의 심층부에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상현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불합리성과 코미디, 여행 그리고 음악을 함께 융합시킨다. 이상현이 우리를 한국의 유적지로 데려갈 때, 그는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만남과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의 철저한 탐구와 세심한 조사는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옛 사진이 제작된 시기인 조선과 현대 한국의 정치적 및 사회적 상황 양자 사이의 유사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한반도에 서구세력이 침입해온 한 세기 전 한국의 모습과 미국과 중국 정부로부터의 경제적인 압박과 북한의 핵무기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대 한국의 모습을 동일선상에 놓은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현은 최근에 뮤직비디오와 같이 짧은 배경음악이 깔린 4개의 비디오 작품을 그의 최근 전시 <제국과 조선>에서 선보였다. 2008년도에 제작된 각각의 비디오 작업은 싱글 채널 작품으로 상영시간은 배경음악의 길이와 같다. 예를 들어 <노스텔지어>에서는 작가가 어릴 적에 듣곤 하였던 1930년대 한국 대중가요가 20세기 초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제국주의 군인과 기생이 찍힌 한 장의 흑백사진과 함께 보여진다. 장식된 거울이 원본 사진에 더해졌고, 스크린 전체가 핑크빛으로 덮여 원래의 이미지가 가려 질 때까지 천천히 분홍빛의 복숭아꽃을 뱉어낸다.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해탈>에서 이상현은 당시 논쟁을 가져왔던 작가미상의 16세기 유명한 회화작품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와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의 소설『퍼플라인』의 미스테리를 차용하였다. 이 그림에서 가브리엘 데스트레(프랑스 앙리 4세의 약혼자이나 결혼직전 의문의 죽음을 함)의 여동생(그림의 인물은 사실 여동생이 아니고 가브리엘 사후 국왕의 애인이 된 앙리에트 당트라그)이 벌거벗은 채, 가브리엘의 오른쪽 젖꼭지를 붙잡고 옆에 앉아있는 동안, 가브리엘은 여왕의 상징인 반지를 잡고 역시 누드로 앉아있다. 작가는 가브리엘의 연적이 반지를 빼앗아 자신의 손을 위 아래로 움직일 때, 나비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화면 속을 날아다니고, 가브리엘은 자신의 연적의 오른쪽 젖꼭지를 만지면서 움직이는 모습 (연적의 죄를 용서하여 평화를 찾는)을 담은 영상작업을 제작하여 원래의 회화작품에 생명을 주었다. 화면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호수의 목가적 이미지가 배경으로부터 천천히 부각되는 반면 붓다의 얼굴로 나타나는 가브리엘은 그녀의 연적과 함께 화면의 전경에 남아 있게된다.
<조선비너스>에서 이상현은 보티첼리의 유명한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을 배경으로 사용하였고 비너스 대신 흑백사진에서 발췌된 한국의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대치시켰다. 1911년에 태어난 최승희는 피카소와 콕토가 아시아의 이사도라 던컨으로 극찬되었으며, 동양의 미와 선불교의 절정에 위치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배경음악은 최승희가 직접 부른“이태리 정원”으로 이 곡은 서양의 래그타임 스타일로 편곡된 한국 첫 대중가요로 알려져 있다. 비디오 작업에서, 최승희가 자신의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나비 달개를 단 작가가 그녀의 주변을 날아다닌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1921년에 제작된 모나리자 엽서 이미지로, 1921년은 루브르에 있던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후 다시 되찾은 해이다. 이 작품에서 또한 관람자는 모나리자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미륵 반가사유상(8세기에 제작된 한국의 보물)의 이미지가 드러나고, 두 이미지가 겹쳐지는 동안 그림 안과 밖을 낚시대를 든 채 나비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고 있는 이상현을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아이콘을 병치하고 대비시킴으로서 이상현은 동양과 서양을 접목시켰고 그의 하이브리드화된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각을 창조해 냈다.<워홀과 나>, <잠>에서 가까운 역사적 또는 예술적 과거를 재방문하는 대신, 이상현은 가장 거대한 아이콘 중의 하나인 앤디 워홀에게 감히 접근하여 현대 미술의 최근 역사의 아카이브로 파고들어갔다. 대담한 행위 가운데, 이상현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영화 <거짓말>과 앤디 워홀 프로덕션에서 폴 모리세이가 감독한 유명 컬트 영화들의 촬영본 부분들을 혼합하여 더블 스크린 비디오 설치 작업 <워홀과 나>(2006)를 만들어 냈다. <열기>, <쓰레기>, <저항하는 여인들> 그리고 <몸>과 같은 컬트영화들은 팩토리라고 불렸던 워홀의 작업실을 떠돌던 보헤미안들의 퇴폐적인 언더그라운드 무대의 영혼을 재현하고 구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의 반대편두 곳에서 만든 내가 알기에도‘논란의 대상이자 위법적인’영상들을 병치하고 마주함으로써, 이상현은 그들의 정서적이고 시각적으로 강한 효과들을 해체시키면서 선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이 필름들의 잠재력에 대하여 묻고 있는 듯하다. <잠>(2006)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이상현은 앤디 워홀 프로덕션이 제작한 한 익명의 필름의 초반 1분간을 차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길게 늘려 워홀의 전설적인 필름 <잠>의 실제 상영시간과 같게 만들었다. 이상현은 이 전설적인 영화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소문으로만 알고있을 뿐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한국에서 한 앤디 워홀을 추모하는 그룹전을 통해 그‘가짜’워홀 필름을 상영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필름이‘가짜’라는 것을 갑자기 알아 차렸을 때의 대중들의 반응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작가는 여기서 매체 수용과 인식을 통해 이미지의 영향력이 어떻게 생성되는가와 실제와 가상의 현안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인 전통의 경우 대개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시아 전통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에서는 예술에 매우 비중 있게 정신적인 의미를 부여했었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한국은 역사적인 시행착오의 오랜 과정을 통해 근대국가로 성장했던 만큼 이런 모든 전통은 변해야만 했다. 이상현은 기인인 듯 하며, 어떤 면에서는 영적인 탐구자이다. 이상현의 작업양식은 사변이나 행태와 같은 탐구적 형식들을 통해 감지되고 알려질 수있는 것들에서 벗어난 외부의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도하다고 간주될 수도 있다. 이상현은 미지의 것이 지니는 잠재력이 생산력으로 인정되는 한에서 근원적 타자를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야기와 이미지들의 하이퍼-사이버 패치워크를 통해, 이상현은 그만의 방식으로 우리의역사, 좌절과 욕망에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하는 정신적인 예술전통을 재생시키고 아울러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리쿠페로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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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내러티브 원근법 – 미래주의적 과거를 수사하는 탐정의 정서적 매핑

공상과학 소설은 허구적 세계를 재현하지만 그 허구의 세계가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다는 점에서 그 재현의 과학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공상과학 소설은 역사를 초월하는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허구적 차원의 미래 예측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그 허구적 상상력은 과학적 예측판단에 자리를 넘겨주고 더 이상 인과성의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허구적 상상력이 제공했던 대안적 현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 잡게 되자 그 상상력은 미래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과거주의적 관점으로 시점 이동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최근 <스타트렉; 더 비기닝>,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또는 등에서 보이는 프리퀄 신드롬(prequal syndrome)은 대중문화의 한 현상이라고 할 만한하다. 공상과학 장르에서 관습적 전통인 시간여행의 스토리 라인이 하나의 세계관, 우주관으로 파악되자 그 수용자들은 그 전생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 자신이 그 태생의 배경을 상상하기 시작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I. 이상현의 최근 작업을 지배하는 시간성 역시 이러한 프리퀄의 논리와 유사한 구조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작가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래지향적 공상과학소설과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잊혀진 전사의 여행>(1988)과 같은 퍼포먼스나 <떠오르는 지구 달>(1994)과 같은 설치미술 작업은 당시의 대표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사막에 피라미드를 세우거나 그런 가상세계를 탐사하기 위한 로봇을 제작하거나 대기권 밖의 존재들과 교신하는 등 거의 공상과학 세계를 소재로 하는 프로젝트들이었다. 반면 오랜 휴지기 이후 2004년 미술활동을 재개하면서 그가 들고 나온 작업은 <조선역사명상열전>이었다. 여기서 그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그것도 공상의 세계가 아닌 한국의 역사적 문화재가 위치한 100년 전 그곳을 찾아간다. 그의 이러한 회귀의 여행은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고적도보의 기록사진들이 담고 있는 역사 유적지들을 목적지로 한다. 그러나 그가 찾은 유적지들은 하나같이 쇠락한 폐허의 장소들이다. 식민지 치하의 조선 왕조의 운명을 상징하듯 이미 사라진 지난 왕조들의 역사 유적지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이상현의 역사 탐구를 위해 수집된 물증자료와도 같다. 
<조선역사명상열전>의 작업 동기는 그가 개인적 차원에서 겪은 동시대 체험에서 비롯된다. 문화적 사대주의 혹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 자기 비하 의식과 같은 편견들의 뿌리를 찾아 1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이러한 여행은 단지 도덕의 계보학이나 정서의 원형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가 취하는 태도는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 범죄사건을 부재로서의 현실로 재구성하는 탐정의 그것과 흡사하다. 사건과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범죄자와 그 범죄의 동기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부재로서의 현실성이란 단지 단서들만이 존재할 뿐이며 이는 사건이 파편화된 형태로서의 현실로 존재함을 뜻한다. 이상현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동시대인들의 입과 귀 그리고 그들의 사유 등 사회적 네트웍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사회탐정이 아니다. 그 수사방식은 공시적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통시적 탐사에 있다. 그는 일종의 역사탐정이다.그가 보기에 <조선고적도보> 책자 안의 한국문화재에 대한 사진들은 단순한 사진 기록이라기보다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왜곡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 사진들은 한국의 문화유적들을 마치 몰락해서 어떤 전통의 계승조차도 이루어지지 못한 폐허의 잔해들로 보여준다. 그 결과 한국의 역사를 비관적이며 퇴행적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사관이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것이 오늘날 우리 자신에 대한 패배주의적 표상의 기원이 되는 가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일본제국주의가 허구적으로 재현한 역사 아카이브를 파헤친다. 이상현은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병리현상들은 지난 우리의 역사 가운데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카이브가 오늘의 우리 모습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프리퀄의 소재를 제공한다. 그에게는 이런 탐색의 작업이 아카이브 이미지들을 단순히 복원하고 수정하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작가의 손에 의해 재활용된 아카이브 이미지들은 텍스트로서 제시된다. 그 텍스트 안에서 아웃사이더 혹은 목격자로서 주체의 이야기와 몰락한 역사적 과거의 세계로서 객체의 이야기가 혼재함으로써 이중의 내러티브 원근법이 도입된다. 이렇게 그가 수행하는 지식의 이야기가 아닌 행위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의도한다. 
II. 이번 <삼천궁녀>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은 2008년의 전시 <제국과 조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처음 <조선역사명상열전>에서 <조선고적도보>에 한정되었던 그의 아카이브 기반 작업은 이제 작가가 70년대 중반 발간한 자신의 사진집 <하회행>, 독일인 헤르만 산더가 작성한 한반도 사진 리포트, 기생관련 아카이브 등으로 확산된다. 더 나아가서 <제국과 조선>에 이르면 <조선역사명상열전>의 디지털이미지 합성방식이 재적용 되기도 한다. 이러한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삼천궁녀>에서 새롭게 시도된 국면은 수없이 많은 삼천궁녀의 캐릭터 창작이었다. 한 명의 배우와 함께 촬영 작업을 했고 이를 기본으로 그는 250명 가량의 캐릭터를 제작해냈다. 물론 이는 디지털기술의 측면에서 새로운 경험이었겠지만 이러한 장인적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그 어느 다른 작업보다 <삼천궁녀>를 통해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 또는 '후기자본주의의 추악한 관능'과 같은 주제의식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일련의 작품들이 2007년 <구운몽>을 작업할 무렵부터 그 구상이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진술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삼천궁녀>의 소재는 조선왕조의 몰락이다. 작가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조선의 낙조>에서 그가 전달하려했던 마지막 왕족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증언에 대한 후속이다. 백제가 멸망하자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던진 3천 궁녀는 권력과 욕망 그리고 그 무상함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중에서 떨어지는 3천 궁녀의 광경을 담은 작품 <낙화암>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비디오작업 <낙화의 눈물>과 쌍을 이룬다. 그러나 이번 <삼천궁녀>의 작품에는 다른 어떤 작업보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 삶에 대한 회한과 연민이 많이 노출된다. 작가는 <조선역사명상열전> 이후 이루진 못한 자신의 꿈을 몰락한 왕조의 운명과 동일시 해왔다. 그렇지만 그의 작업세계 안에서는 작가 자신의 자아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한 왕조 또는 민족의 역사와 큰 어려움 없이 혼재된다. 더 나아가 그에게 신화나 이데올로기는 개별인물의 서사범주들과 아무런 차이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적 서사라고 할지라도 이상현의 텍스트는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개별화된 내러티브의 패러다임을 선택하기보다는 객관적 패토스라는 심리적 안정 상태 쪽으로 기운다. 그는 자신의 정념을 오히려 파노라마와 같은 역사적 광경에 투사시켜 그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려 애쓴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떨어진 무수한 꽃잎들과 같은 3천 궁녀는 작가 자신의 아바타에 다름 아니다. 
향기가 없는 꽃에 나비가 날아오지 않듯 이미 흘러간 청춘의 아름다움은 이제 회고의 대상일 뿐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남산에 올라 망국의 수도 황성옛터를 바라보는 선비(작가와 동일한 관찰자이자 참여자)의 정서는 단지 노스탤지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황성애수>는 오히려 영고성쇠의 무상함을 탄식하기 이전 그 부재하는 현실로서 사라지는 것과 마지막 이별을 한다. <조선의 낙조> 타이틀 이미지로 사용되었던 '부소산의 이별'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보이는 망국의 지식인을 일본순사가 지켜보고 있고 검정양복, 검정선글래스를 착용한 작가는 목격자 혹은 증인으로서 자신의 마지막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 반면에 <삼천궁녀> 중 '남산이별도'에서는 황성을 아래로 굽어 내려다보고 있는 선비 옆에선 궁녀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음악은 이상현의 작품세계에서 개인적 기억과 공동체의 역사를 매개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지만 이번 <삼천궁녀> 연작에서 춤과 음악은 사라져가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라져가는 것을 떠나보내기 위한 이별의 의식을 상징한다. 
III.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이미지는 이상현의 작업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제시하는 세계관 자체가 아름다움이 꽃 피우던 세계는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식민화의 경험과 그 이후 미국과 같은 문화적 제국주의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 땅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기생이나 궁녀 아니면 최승희와 같은 비극적 여인들로 표상된다. 그렇지 않으면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를 소재로 한 <조선의 비너스>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이상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타즘은 서구의 미술과 문화 속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그 외에도 <조선외교통상사절단>에서 패러디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역시 서구와의 최초의 공식적 접촉이 우리에게 서구 여성에 대한 최초의 성적 판타즘의 개시였음을 보여준다.<삼천궁녀>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그 허망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총독부의 사진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100년 전 몰락한 왕조의 궁궐 풍경들은 사라져가는 것, 역사의 맹점을 되살려준다. 연못의 연꽃 위에서 춤을 추거나 빈 궁궐에서 군무를 추는 궁녀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비행하는 작가의 손에 끌려 우리가 도달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복숭아꽃 피는 도원과 궁녀들이 춤추는 장소는 무릇 낙원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작가가 이미 <구운몽>에서 보여주듯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이 눈 한번 감았다 뜨는 그 순간에 불과하듯 그 기쁨의 순간도 덧없을 따름이다. 쾌락의 충동인 에로스는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상현은 과거 속에서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 그가 끊임없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수행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오직 지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위안의 제스처를 보내기 위해서다. 

박만우(백남준 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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