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회귀
얼핏 보아, 특히 아웃사이더인 서양인에게 이상현의 최근작인 사진과 비디오 작품은 고도의 기술적인, 혼합된 한국 현대사회의 전형화된 진부함을 꾸밈없이 환기시켜 줄 수 있다. 그것들은 지난 150년 동안 무자비한 변화를 겪어낸 한 사회의 수없이 많은 이미지, 상징, 관념 그리고 개념들에 의해 특징 지어진 세계의 초현실과 완벽하게 융합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이다. 사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불과 한 세대동안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이동될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되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외부의 침략과 전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생활방식의 총체적인 붕괴는 서구문명의 영향 아래서 진행되어져 왔다. 이상현의 비디오, 사진 작업 대부분은 이 점을 완벽하게 구현한 듯하다. 이상현의 디지털 합성 이미지는 서양과 동양, 자연과 산업화, 과거와 현재, 이성과 비이성, 대중문화와 전통적인 풍경, 좋고 나쁨, 그리고 남성과 여성을 병치하여 역사의 광경과 허구적 장면들을 묘사하는 선명하고 밝은 팝 느낌의 색채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많은 역사와 신화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있지만, 작가 자신이 전통적인 이분법을 넘어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선호하므로 거기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 이상현은 그의 그림들을 동시대의 현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노스텔지어, 꿈결 같은 이미지, 공상 과학 소설 등과 같은 다양한 환경들을 동원한다.
문화적 재활용은 지난 과거의 모든 것에 사로잡힌 현 시대의 결정적 국면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개축하는 것에 대한 욕구는 인간조건의 한 부분이겠지만, 이러한 충동을 수반하는 속도, 강도 그리고 인접성은 날로 증가하는 듯하다. 지난 반세기에 있어서,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우리의 최근 과거는 가차 없이 착취되어졌다. 우리는 과거에 행했던 것처럼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하다. 관습은 우리를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 원래의 개념들을 규정짓게 만든다. 어떤 경향의 음악 또는 미술도 절대로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니꼴라 부리오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불분명해졌다. 부리오에 의하면, 우리는 생동하는 집단의 기억(디스크, 비디오 카세트, 비디오 게임 등, 구입이 가능한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문화적 기호들을 소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적 기호들은 새로운 어떤 것을 생산해내기 위해 재사용된다. 문화는 선택적으로 우리 경험의 주체가 되거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재활용 될 수 있는 기호들의 집합으로서, 하나의 사용 가능한 실재가 된다. 오늘날 작가들은 새로운 상황들을 창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아카이브를 파헤친다. 이것은 모든 원자료를 차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실천이다. 모든 종류의 실험들은 샘플링과 재전유를 통해 가능하게 된다. 원형은 새로운 문맥 안에서 생존한다. 과거가 삭제되는 것은 옛 이미지들과 기록된 기호들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
니체의 영겁 회귀론은 우리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매 순간마다 같은 방식으로 순환하는 것,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상상하도록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문맥에서, 이상현은 단순히 자신의 나라인 한국의 역사적 과거와 서구 문화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과거 또한 들여다보고 있다. 미술계로부터 고립되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미술계에서의 자신의 경험과 좌절을 미술작업에 통합시키면서 복귀를 결정했다. 이상현은 1988년에 미술계에서 그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1995년도에는 그의 세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국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1997년에는 여고생과 조각가 사이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를 그린 영화 <거짓말>(1999)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었다. 당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가 나왔을 때, 한국의 모든 영화관에서 상영이 금지되었고 이상현은 명성과 비판, 그리고 불운을 동시에 경험하였다. 결국 그는 미술계를 잠시 떠나 뒤로 물러섰고, 2004년에 이르러 그의 미술작업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접근방식을 들고 미술계로 돌아왔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매우 미래지향적인 설치작업이었음에 반하여 최근 작품들은 ‘미래주의적인 과거’를 탐험하고 서술하고자 비디오와 사진작업에 집중하기를 심사숙고해 결정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공과 현실, 하나의 이미지 안에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들과 연관된 질문들에 대해 성찰하고 탐구하기 위한 도구들을 그에게 가장 적절히 제공할 수 있는 매체들이기 때문이다.
5년간의 공백기 이후 제작된 첫 작업인 <자아 이탈적 명상> 시리즈는 여성으로 분장한 작가 자신의 초상사진 시리즈로 작가의 경력에 있어서 전환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작업을 일종의 선언문과 같이 기능하게 하면서, 이상현은 고의적으로 관람객을 혼란스럽게 하기를 선택하여 특정 시각의 리얼리티가 전달되기 위하여 어떻게 이미지들이 조작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시리즈는 <거짓말>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주인공으로 인한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과 그리고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거짓 이미지를 극복하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희망에 직접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자서전이다. 12점의 사진들은 부처의 모습처럼 각기 다른 명상 자세로 앉아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마도 성별 또는 나이와 같은 경계가 어떠한 의미도 없는 니르바나에 도달하고, 속세의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의 행위로서 명상을 시작했던 당시, 즉 그의 인생드라마 후 그가 택한 주요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모든 초상화들은 작가 자신을 드러내는지 또는 사진 속의 변장한 주체를 드러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하다.
수많은 예술가들 중, 몇몇만 예를 들면, 마르셀 뒤샹, 피에르 몰리니에, 우르스 뤼티, 브루스 노만 그리고 신디 셔먼은 환영의 창조자와 이야기의 발명가처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논점을 제기하고자 위장과 가면과 같은 방식을 사용해왔다. 브루스 노만의 <예술 화장>처럼, 이상현의 자화상은 자아의 재창조,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들, 실재의 위장 등, 타자의 창조와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뒤샹의 말놀이를 활용한 여성 이중 자아, 에로스 세라비(에로스가 삶이다)와 유사하게 이상현의 가면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에 머물게 하는 반면 또한 가깝게 다가오도록 이끈다. 따라서 이상현은 한 가지 이상, 한 사람 이상 아니 한 술 더 떠 한 사람의 시각 이상을 드러내기 위한 기교와 포장을 사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의 두번째 자화상 시리즈는 그가 2005년에 작업한 또 다른 사진 작업 시리즈 <리틀 시타르타>인데 10대 소녀들이 각기 다른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시타르타는 수도자라는 뜻으로 부처가 해탈하기 전 이름이다. 시타르타는 명상의 실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으나 끊임없이 궤도를 벗어나고 부와 속세의 유혹을 대면하게 되는 시험을 받았다. 이런 배경 설정에 따라 사진 속 소녀들은 모든 종류의 보석으로 치장되고 샤넬, 루이 뷔통,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들로 휘감고 있다. 그들은 헛되게도 니르바나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다소 물질적인 소녀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이미지들은 번쩍거리는 패션 잡지에서 찾을 수 있는 전형적인 광고 이미지들을 모방하고 조롱한다. 예를 들면, 폴 스미스 향수병 위에 명상 자세로 서 있는 소녀 사진이 그러하다. 또 다른 작품은 명백하게 루이 뷔통 광고를 패러디한 것으로 루이 뷔통 가방들을 움켜 쥔 두 명의 중국인이 소녀를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작품 중 하나인, <漁不畏網>(어불외망 - 물고기는 그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즉 욕심 없는 어부의 그물이 물고기를 얻는다)은 소녀 낚시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 지폐로 만든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미지 <한류열풍>은 널리 알려진 한류스타로 유명해진 두 명의 배우 모습이 후광처럼 있고, 삼성 디지털 카메라가 쌓인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녀를 통해 한국 영화 산업을 비꼬고 있다. 유머와 풍자는 이상현 프로젝트에 있어서 중요하며, 많은 방법으로 나타나지만 특히 일종의 자기 조롱으로 지각되거나 해석될 수 있는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알프레드 히치콕처럼, 이상현은 자신의 작품 속에 계속 등장한다. 항상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작가는 묵묵히 낚시를 하고 있거나, 나비날개를 달고 작품 속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사진이나 비디오의 작은 구석에 미니어처 처럼 등장한다.
궁극적으로 ‘초월하기'까지 여러 번의 탈바꿈을 거치고 날아가 버리는 존재인 나비는 그의 작업에서 메타포와 같은 역할을 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의 창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행위를 바라보는 관객이자 배우로서 자신의 행위를 영속시킨다.풍자적 희극과 유머는 신성한 대상이건 혹은 카리스마적 행동에 구현되어 있건 간에 권위가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방식과 관련된 중요한 예술 수단이다. ‘풍자적 희극’이란 단어는 심각한 주제를 우스꽝스럽게 다루거나 관습으로부터 그 신뢰성을 제거시킴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기표들, 상징들 그리고 원형의 뒤섞임은 친밀함으로부터 무질서를 창조하는 데에 핵심적이다. 이상현 특유의 코미디는 선과 악의 관습적 기호들을 폭로하고 그것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양식적 자유의 영역을 창조해낸다. 이는 어떻게 좌절된 기대감들이 능란한 손재주에 의해, 그 구원이 반드시 보장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코믹한 구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감이다. 이상현은 공상과학 소설과 스토리텔링의 예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기술적으로 대중 매체와 인터넷 게임으로부터 차용한 이미지들을 디지털화된 오래된 역사적 사진들과 병치하고 조합하면서 조작한다. 이렇게 흡사한 가공의 낙원을 창조함으로써 현실의 초월성이 바로 우리가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맞닥뜨리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 주제에 관련되어 지속되는 관심의 한 부분으로, <선인기우도>(2007) 비디오 작업은 이상현이 외로운 여행자로 등장하여 동화와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구술하고 있다. 이상현은 우리를 긴 여행으로 인도하며, 이 여행에서 다른 공간과 시간대를 계속적으로 넘나드는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첫 장면에서, 이상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양복을 입고, 손에는 금속 탐지기를 들고 도시 풍경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찾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다음, 미니멀한 전자 음향과 더불어 빠르게 시간 영역 이동을 하여 신비한 물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은하계를 거치면서 조정석에 앉아 비행하는 우리의 영웅 이상현이 그의 노란 우주선을 타고 있는 새로운 장면이 전개된다. 우주에서 그는 갑작스럽게 님프(뜻밖에도 리틀 시타르타에 등장하는 소녀를 상기시키는)와 마주친다. 보석으로 치장한 안드로메다의 수호여신인 그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작가에게 전달한다. “이것은 중국 상인인 옹계방의 청에 의해서 조선의 김홍도가 소를 타고 있는 선인을 그린 ‘선인기우도’에 대한 보답으로 옹계방이 선물한 청동소이다. 소더비 옥션에서 100만 달러에 팔릴 수 있으니 용궁의 벽 밑에서 찾아보아라.” 다음 장면은, 이상현이 잠에서 깨어나 이것이 단지 꿈이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곧 우리의 영웅은 청동소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끝에 조선의 산, 계곡, 대나무 숲 등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면서 과거로 빠져든다. 그리고 여정은 계속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이아몬드와 함께하는 하늘 속의 이상현(비틀즈의 ‘루씨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패러디한)”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한국 사회에 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에 이러한 쾌락주의적 낙원의 심층부에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상현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불합리성과 코미디, 여행 그리고 음악을 함께 융합시킨다. 이상현이 우리를 한국의 유적지로 데려갈 때, 그는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만남과 현재와의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의 철저한 탐구와 세심한 조사는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옛 사진이 제작된 시기인 조선과 현대 한국의 정치적 및 사회적 상황 양자 사이의 유사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한반도에 서구세력이 침입해온 한 세기 전 한국의 모습과 미국과 중국 정부로부터의 경제적인 압박과 북한의 핵무기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대 한국의 모습을 동일선상에 놓은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현은 최근에 뮤직비디오와 같이 짧은 배경음악이 깔린 4개의 비디오 작품을 그의 최근 전시 <제국과 조선>에서 선보였다. 2008년도에 제작된 각각의 비디오 작업은 싱글 채널 작품으로 상영시간은 배경음악의 길이와 같다. 예를 들어 <노스텔지어>에서는 작가가 어릴 적에 듣곤 하였던 1930년대 한국 대중가요가 20세기 초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제국주의 군인과 기생이 찍힌 한 장의 흑백사진과 함께 보여진다. 장식된 거울이 원본 사진에 더해졌고, 스크린 전체가 핑크빛으로 덮여 원래의 이미지가 가려 질 때까지 천천히 분홍빛의 복숭아꽃을 뱉어낸다.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해탈>에서 이상현은 당시 논쟁을 가져왔던 작가미상의 16세기 유명한 회화작품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와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의 소설『퍼플라인』의 미스테리를 차용하였다. 이 그림에서 가브리엘 데스트레(프랑스 앙리 4세의 약혼자이나 결혼직전 의문의 죽음을 함)의 여동생(그림의 인물은 사실 여동생이 아니고 가브리엘 사후 국왕의 애인이 된 앙리에트 당트라그)이 벌거벗은 채, 가브리엘의 오른쪽 젖꼭지를 붙잡고 옆에 앉아있는 동안, 가브리엘은 여왕의 상징인 반지를 잡고 역시 누드로 앉아있다. 작가는 가브리엘의 연적이 반지를 빼앗아 자신의 손을 위 아래로 움직일 때, 나비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화면 속을 날아다니고, 가브리엘은 자신의 연적의 오른쪽 젖꼭지를 만지면서 움직이는 모습 (연적의 죄를 용서하여 평화를 찾는)을 담은 영상작업을 제작하여 원래의 회화작품에 생명을 주었다. 화면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호수의 목가적 이미지가 배경으로부터 천천히 부각되는 반면 붓다의 얼굴로 나타나는 가브리엘은 그녀의 연적과 함께 화면의 전경에 남아 있게된다.
<조선비너스>에서 이상현은 보티첼리의 유명한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을 배경으로 사용하였고 비너스 대신 흑백사진에서 발췌된 한국의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대치시켰다. 1911년에 태어난 최승희는 피카소와 콕토가 아시아의 이사도라 던컨으로 극찬되었으며, 동양의 미와 선불교의 절정에 위치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배경음악은 최승희가 직접 부른“이태리 정원”으로 이 곡은 서양의 래그타임 스타일로 편곡된 한국 첫 대중가요로 알려져 있다. 비디오 작업에서, 최승희가 자신의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나비 달개를 단 작가가 그녀의 주변을 날아다닌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는 1921년에 제작된 모나리자 엽서 이미지로, 1921년은 루브르에 있던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후 다시 되찾은 해이다. 이 작품에서 또한 관람자는 모나리자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미륵 반가사유상(8세기에 제작된 한국의 보물)의 이미지가 드러나고, 두 이미지가 겹쳐지는 동안 그림 안과 밖을 낚시대를 든 채 나비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고 있는 이상현을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아이콘을 병치하고 대비시킴으로서 이상현은 동양과 서양을 접목시켰고 그의 하이브리드화된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각을 창조해 냈다.<워홀과 나>, <잠>에서 가까운 역사적 또는 예술적 과거를 재방문하는 대신, 이상현은 가장 거대한 아이콘 중의 하나인 앤디 워홀에게 감히 접근하여 현대 미술의 최근 역사의 아카이브로 파고들어갔다. 대담한 행위 가운데, 이상현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영화 <거짓말>과 앤디 워홀 프로덕션에서 폴 모리세이가 감독한 유명 컬트 영화들의 촬영본 부분들을 혼합하여 더블 스크린 비디오 설치 작업 <워홀과 나>(2006)를 만들어 냈다. <열기>, <쓰레기>, <저항하는 여인들> 그리고 <몸>과 같은 컬트영화들은 팩토리라고 불렸던 워홀의 작업실을 떠돌던 보헤미안들의 퇴폐적인 언더그라운드 무대의 영혼을 재현하고 구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의 반대편두 곳에서 만든 내가 알기에도‘논란의 대상이자 위법적인’영상들을 병치하고 마주함으로써, 이상현은 그들의 정서적이고 시각적으로 강한 효과들을 해체시키면서 선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이 필름들의 잠재력에 대하여 묻고 있는 듯하다. <잠>(2006)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이상현은 앤디 워홀 프로덕션이 제작한 한 익명의 필름의 초반 1분간을 차용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길게 늘려 워홀의 전설적인 필름 <잠>의 실제 상영시간과 같게 만들었다. 이상현은 이 전설적인 영화에 대해 대부분 사람들이 소문으로만 알고있을 뿐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한국에서 한 앤디 워홀을 추모하는 그룹전을 통해 그‘가짜’워홀 필름을 상영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필름이‘가짜’라는 것을 갑자기 알아 차렸을 때의 대중들의 반응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작가는 여기서 매체 수용과 인식을 통해 이미지의 영향력이 어떻게 생성되는가와 실제와 가상의 현안을 함께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인 전통의 경우 대개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시아 전통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에서는 예술에 매우 비중 있게 정신적인 의미를 부여했었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한국은 역사적인 시행착오의 오랜 과정을 통해 근대국가로 성장했던 만큼 이런 모든 전통은 변해야만 했다. 이상현은 기인인 듯 하며, 어떤 면에서는 영적인 탐구자이다. 이상현의 작업양식은 사변이나 행태와 같은 탐구적 형식들을 통해 감지되고 알려질 수있는 것들에서 벗어난 외부의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도하다고 간주될 수도 있다. 이상현은 미지의 것이 지니는 잠재력이 생산력으로 인정되는 한에서 근원적 타자를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야기와 이미지들의 하이퍼-사이버 패치워크를 통해, 이상현은 그만의 방식으로 우리의역사, 좌절과 욕망에 끊임없이 물음을 제기하는 정신적인 예술전통을 재생시키고 아울러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리쿠페로 (큐레이터)
이중의 내러티브 원근법 – 미래주의적 과거를 수사하는 탐정의 정서적 매핑
박만우(백남준 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