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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권오상, 토탈미술관

출생

1974, 서울

장르

조각

홈페이지

osa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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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Hockney), 2012

C-프린트, 혼합재료, 118 x 70 x 4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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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의 현대미술

일반적으로 권오상의 작업은 크게 ‘데오도란트 타입 (Deodorant Type)’, ‘더 플랫 (The Flat)’, ‘더 스컬프쳐 (The Sculpture)’로 구성된다. 1998년 초부터 시작된 ‘데오도란트 타입’은 연작 중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작업이다. 소위 ‘사진조각’이라고도 불리는 이 시리즈는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후 인화된 사진을 오려 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현대미술사에 전례가 없을 만큼 그 아이디어가 탁월하고 창의적이었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그것이 나온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 카메라의 속성, 조소의 조형언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탄생한 역작이다.

그의 첫 작품은 목조용 ‘끌’을 재현한 것이었다. 단단한 쇠와 나무로 이루어진 조각도구를 연약한 종이로 표현하였다. 이어서 그는 두상, 흉상, 반신상, 전신상 등을 차례로 제작하면서 작업의 영역을 넓혀 갔다.[1] 1999년 8월 <쌍둥이에 관한 540장의 진술서 A statement of 540 pieces on twins> (1999)를 “진공포장전”(대안공간 루프 개최)에 출품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언론에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2000년 2월 권오상은 대학을 졸업한다. 어떤 누구보다도 빠르고, 세련되고, 완벽한 데뷔였다.

권오상의 사진조각은 말 그대로 사진을 이용한 조각이다. 사진은 3차원의 입체를 2차원의 평면으로 재현한다. 입체가 평면이 되기 때문에 실제의 대상을 사진에 정확히 옮길 수 없다. 그 사라진 입체성을 복원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사진을 ‘소조’처럼 이어 붙여서 입체물을 구축하였다. 언뜻 보기에 사진의 약점을 보완한 기발한 방법으로 보이지만, 애당초 사진은 대상을 완벽히 재현할 수 없으며 오히려 대상을 왜곡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그는 출발했다. 사진은 기계의 눈으로 입체의 한 부분을 평면적으로 포착할 뿐이다. 그 포착한 부분은 사실이지만, 그 부분 부분을 이어 붙이다 보면 원형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즉 각각의 진술서는 사실이지만, 그 진술서를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더불어 사진의 특성에는 확대, 축소, 복사 등이 있다. <쌍둥이에 관한 540장의 진술서 A statement of 540 pieces on twins >과 같이 그는 하나의 소스로 두 인물을 만들었다. 실재와 가상이 교묘히 혼합된 모호한 존재가 태어났다.

2001년 6월 권오상은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전시제목은 바로 ‘데오도란트 타입’이었고, 외계인, 자동차, 두 마리의 강아지, 쌍둥이, 바위 등 다양한 소재의 사진조각을 선보였다. 먼저 이 전시에서 전체공간을 설명해주는 단서는 <중국식 정원 Chinese Garden>(2001)이라고 작가는 밝힌다. 바위를 묘사한 이 작업은 높이가 2미터 너비가 1.5미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제법 큰 작업이다. 그는 이 바위를 메인 공간(약 330㎡)이 아닌 뒤편에 작은 공간에 놓았고, 흰 가운을 입고 망원경을 들고 있는 여자를 그 근처에 세웠다. 이 여자는 돌부리에 올라가 있다.[2] 그리고 메인 공간에는 다마스 자동차, 외계인, 뒤엉켜 있는 쌍둥이, 강아지 두 마리, 돌부리 등을 위치시켰다.

 “일본식 정원을 보면 종종 돌이 있다. 나는 그 돌이 굉장히 조형적인 요소라 생각한다. 돌이 산일 수도 있고, 그것을 둘러싼 것은 바다일 수도 있다. 다분히 상징적이다. 전시를 구성할 때, 여백을 채우는 입장에서 전시장에 많은 작품을 설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마치 바둑을 두듯이 어떤 포인트에 조그만 것을 놓으면, 그것이 비록 중심은 아니더라도 중심의 역할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전체를 말할 수 있으며, 공간에 악센트가 생길 수 있다.”[3]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2012년 7월)

전시제목 ‘데오도란트 타입’에서 ‘데오도란트 (Deodorant)’는 방취제를 뜻하는 말로, 사람의 채취 혹은 암내를 완화시키는 용품을 지칭한다. 이 제품은 냄새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보다는 좋지 않은 냄새를 슬쩍 다른 것으로 바꾸어 사람들이 그 냄새를 못 느끼게 한다. 이는 여러모로 사진조각의 속성과 유사하다. 권오상은 사진이란 매체로 대상을 포착하지만, 그 포착한 이미지가 조합되면서 본래 대상과는 살짝 다른 것이 만들어진다.[4]


2.
권오상은 2003년 ‘더 플랫’ 연작, 2005년 ‘더 스컬프쳐’ 연작을 연달아 발표한다. 10그램도 나가지 않는 단순한 조각과 2톤에 이르는 육중한 조각은 감히 한 작가의 작품으로 보기 힘들 만큼 간극이 몹시 커 보였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그는 잡지의 시계, 화장품, 보석 등 광고사진을 오린 후 사진 뒤에 철사를 붙여 바닥에 세웠다. 바람에 날릴 정도로 가벼운 이 조각을 그는 세상에 혼자 내보내지 않고, 다수의 조각을 설치한 후 촬영하여 사진으로 프린트하였다. 입체(상품)→평면(잡지의 이미지)→입체(조각)→평면(사진)으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더 플랫’ 시리즈는 사진의 평면과 조각의 입체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과 뚜렷한 연관성을 갖는다.

사진조각에서 눈, 코, 입, 귀 등을 자세히 보면, 의외로 평면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목구비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더 플랫’ 연작의 단순한 조각을 유심히 보면, 의외로 입체적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은근슬쩍 드러나는 철사를 통해 이 조각이 분명 바닥에 서 있다는 것, 즉 엄연한 입체구조물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물론 충분히 감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스컬프쳐’ 연작 중 가장 놀라운 (2005)는 슈퍼카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Lamborghini Murcielago)’를 청동으로 만들고, 그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 작업이다. 작가는 실물을 한번도 보지 않은 채 인터넷, 서적, 잡지, 미니카 등에서 정보를 수집하여 자동차 형상을 제작하였다. 여러 매체에서 따로따로 얻은 정보를 합친 것으로 이는 진술서의 모음과 비슷하며,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의 방식과 뚜렷한 연관성을 갖는다. 게다가 조각은 원형을 만들고 석고 틀을 떠내는데, 이 과정은 필름에서 네거티브를 만드는 것과 같으며, 석고 틀을 조립해서 다시 원형을 만드는 작업은 사진의 인화 과정에 들어맞는 것이다.

의 제작과정이 화제가 되어 주재료가 청동이란 사실을 이미 알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표면에 두꺼운 주황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어렴풋이 보면 이것의 재질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플라스틱에 채색이라고 예상할 가능성이 있음) 그러나 직접 만지면 재료가 청동이란 걸 직감할 수 있으며, 그 순간 이것이 매우 무겁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2006)는 후속작이다. 이 작품부터 ‘더 스컬프쳐’ 연작에 다색이 적용되었다. 작업실 풍경을 다룬 작업으로 큰 조각대 위에 각종 물건이 올라가 있으며, 물건들과 조각대는 일체형이다. 그는 <모호한 420장의 진술서>에서 돌로 조각대를 은유한 적이 있었지만, 사실상 그는 이전까지 조각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조각을 세우기 위해 바닥에 장치를 하지도 않았다.[5] 그런 그가 조각대를 예의주시했다. 조각대가 가진 속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서였다.

2000년대 중반 ‘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도 변화를 맞이한다. 위 두 연작과 함께 전시된 2006년 개인전에서, 권오상은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과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의 아이디어를 교차시켰다. 그는 총 5개의 사진조각을 공개했는데, <칼레의 시민>(1889)을 염두 한 것이다. <칼레의 시민>의 사람들은 모두 밧줄에 묶여서 저항 불가능한 상태이다. 권오상의 (2005-2006)과 (2005-2006)의 모델은 옷을 벗고 있으며, (2005)의 모델은 코트에 팔을 넣고 있고, (2005-2006)의 모델은 양손에 짐을 들고 있다. 모두 두 팔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무방비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2005-2006)의 남자모델은 조각대를 밟고 있다. 이 조각대의 크기는 <칼레의 시민>의 좌대 크기와 동일하다. 조각사에서 로댕은 낮은 좌대를 처음 사용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의 모델은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편안하게 좌대에 한 발을 내딛고 있다. 이후에 제작된 (2006-2007)의 여자모델은 항상 좌대에서 넘어진 모습으로 설치된다. 부조 및 건축의 부수적 요소로 쓰인 조각을 제외한, 단독 조각상의 대다수는 전통적으로 좌대 위에 수직적으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좌대를 벗어나 수평적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조각. 권오상만의 유쾌한 상상이다.

계속해서 2008년 6월 권오상은 맨체스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맨체스터 트리엔날레(Asian Triennial Manchester)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 맨체스터 시립미술관이 그에게 개인전을 제안하였다.

그가 맨체스터에 체류하면서 인상 깊게 본 것 중 하나가 공원이었다고 한다. 보통 유럽의 공원 안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거기에 인물상, 기마상 등이 놓인다. 이는 일종의 조각이 있는 공원인데, 권오상은 조각이 있는 공원을 관념적으로 옮겼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에게 배정된 전시장은 천정이 6m 이상으로 상당히 높았다. 사진조각을 전시장에 단순히 늘어놓는다면, 높은 천정의 공간에 압도되어 매우 단조로운 구성이 될 게 뻔했다.

우선 권오상은 광장을 단순화한 낮고 넓은 조각대 2개를 전시장 가운데에 놓고, 전시장 곳곳에 사진조각을 배치하였다. 이 사진조각들은 각자만의 또 다른 조각대에 올라가 있었는데, 조각대마다 높이가 모두 달라 어떤 것은 우뚝 솟기도 하고 어떤 것은 평범하기도 하였다. 또한 기마상을 연상시키는 (2008)가 전체 공간을 조망하며, 그 맞은편에는 (2007)가 자리하였다. 그리고 조각상 기단에 기댄 사람, 조각상 옆에 쓰러진 사람, 손을 보여 서 있는 사람 등이 설치되었다. 이어서 덩어리감이 있는 이 나란히 놓여졌다. 이는 사진조각만으로 조각상, 사람, 숲이 뒤엉킨 광경을 연출한 것으로, 관객이 더해지면서 더욱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는 다양한 높이의 조각대와 포즈를 통해 높이의 강약을 주었고, 게다가 건축의 벽감처럼 한 벽에 선반을 설치하고 그 위에 사진조각을 올려놓았다.[6]

권오상은 하나의 작업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드로잉과 작가노트를 작성한다. 하지만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그의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는 작품 간의 관계를 풀어내는 이른바 ‘개념도’에서 작품 간의 영향관계를 내용적으로 또는 형태적으로 고려하여 작업들을 계열화시키거나 순서대로 나열한다. 이를 통해 종종 작업의 전개에 있어 빈 부분을 찾게 되며, 동시에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방향성을 얻게 되고, 나아가 작업 간에 명확한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작품들이 중층적이고 유기적인 의미 망을 형성하길 희망한다.

 
3.
2010년을 즈음하여 권오상의 세 연작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각 연작이 가진 고유한 요소 및 특징이 다른 연작에 영향을 주면서 각각의 연작이 현저하게 변모된다.

형식적으로 제일 큰 변화를 보인 건 ‘더 플랫’ 연작이다. 2011년 개인전에 나온 ‘더 플랫’에는 월간잡지 “월페이퍼 (Wallpaper)”의 이미지가 쓰였다. “월페이퍼”는 건축, 패션, 여행, 디자인, 미술 등을 다루는 잡지이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발간되는 다국적 잡지이고, 발간 시점마다 지구상의 가장 멋진 사물과 장면을 담고 있다. 권오상은 주로 한 권의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예를 들어 <2005 June>(2010)은 2005년 6월호에 실린 이미지로만 구성된다. 따라서 건축물과 디자인된 사물, 그래픽 등을 포함하여 다채로운 물건이 한 화면에 등장하며, 각양각색의 물건으로 인해 보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화면구성이 나타난다. 또한 이전 ‘더 플랫’에서 살짝살짝 보였던 철사는 이제 과감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철사는 종이를 지지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화면구성에 있어 선적인 흐름을 생성하는 조형요소인 셈이다.

이어진 2012년 개인전에서 ‘더 플랫’은 좀 더 실험적으로 바뀌는데, 그는 <2009, July (Head)>(2012)[7]처럼 망점이 보일 정도로 사물을 클로즈업하여 평면에서의 양감을 테스트하며, <2011, December (Vase)>(2012)[8]처럼 동일한 사물을 크기가 다르게 반복 배치하거나 <2011 , February (Prize)>(2012)처럼 유사한 모양을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시각적 라임(rhyme)을 부각시켰다.

다음으로 ‘더 스컬프쳐’ 연작은 2010년 서울 개인전에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출품된 5점은 모두 오토바이를 소재로 한 작업으로 핸들과 바퀴가 제거되었기에 토르소의 형태를 띠었다.[9] 미술사적으로 토르소의 개념은 19세기 로댕과 연관되어 형성되었다고 이야기된다. 로댕 이전까지 불안전한 인체, 즉 인체의 몸통만으로는 미적 가치를 가지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로댕은 불안전한 형태가 완벽한 형태보다 도리어 상상력을 더 자극시킬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본격적으로 몸통만을 만들었다.

화려한 색으로 채색된 이 신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퀴가 달린 독특한 조각대이다. 돌림판의 역할을 하는 이 받침대는 제작과정에서 사용되는 기구이다. 선재(線材) 방식으로 금속을 연결했기에 조각대 자체에서 부피감을 거의 느낄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토르소의 양감이 훨씬 극대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토르소 조각 표면은 다소 울퉁불퉁한 편이다. 화가가 오일페인트와. 특유의 붓질(brushwork)로 화가의 혼을 암시하듯이, 권오상 역시 조각가의 혼이 담긴 터치를 생각하며, 그런 터치가 있는 현대조각을 제작하길 원했다. 그렇다고 조각가의 진짜 혼을 작업에 담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면서 실제로 혼이 담겼을 수도 있음) ‘더 스컬프쳐’ 연작을 하면서 그는 조각이라는 장르의 고유성을 되새겼고, 동시에 조각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이처럼 ‘더 플랫’과 ‘더 스컬프쳐’ 연작은 정물을 다루고 있다. 이 정물들은 공통적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물건이다. 작가는 2005년 3대의 슈퍼카를 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이었고, 이 자동차가 나중에 ‘더 플랫’ 연작인 <2009, September>(2011)에 나오기도 한다. ‘더 스컬프쳐’에서의 소재가 ‘더 플랫’의 소재가 된 것이다.

팔, 다리, 머리가 없는 토르소와 대조되게, 2011년 여름 보그 코리아(Vogue Korea)가 주최한 “Fashion into Art”전에서 권오상이 선보인 작품은 팔, 다리,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였다. 그는 이 장비를 ‘더 스컬프쳐’ 연작의 연장으로 간주한다. 이 전시는 미술가와 디자이너가 한 팀이 되어 작업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고, 권오상은 패션 디자이너 한상혁과 파트너가 되었다.[10] 패션쇼와 오토바이 경주를 결합하고자 했던 권오상은 전시장에 서킷(circuit, 오토바이 경기장) 형태의 런웨이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런웨이는 아니었다. 조각대를 닮은 이 런웨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았고, 중간에 끊어진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으며 계단, 평균대, 구름다리도 있었다.

한상혁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3명의 패션모델들은 권오상이 고안한 오토바이 보호대(무릎[11], 팔꿈치, 등, 머리)를 착용하였다. 권오상은 기존 보호대에 합성수지를 덧씌우고 채색하여 특수한 보호대를 만들었다. 이 보호대를 찬 모델의 머리, 등, 팔꿈치, 무릎은 확실히 두툼하게 보였다. 마치 무언가가 차곡차곡 더해져 양감이 생성된 것 같았다. 그리고 권오상은 이 모델들이 개조된 런웨이를 다니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모델은 여느 패션쇼처럼 우아하게 걸을 수는 없었다. 모델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손으로 구름다리를 이동했으며, 심지어 일부 구간에선 엎드려 기어가야만 했다. 높은 계단에 올라 꼿꼿이 서 있는 모델과 바닥에 엎드린 모델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마지막으로 사진조각에서도 주목할 만한 도약이 일어난다. 먼저 제작방식이 다원화된다. 과거에는 모델이나 사물을 촬영한 후 그 이미지를 인화하였다면, 2011년부터 권오상은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내려 받은 이미지를 출력하여 구조물에 붙인다. 이 방식이 처음 도입된 작업은 (2011)인데, 가방을 등에 멘 등산객이 어깨에 염소와 부엉이를 짊어지고 있다. 이전부터 조각에서의 덩어리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사진조각에 덩어리를 붙이는 것을 모색하던 중, 마침 등산 관련 에피소드를 겪으며, 인체에 등산용품과 동물을 덧붙이게 된다. 이렇게 덩어리를 붙이는 방식은 이후 2012년 사진조각에서 더욱더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12] 에서 취했던 검색 방식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권오상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를 재현하면서 실물을 보지 않고 검색 등의 방법으로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 방법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는 (2012)는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었던 권오상은 인터넷에서 호크니의 20대부터 최근까지의 다양한 사진을 찾아서 조합했다. 따라서 이 작업을 자세히 보면, 모양과 색채가 이상한 부분이 꽤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애를 먹었던 부위는 등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뒷모습을 잘 찍기 않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을 강구하다가 그는 호크니가 70년대에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그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그 이미지를 캡쳐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등 부분에는 큰 픽셀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올해 개인전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진조각은 (2012)와 (2012)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바로크 시대의 조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며, 이 작품들의 원작은 크고 작은 사람이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비교적 복잡한 모습을 띠는데, 권오상이 이 조각들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 복잡한 구성 때문이다.

 “, 에는 작은 덩어리들이 붙어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서있는 대리석 조각은 발목 부분이 깨지기 쉬워 천, 나무, 천사, 아이 등이 붙어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걸 일종의 소조처럼 덩어리를 붙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덩어리를 갖다 붙이면 구성이 더 복잡해지면서 더 재미있을 수 도 있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만들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 자체가 조각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2012년 7월)

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1618-1619)를 모태로 한다. 원작에서 주인공 아이네이아스는 절름발이 아버지 안키세스를 업고,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데리고 전쟁에 휩싸인 트로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권오상은 이 세 사람을 자신의 지인으로 대치하였다. 그 중 아스카니우스에 대응하는 작은 사람은 엔진오일을 들고 루비(Ruby, 상표이름) 헬멧을 쓰고 나이키 옷을 입고 있다. 엔진오일과 헬멧은 이전 오토바이 작업과 연관된 소재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안키세스는 양털 같은 천으로 하체를 가리고 있다. 이 천에는 특이하게 눈, 코, 이빨 등 얼굴이 묘사된 부분이 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권오상은 눈과 이빨이 있는 옷을 떠올렸다. 지퍼를 머리끝까지 올리면 상어의 얼굴이 완성되는 후드티가 최근 유행했는데, 그 원조가 베이프 샤크 후디(Bape Shark Hoodie)였다. 이 옷에는 상어의 눈과 이빨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권오상은 이 옷을 작업에 포함시켰다.

그 옆에 놓인 는 오스트리아 조각가 발타자르 페르모저(Balthasar Permoser)의 (1718-1721)이 원형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오이겐 왕자(Prince Eugene of Savoy)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는 유럽 근대사에 있어 가장 뛰어난 군인 중 하나였으며, 이 조각은 그의 여름별장인 벨베데레 궁전에 소장되어 있다.

의 제작배경은 인도와 관련된다. 작년 인도의 한 컬렉션이 권오상에게 작품제작을 문의했고, 그는 페르모저의 작품을 기본으로 하는 사진조각을 제작하기로 제안한다. 그런데 인도 측에서는 인도사람이 작업에 포함되길 원했다. 권오상은 ‘인도의 국민배우’를 검색하였고, 그 결과 아미타브 밧찬(Amitabh Bachchan)을 모델로 선정하게 된다. 작가는 밧찬을 중앙에 놓고, 그 앞에는 미란다 커(Miranda Kerr)를 뒤에는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를 위치시켰다. 문제는 주인공 밑에 깔린 사람이었는데, 카스트 제도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가 스스로가 그 아래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밧찬의 얼굴 옆에는 둥근 공이 있다. 사실 이것은 ‘더 플랫’ 연작인 <2011, October (3D)>(2012)에도 나온다. 그는 공 모양의 대리석 이미지를 활용하여 입체를 만들었다. 또한 원작에 있던 천사는 원숭이로 대치되었다. 이 원숭이는 이미 사진조각 (2011)에 출연한 적이 있다.[13]

3+
보통 권오상의 연작은 ‘데오도란트 타입’, ‘더 플랫’, ‘더 스컬프쳐’라고 일컬어진다. 아마도 각각의 작업이 너무도 독창적이고 매력적이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더 플랫’과 ‘더 스컬프쳐’가 같이전시되었을 때 두 연작은 상이해 보였지만, 이후 연작마다 고유의 조형언어가 풍성해지고, 더불어 각 연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연작과 연작 사이의 간극이 지속적으로 좁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작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억지로 연작을 구분하는 것도 구태의연하게 보인다.

편의상 그의 작업을 연작의 개념에서 접근했지만, 처음부터 권오상은 어떤 고정되고 협소한 영역에 종속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열린 태도로 조각을 비롯하여 사진,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고, 나아가 패션, 디자인 등 다른 분야와의 접속도 주저하지 않았다. 때론 그만의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개념을 제시했고, 그와 함께 면밀하게 자신의 작업을 뒤돌아보기도 하였다. 그는 하나의 작업보다는 조각을 고민했고, 조각보다는 현대미술을 고민했으며, 현대미술보다는 예술가의 의미를 고민하였다. 하나의 작업, 조각, 현대미술, 예술가의 의미. 그는 이 레벨들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예술적 탐험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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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오상은 무겁다고 여겨지는 ‘돌’을 속이 텅 빈 사진조각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2] 이 작품의 제목은 <모호한 420장의 진술서 A statement of 420 pieces on twins >(1999)이며, 돌과 여자는 일체형이어서 분리되지 않는다. 이 돌은 조각대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3] 크고 작은 돌덩어리들은 전시에서 조형적 요소로 활용되었다. 이후 덤불에 얼굴이 묻힌 (2003)와 (2007), 수북이 쌓인 옷에 깔린 여자를 표현한 (2007) 등이 같은 맥락의 작업이다.

[4] 권오상은 암브로타입(Ambrotype),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과 같이 사진기술사에 이미 존재하는 기법인 것처럼 ‘타입(type)’을 붙여 ‘데오도란트 타입 (Deodorant Typ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5] 그는 바닥에 스스로 설 수 있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조각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더 플랫’의 단순한 조각도 분명 조각인 것이다.

[6] 이후 작품설치에 있어 높낮이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컨대 5개의 인물 흉상과 4개의 동물 머리로 구성된 (2011-2012)의 경우, 각 사진조각의 높이뿐만 아니라 조각대 높이도 조금씩 다르다. 특히 유난히 긴 타조의 목이 인상적이다.

[7] <2009, July (Head)>은 DSLR 카메라로 사물을 클로즈업한 작업이다. 이전 ‘더 플랫’ 연작에서는 대형필름 카메라를 이용했다.

[8] <2011, December (Vase)>의 화면 위아래에 같은 사물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것은 잡지 목차에 실린 작은 이미지와 이후에 나온 큰 이미지를 모두 사용했기 때문이다.

[9] 권오상은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으면서 ‘더 스컬프쳐’ 연작을 구상했다. 그가 지냈던 스튜디오의 문이 80c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자동차와 가장 유사하게 디자인된 사물인 오토바이를 만들었다. 최초의 오토바이에는 핸들과 바퀴가 있었는데, 작업실을 이전하다가 핸들과 바퀴가 손상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핸들과 바퀴를 없애면서 작품은 토르소의 형태가 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인체조각도 처음에는 팔다리가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조각이 방치되거나 옮겨지는 등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팔다리가 잘려나가 토르소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10] 2002년 권오상은 일본 백화점 업체와 처음 콜라보하면서 를 제작한다. 이후 그는 나이키(Nike), 펜디(Fendi), 팝 그룹 킨(Keane) 등 여러 사람들과 콜라보하였다.

[11] 오토바이 무릎보호대를 ‘knee slider’라고 한다. (2007)가 이와 직접 관련되며, , (2007-2008)의 제목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12] (2011)도 같은 맥락의 작업인데, 이 작업에서 모델은 미러볼을 밟고 있다. 이 미러볼은 실제 사물로서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에 최초로 오브제가 쓰인 것이다.

[13] 이전 사진조각과 다르게 에는 4명의 사람뿐만 아니라 원숭이, 둥근 공, 빗자루, 수평계, 나무, 나팔 등 과할 정도로 많은 사람과 사물이 등장한다. 이러한 촘촘한 배치는 ‘더 플랫’ 연작의 조밀한 사물 배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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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작품의 다양한 측면과 그 필연성

한국작가 권오상은 현대적인 표현형식을 통해 팝아트, 전통적 방식의 정물화, 인물사진에 상응하는 듯한 복합적이면서도 다양한 스타일로 사진과 조각이라는 두 매체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고 있다. 이때 작품의 표현형식은 세계사의 파편적인 내용, 다다이스트 꼴라쥬에서 엿볼 수 있는 조각들을 이어 붙인 흔적, 미장센 구조와 같이 널리 알려진 철학적 토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연극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빌어 그의 작품을 ‘상영되는 것’이라 가정해보면, 관람자들은 하이브리드 이미지 즉 혼성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작품의 다층화 된 구조를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다층화 된 구조는 대상을 단일화하여 인식하려는 우리의 시각에 의해 주요한 역할을 하는 주연배우와 세트배경 모두가 한데 엮어진다. 왜냐하면 우리 눈은 사진 조각들로 이루어진 표면과 작가의 지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시도의 결과물인 베니어를 훑어보면서, 눈앞에 펼쳐진 것에 내러티브가 내포되어 있던지 그렇지 않던지 간에 그 속에서 어떠한 내러티브를 읽어내려 한다. 다시 말해 권오상은 관람자의 눈이 베니어나 사진조각들로 이루어진 작품 표면을 바라보면서 대상을 이해하게 되는 방식을 재정의 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2차원적 3차원의 대상과 3차원적 2차원의 대상을 만들고 작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이어 붙인 수많은 조각들 사이의 틈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의 시선이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재구성하며 현실을 조롱한다.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총체적인 시각을 재구성하는 것은 미술사에 비추어 볼 때 그리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인상파들은 산업혁명과 재빠르게 돌아가는 모터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사회현실을 마음속으로 다시금 그려냈다. 이러한 현실은 기차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관차 안에서 보여지는 재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흐릿한 풍경이 서서히 우리에게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다다이스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평범함과 부조리함을 밝히고, 레디메이드 오브제나 작은 조각들을 한데 모은 꼴라쥬의 형태에서 무엇이 예술작품이라 간주되는 것의 가치를 평가하는지 시각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재정의 해보도록 유도하였다. 게다가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시적인 기분이나 이것의 쇠퇴에 영향을 주는 의식 아래의 사유에 이르는 것들을 표현해냈다. 이는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지만 어떠한 순간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를 반영하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행위에서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무의식적인 심상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예술은 더 이상 무엇인가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행위 그 자체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여전히 팝아트, 미니멀리즘, 그 밖의 수많은 예술사적 움직임은 지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의 총체적인 시각을 재배열하고자 하는 독자적인 방법에 찾아왔다. 특히 진정으로 참신한 빛줄기라 할 수 있는 권오상은 위에서 언급한 “예술사적 사조(-ism)” 들과 작가 개인의 스타일을 결합시켰다. 그는 전통적인 규칙인 캐논을 고수는 하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이를 위태롭게 하여 캐논을 다시 써내려갈 만큼의 새로운 시도를 한다.

비록 그의 작품은 사진이나 조각 중 하나의 영역으로 쉽사리 분류될 수는 없지만, 예술이라는 큰 지붕 아래 사진과 조각을 구별하는 틈 사이 즉 두 영역 사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권오상 작품의 연극적인 요소로 되돌아가 보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 시리즈는 갤러리라는 무대 위에 사진 조각들을 한데 모아 만든 사진적 구조물로 된 배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실제 모델을 능가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실제와는 아주 조금 다른 인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체적인 사람의 형태와 옷차림이 잘 나타나도록 상세하게 촬영된 사진으로 이루어져있다.

사실상 권오상은 촬영을 통해 사진을 얻고 이를 모아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데, 그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내리라 결심한 현대판 프랭크슈타인과 같다. 인화된 사진은 생명을 재창조하려는 작가의 노력과 함께 건물을 쌓아 올리기 위한 기초벽돌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원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이는 1930년대 클로드 카훈(Claude Cahun)의 꼴라쥬 작업을 떠오르게 한다. 카훈은 작품 속에서 성별이 엇갈리도록 분장하여 성별이 모호해져버린 신체에 생명을 부여해줌으로써 현재 그대로의 상태를 전복시킨다. 그러나 권오상은 단순히 비평을 위해 전복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모든 사람이 작품 속 배우가 될 수 있다. 즉 어떤 경우에는 일반적인 쇼핑객이나 생각에 잠긴 여자도 그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어떠한 흔적이 남아있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대상을 제시해줌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인생과 사회의 구성요소 대부분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소비하는 것, 우리 스스로가 어떤 상태에 처해있도록 하는 이 모든 것이 학습되고 각인되어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이다. 사실 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의 제목 ‘데오도란트’는 인구의 소수만이 체취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아시아에서의 서양 방취제 시장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방취제가 효과가 있을지라도 아시아인들에게는 좀 거리감이 있다. 이를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작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상의 평범한 측면을 평가해보고 규범화시키려는 일환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피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권오상의 작품에서 패션은 단순히 도시 거리의 패션 스타일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너무 과감한 해석일지 모르지만, 패션에 정치적 책략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작품의 형태를 이루는 수백 장의 사진조각들을 이어 붙이면서 생긴 갈라진 틈과 이어붙인 자국으로 인해, 폭력과 트라우마의 의미가 권오상 작품의 배우 즉 인물상의 반짝이는 베니어 속 깊이 새겨지게 된다. 전쟁, 테러리즘, 세계 안전이라는 개념은 결코 우리에게 낯선 것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세계는 전쟁과 군사적 전략으로 뒤얽혀있기 때문이다. 사진 조각을 이어붙인 자국이 있는 작가의 인물상은 전쟁터에서의 파편화된 신체 혹은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스트의 폭탄테러에 의해 파편화된 실제의 신체이든 그렇지 않든, 파편화된 신체 이미지는 불행히도 거의 매일 매일 이슈로 다루어지면서 주요 뉴스 방송국의 일반적인 논점이 되어버렸다. 작가는 수많은 조각들이 다시금 험피 덤피(Humpty Dumpty)나 메리 셸리(Marry W. Shelley)가 쓴 소설 속 괴물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어붙인 흔적 즉 봉합된 자국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비극을 자인하는 동시에 언젠가는 좀 더 나아질 것이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정상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시각과 물질성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태도는 “더 플랫(The Flat)” 시리즈까지도 계속된다. 이 시리즈에서 권오상은 최고급 패션 잡지와 사설에서 모은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호화스러워 보이는 평평한 벽을 만들어 나간다. 수집한 이미지들은 사치스러운 시계, 값비싼 향수나 크림, 엄청난 가격대의 보석과 작은 장식물들이다. “더 플랫” 시리즈 작품은 화면 전체가 브랜드 로고와 과도한 이미지들로 가득 찬 소비자중심주의의 커다란 공문서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것이 요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타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와 미국의 스타작가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는 프랑스 뤼비통과 협력하여 해당 브랜드의 고가 지갑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오상 작가는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새로운 모티브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브랜드 로고와 필수 아이템으로 간주되는 악세서리들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오늘날 삶의 포화상태를 설명해주고 있는 생산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의 사진은 완전한 소비재의 이미지들이 꼴라쥬되어 만들어진 작품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 이것은 조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권오상은 각각의 확대된 사진들을 오려내고 이를 사방으로 몇 피트나 되는 넓은 스튜디오 공간에 세워서 배열한다. 이때 카메라를 정면에 두고 소비재가 잘 보이도록 구성해놓은 넓은 공간이 동일하게 보이도록 카메라 앵글을 조절함으로써 작가는 모든 물체가 동일한 평면 위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평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이미지들은 실제 공간에서 다양한 크기를 갖고 다양한 위치에 놓여져 있다. 즉 작가는 보여지는 시각적 이미지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을 전복시키고 우리들로 하여금 눈앞에 있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도록 유도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품 속에 배치된 작은 세상을 통해 “더 플랫” 시리즈는 최신 유행을 쫓아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한다.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작품 속 소비재에 몰두하고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도록 유도하기도 하는데, 이는 작품 속 대상의 절대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여기서 좀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리즈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물질(materials)이라는 단어, 오늘날의 물질주의(materialism)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는 물질성(materiality)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광고와 디스플레이라는 수단을 통해 “더 플랫” 시리즈를 전개해나가고 있는데,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나가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근본적인 우리 자신의 선호도나 소비습관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권오상 작가는 작품을 배우로서 그리고 그들이 연기하는 무대의 최고의 구성요소로 제시한다. 특히 “더 플랫” 시리즈에서 각각의 사물들은 그림 이미지로 된 조각이기도 하지만 이것들을 한데 모으면 완전한 하나의 벽지 혹은 현란한 무대가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측면에서, “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의 인물상들은 독립적인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대상들은 재구성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조각조각의 단편적 구성요소 때문에 살아 숨쉬는 신체인 관람자가 그들 자신만의 행위를 취하는 것과 대비되며 마치 배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작가는 관람자가 자신의 작품과 피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관람자가 파편화된 조각과 이를 재구성하는 것에 대해 상상하던지, 물건은 사지 않고 구경만하는 사람과 같이 관조하는 상태이던지 이는 평범한 고급문화의 껍데기가 아닌 예술을 향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작품가격이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오늘날의 시장에서 우리의 바라보는 시각과 판단은 종종 가격표와 함께 이어진 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권오상은 현대예술의 피할 수 없는 구성요소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물질성을 설명하고 재정의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관람자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방법을 재구성하려 한다. 즉 “더 스컬프쳐” 시리즈를 통해 우리 앞에 화려한 색과 반짝이게 코팅된 값비싼 차를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관람자들의 응시를 위태롭게 한다.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대상은 실제로 브론즈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화려한 색이 입혀진 것이다. 예를 들어 실물 크기의 오렌지색 람보르기니인 The Sculpture 5 (2005)는 새롭게 선보여지는 것처럼 반짝이는 표면 때문에 여전히 표면의 페인트가 마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관람자들은 설명을 읽거나 몰래 살짝 작품을 만져보았을 때만이 이 자동차가 전통적으로 고급재료인 브론즈를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다시 한번 우리의 눈이 실제 진실과 다른 어떠한 사실을 믿도록 속이는 변화구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권오상의 작품과 그 정교한 복잡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사진이나 조각이라는 카테고리 보다는 다양성이라는 개념 아래 분류하는 것이 더욱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물리학에서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복잡한 구조를 단순하고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서술할 때 사용된다. 권오상이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에서부터 경제학, 물질성, 인간본성에 이르는 복잡한 개념에 대한 설명을 계속해서 포장하고 조작하여 보여주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을 조롱하고 이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물론 권오상 작가 이전의 선구자들도 그러했겠지만,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변 세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에릭샤이너(독립큐레이터, 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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