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순수
박대조는 자연과 함께 삶에 존재하는 여러 사건들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의 인물화를 만들어 낸다. 달리 말해서 그는 삶을 관통하는 가파른 언덕에서 고통 받고 있음에도 아이들을 통해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을 그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해 보이는 이 아이들은 그들의 눈동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고독, 상실과 고통의 상처들을 견뎌내고 있다. 박대조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몰이성적 욕구로 인해 우리의 자연이 훼손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가 묘사한 사진 속 모델은 삶의 토대뿐만 아니라 삶 자체의 의미를 묻는 실존적인 순간을 그린 은유이다. 이러한 생각은 불교와도 관련이 있으며, 우리의 목적론적인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며 우리가 우리의 손에서 세속적인 욕구를 놓기 전까지 인류는 계속 고통 받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포용한 것이다. 불교의 교리를 가까이 접하며 성장한 그는 자연과 함께 오롯이 선다는 것을 강조하는 도교적 믿음을 불교 교리와 융합하였다. 그의 작품과 에세이들은 이러한 그의 두 종교철학에서 기인한다. 박대조는 자연을 존중하며 살아야한다고 믿는 노자와 장자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것은 종교로 귀의하고자 하는 의도라기보다는 조화로운 자연의 혜택을 강조하는데 역점을 두는 실천철학으로서 환경에 대한 진정한 염려를 생겨나게 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오존층파괴, 수질 및 토양오염이나 핵은 우리 선조 때에는 상상조차 못할 일들이었다.
DOS의 디지털 언어와 사진을 결합시킨 랄프 윌츠회퍼(Ralph Ueltzhoeffer)의 텍스트 포트레이트(Text-portrait)와 달리 박대조는 돌이라는 자연적 재료위에 아이들의 사진을 옮겨 놓는다. 그는 모든 색이 하나에 포함되고, 자연으로의 회귀처럼 다른 색에서 부재하는 모든 색을 표현하기 위해 보통 단색이나 흑백을 사용한다. 인간은 죽고 나서 자연의 일부로 환원된다. 박대조에게 돌은 인간의 시간이 아로 새겨져있는 자연의 연료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순수한 아이들의 초상으로서 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 노력한다고 볼 수 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처럼 박대조는 인물사진 기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리히터는 사진 속 주인공들을 매체에 등장하는 사람들, 실제 혹은 상상 속의 사람들로 변형시킨다. 이 두 아티스트는 예술 매체의 스탠다드한 모델에 도전하면서 인물사진의 정의를 넓혀오고 있다. 박대조의 작품은 회화와 사진분야에 걸쳐있는 리히터의 작품과 유사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조각이라는 장르를 받아들이면서 경계를 확장시켰다. 그는 이미지가 그려진 돌을 자르거나 깎는다. 그의 2008년작 Binarity 2에서 볼 수 있듯이 돌에 새겨진 그리드나 층들은 얼굴을 한줄기 빛처럼 만든다. 리히터는 사진위에 바로 유화물감으로 채색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박대조는 독창적인 재료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우연한 점, 균열 등을 즐긴다. 2009년 와일드 플라워 시리즈에서 그는 토파즈 오닉스를 채색하고 새긴다. 그는 이미지 뒤에서 밝히는 빛이 통하는 돌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향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사진의 시작은 회화와 논쟁적인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이러한 풍부하고 다양한 표현수단 간의 대화가 계속되어 오고 있다. 사진에서는 하나의 표현으로서 또는 회화에서 포토리얼리즘으로서 비주얼 언어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이 두 장르는 서로 이종결합(cross-pollinate)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사진은 표현수단의 경계를 넘나들고, 풍부한 대화로 나아기기 위해 오랜 제약들에 저항해오고 있다. 서울의 상명대학교에서 수학한 박대조는 이러한 컨셉들로서 표현된 그의 작품들에 서양철학을 포함시킨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암시하고, 삶으로 이미지들을 끌고 온다.
탈리아 브라호플러스 Thalia Vrachopoulos (전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