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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김도균, 토탈미술관 facebook

출생

1973, 광주

장르

설치, 사진

홈페이지

www.kdkkd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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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aison Martin Margiela Hourglass, 2015

C-print mounted on Plexiglas iron framed, 50 x 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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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의 'A'에서 'W'까지

난수표 같은 제목,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인 이미지

 

'sf.Sel-12', 'w.dk-1','a.P-4', 'f.Ws-1'

 

알 듯 모를 듯 알파벳과 숫자가 어우러진 제목. 그러나 아무리 사진 속 이미지를 들여다 봐도 알파벳과 숫자들의 조합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단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도균의 작품 제목은 늘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니셜과 숫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눈 앞에 펼쳐진 세련된 도회적 이미지와 제목 사이를 오가며 뭔가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며 작가의 게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다시 작가의 입장으로 돌아가 본다면 단박에 파악하기 어려운 이 난수표 같은 제목과, 지나치게 카메라를 피사체에 고정시킨 덕에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이율배반적인 상황은 그의 작품을 극적으로 끌고 나가기에 가장 적절한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작가는 관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성공했고, 관객은 작품 속 이미지가 주는 묘한 양가적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면 서로에게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균이 던진 A. F, SF, W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A, F, SF, W의 이야기

 

제목에 대해 묻자, 슬쩍 빠져나가듯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AArtificial(인공적인), 그리고 Abend()A

 

FFaçade(정면)F, 그리고 Farbe()F

 

SFScience Fiction(공상과학)SF, 그리고 Space Faction(스페이스 팩션)SF

 

WWall()W, Winkle()W, 그리고 White(흰색)W

 

그의 대답을 반추하며 되돌아본 각 시리즈의 이야기는 이렇다.

 

 

A. 태양이 사라진(abend) 자리에 인공적인(Artificial) 조명이 드리워지면 지극히 미니멀한 건축물은 새로운 옷을 입고 등장한다. 인공조명 빛을 받으며 화면 위에 대담한 구도로 앉혀진 건축물이 카메라의 렌즈 안에 포착되어, 실재하는 것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이 사진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F.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작가의 시선은 건물의 파사드에서 멈춘다. 반짝이는 태양광 아래 온전히 드러난 색유리는 발랄한 색채의 향연을 펼친다. 건물의 테라스와 유리나 거울로 만들어진 파사드의 작은 프레임 안을 파고드는 경쾌하고 발랄한 색유리. 그것은 몬드리안의 색면 추상을 닮았다.

 

SF. 다시 태양이 사라졌다. 그리고 밤의 건물은 새로운 얼굴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얼굴은 'A'시리즈에서 보였던 외부에서 부가되는 빛의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건물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한다. 사람들이 사라진 시간에 이제 건물은 잠에서 깨어 서서히 활동하는 시간 같이 말이다.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격자, 그 격자가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인공조명. 낯설지만 익숙한 이 모습은 언젠가 본 SF 영화 속 한 장면을 닮아있다. 그렇게 'SF'시리즈를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김도균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이 허구이야기를 스페이스 팩션(space faction)이라고도 부른다.

 

 

 

'A'에서 'SF'까지

 

평범한 건축물의 인공성에 주목한 'A'시리즈에서부터 'SF'시리즈에 이르는 김도균의 작업에는 일관되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우선 그가 선택하는 피사체가 주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철골로 만든 완고하고 세련된 직선과 색면 유리 혹은 거울로 구성된 파사드는 완벽하게 미니멀 한 건축물이다. 완벽하다는 것은 보탤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는 어느 광고카피처럼, 김도균이 선택한 건축물들은 장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다.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왜 이런 미니멀한 건물들이었을까? 아마도 아기자기한 구릉의 모양새를 그대로 간직한 초가지붕의 순박한 곡선이나 거만하지 않게 하늘을 향해 열린 처마의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DNA안에 가지고 있었던 김도균에게는 인상 깊은 경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사진을 공부한 김도균의 작업은 종종 독일사진의 신즉물주의 맥락에서 읽혀지곤 한다. 물론 그의 카메라가 정직하게 피사체에 고정되어 피사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외관적으로는 신즉물주의적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섬세한 관객이라면 이렇게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 속 이미지의 메탈릭한 느낌, 또는 즉각적 시선으로 포착된 이미지 외의 다른 분위기 연출되기 때문이다.

 

 

어느 밤, 작가 김도균은 아우토반을 달리다 스쳐 지나는 풍경 속에서 생경한 빛을 발하고 있는 어떤 건물을 발견한다. 누가 잡아 끌기라도 한 양, 그는 그 건물 앞에 멈춘다. 마치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던 회중시계를 찬 토끼처럼, 빛을 발하는 건물은 김도균을 판타지의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앞에 놓인 건물은 현실적인 시공간을 과감하게 삭제시킨, 마치 SF 영화의 어느 한 장면과 같은 환영으로 현실세계에 속한 작가를 초대하듯이. 이렇게 시작된 'SF'시리즈의 형식적인 면을 보면, 이 시리즈는 지난 'A''F'시리즈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건물에 초점을 맞춘 소재성, 건축물 안의 조형적인 요소인 선이나 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작가가 바라보는 공간과 건물에 대한 해석이 극도로 주관적이라는데 있다. 작가의 노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는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건축물을 선택한 후 가장 스펙터클하고 초현실적인 글을 포착하여 화면을 구성한다. 그렇게 선택된 고딕 성당의 외벽, 미니멀한 현대 건축물의 벽, 색유리, 반복되는 바닥과 천정의 격자 무늬 등은 각기 그것들의 건축물 고유성을 읽고 가상의 색면 이미지로 재탄생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나의 작업은 건축물 본연의 미학적 효과를 노린 건축 사진이 아니다. 나는 라는 주체, 내가 선택한 대상,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객 간의 시각적, 신체적, 물리적, 심리적인 반응의 복합체이기를 바란다.”

 

'SF'시리즈는 우선 잘 만들어진 SF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의 공간을 실재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간이 주는 기묘하고 이질적인 느낌, 비현실적인 공간감 혹은 판타지 같은 분위기는 살면서 한 두 번 쯤은 살고 있는 현실이 순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경험들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바램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듯 하다.

 

 

 

다시 한 번, 그러나 다르게 'NEW SF'

 

최근 선보인 'NEW SF''SF'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작가가 바라본 공간이나 건축, 세상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SF'시리즈에서부터 사용한 과감한 생략과 부분확대, 선과 면의 기본적인 조형요소들의 반복 따위는 급격하게 단조로워졌으며 무엇보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불렸던 화사한 인공조명이 사라졌다.

 

미래의 공간은 흑과 백이 지배하지 않을까. 일조량이 부족해지고, 지상은 포화상태가 되어 지하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모른다.”

 

- 아트 인 컬쳐 200812월호, '아티스트 인사이드 김도균 편'에서 재인용

 

 

그의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NEW SF'의 화면은 흑백의 모노톤이 지배적이고 (물론 'sf.Sel-10'과 같이 예외는 있다) 작품의 기조를 이루는 블랙은 깊이가 생겼다. 'sf.Sel-12'에서 보듯 블랙은 관람객의 시선을 (나아가 감성을) 화면 반대편 깊숙한 심연으로 빠뜨린다. 그래서인지 'A'시리즈나 'SF'시리즈에서의 화사한 인공조명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어딘지 기계적이고 차가운, 그럼에도 산뜻한 미래의 이미지였다면, 'NEW SF'시리즈에서 만들어내는 공간은 디스토피아를 더 많이 닮아 있다. 매일 뉴스를 가득 채우는 전쟁과 테러, 공해, 기아와 같은 문제들을 외면하기에 이제 그 역시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일까? 'NEW SF'시리즈에서 김도균의 이전 작업에서 보였던 스타일리시하고 댄디한 이미지를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작가의 감성을 솔직하게 담아낸, 그리고 한결 차분하고 단순해진 작품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작가 스스로의 한 층 더 솔직해진 모습 때문이리라.

 

'NEW SF'시리즈의 또 다른 특징은 이전 작업에서와는 달리 이라는 조형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화면을 중심적으로 구성한다는 점이다. 'sf.Tko-6', 'sf.Sel-10', 'sf.Sel-11'과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sf.Tko-6', 'sf.Sel-10'은 이전 작업에서도 보이는 기본 요소들의 반복적인 사용을 통한 율동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sf.Sel-10'은 블랙을 배경으로 하여 도우넛 모양의 붉은색 원형의 반복적인 배열이 눈에 띄는데, 그 모습이 꼭 SF 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의 인트로 장면과 닮아 있다. 그런가 하면 'sf Tko-6'의 경우, 역시 과감하게 잘려진 흑백의 벽면들과 불규칙하게 벽면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원형 구멍이 건축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은하계의 어느 행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작업은 'sf Sel-11'이다. 마리오 보타 Mario Botta가 설계한 리움 미술관의 특징인 로툰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지층에서부터 로툰다에 이르는 계단을 시각적으로 압축시켰다. 화면을 채운 원형은 마치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이 곧 출격해나가기 위한 출구를 연상시킨다.

 

건축물 자체에 방점을 찍는 대신에 부분확대나 과감한 절단과 같은 방식을 통해서 새로운 판타지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이미 'SF'시리즈에서도 암시되었던 것이지만, 'NEW SF'이르러 더욱 강화된다. 그래서 김도균이라는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는 사실 그의 사진이 건축물을 찍었다는 것을 간파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작가도 이야기하듯이 그가 원하는 것이 건축물에 대한 미학적 초상사진이 아니기에 사진의 레퍼런스를 모른다는 것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상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여행하고, 덧붙어 관람객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펴가면서 작가와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김도균의 작품을 보는 더 큰 즐거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면을 향한 시선, 건축물의 안 'W'

 

사진 속 이미지의 레퍼런스를 추적하기 힘든 것은 새롭게 선보인 'W'시리즈에서 더욱 강조된다. 특히 'W'시리즈는 그 동안 건축물의 외관을 촬영해 온 김도균이 건축물의 을 찍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 시리즈에 화려한 조명이나 장식은 없다. 그저 눈에 띄는 것은 쭉쭉 뻗은 몇 개의 선, 그리고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모서리들이 전부일 뿐. 어느 날 김도균은 아침에 자고 일어난 후 벽을 보고, 모서리가 돌출 된 것인지 아니면 움푹 파인 것인지 혼돈스러운 이질적 공간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W'작업이 시작되었다. 두 개의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만나 면을 이루는 기본적인 원리는 'W'시리즈에서 재구성되며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그저 몇 개의 선이다. 그리고 마지막 선과 선의 음영이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이를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입체감은 착시효과를 일으키며 어느 순간 움푹 들어간 모서리가 되었다가 다시 어느 순간에는 불룩 튀어나온 큐브로 변한다. 언뜻 보면 'W'시리즈는 이전 김도균의 작업과 사뭇 다른 것 같다. 익숙하게 보아왔던 건물들도, 조형적인 요소들도, 인공조명도 없는 연필드로잉처럼 보이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W'에서도 김도균의 관심사와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비록 그가 선택한 피사체가 화려하지도 않고 딱히 시선도 잘 안가는 귀퉁이처럼 보일지라도, 실재하는 공간은 그의 카메라에 포착되는 순간 다시 비현실적이고,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모호한 공간으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한쪽 면을 채운 벽돌 벽'w.tagm-1'이나, 벽지나 천정의 환풍기'w.urh-3.1'를 뺀다면 사실 'W'시리즈가 벽을 촬영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을 촬영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w.bh-2.1' 혹은 'w.bh-5.1'과 같이 흑백의 음영으로 빚어지는 시각적 환영과 시선의 유희, 실재를 통해 재구성한 상상의 공간이라는 점이며, 이는 김도균의 'A'에서부터 'W'까지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도균

 

2001년 한국의 한 청년이 독일로 갔다. 차를 타고 지나치다 본 독일의 풍경은 한국과 달랐다.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구릉이 있고 산이 있었단다. 물론 도심에서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오른 빌딩들의 마천루야 세계 어디든 비슷하겠지만, 외곽으로 나가면서 만나는 풍경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 때 그 청년은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의 영향이었을까? 그의 작업에 직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은 각을 세운 건물들. 그가 렌즈를 통해 포착한 것은 건축물들이었지만, 그의 카메라는 건축물이 보이는 그대로 기록되는 것을 거부했다. 인공조명과 드라마틱한 구도를 통해서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그가 상상하는 미래의 공간이 서서히 사진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화려하고 거대한 공간이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그 청년은 이제 사진작가가 되어 세계를 두루 돌아다닌다.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그의 사진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상상의 여지를 더 많이 남겨주는 그의 작품들은 한층 더 차분해진 모습이다. 사람들은 간혹 그가 잘 생긴 건물에 카메라의 조리개를 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종 셔터를 누를 때까지 무수히 많은 드로잉이 있었다는 것은 종종 잊혀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많은 다른 사진 작가들처럼 실재를,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찍는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찍는 것은 몸으로 느낀 그의 공간이자 현실과 함께 펼쳐지는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김도균-의 작업을 기대하고 관심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보슬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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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을 채우는 빛과 그림자

KDK는 지속적으로 대상의 외형을 통해 그 구조를 드러내는 구축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경향은 근래에 들어서 서서히 변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건물의 내부나, 공간들에서 나타나는 공간의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적인 공간을 넘나드는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또 한 번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또 다른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작품의 제목들이다. 그는 작품의 제목을 알파벳 이니셜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에 나타나는 이미지들과 관련된 것으로 작품에서 작품의 이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어들의 약자이다. 따라서 그 작품들이 촬영된 장소나 건물의 이름이 될 수 도 있고, 어떤 느낌이나 분위기를 나타내는 단어 일 수도 있다. KDK가 이렇게 암호와 같은 작품 제목을 사용하는 이유는 작가에 의해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고정 되어버리는 경직성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이니셜로 만들어진 작품 제목들로 인해 작품들은 고정된 의미에서 다중의 의미,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들이 자신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해석의 폭이 넓게 열려 있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객들이 스스로 작업과의 유희를 통해 교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작가는 최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대상에서 배제하고, 객관성을 유지하여 피사체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작업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을 지속적으로 소재로 삼고 있으며, 이런 대상을 자신의 개인적인 감성의 시선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사진 언어를 구축하고자 한다.

 

최근 미술계에서의 사진작업들은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컴퓨터를 통해 이미지를 보정하거나 변형시키는 과정이 작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또한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반작업들은 대상에 집중되는 효과를 높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원본 자체에 변화를 주어 이미지를 과도하게 변형하지는 않는다. 최대한 피사체 그 자체에서 나오는 형태와 색, 구조를 온전히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 태도가 그의 작업이 풍부한 색채를 드러내는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최근 들어 차갑고 어두운 느낌이라기보다는 온기가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표면을 가진다. 앞으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렇게 KDK의 작업은 여러 가지의 혼재된 요소들로 인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고정된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자유로운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러한 KDK의 기본적인 작업의 성향을 바탕으로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작업들을 살펴보자. 이번 작업의 시리즈 제목은 'p'이다. 이전의 시리즈들의 제목들이 모두 다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이 'p'시리즈도 소재로 삼고 있는 Package, 전시하는 공간의 이름인 Perigee, 순수함을 뜻하는 Pure등 다양한 의미의 단어들로 증폭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을 KDK의 작품을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단어들과 연관 지어 본다면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들을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소재적인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에는 다양한 네러티브들이 따라 붙는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만의 이야기가 쌓여가며 그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인공적인 것들과 그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자연으로 눈을 돌려도 사람의 발길이 닿는 어디든 이러한 인공적인 것들이 없는 곳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기본적인 환경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무감각하게 지나친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집중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들은 경이롭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건축물과 같은 인공적인 구조물일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구조는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발생하는 결과들을 통해 통계와 경험이 쌓여지면서 발전해 왔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인류 지식의 결정체이다. 이렇게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 환경들 속에의 이런 구조물들은 인류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전까지 KDK의 작업은 이러한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작업을 해왔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대상을 해석해 왔다. 그런데 최근의 작업에 들어와서는 미시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포착하고 있으면서, 이런 흔적들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처럼 소재 자체를 어떤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틀이나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수적인 것을 대상으로 선택한 것에서부터 이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소재적인 측면만 보자면 기존의 중심이 되는 제품이 망가지지 않게 보호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존재하는 기본 틀 등이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이다. 이러한 물건들은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건축물의 구조와 다를 바 없는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거나 버려지기 쉽다. KDK는 이러한 우리의 관심밖에 있는 소외되어 버린 대상을 소재로 삼아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옮겨놓은 것에서부터 그의 작품은 이전 작업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는 기존의 그의 작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이전 작업에서 주된 대상으로 삼았던 건축물에 대한 관심과 구축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서 그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표현방식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의 이전의 작업들인 'a', 'f', 'sf' 시리즈는 대상물의 기하학적인 표면을 통해 시각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엄밀한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꽉 차 있는 형태와 단단한 구조를 가진 정밀한 건축물들이다. 또한 이전 시리즈들은 외관상 보이는 면과 선으로 나타나는 즉각적인 느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복잡한 선과 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건조하면서도 패턴적인 작업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따라서 밝고 화려하거나, 어둡고 명암대비가 극심하거나, 무채색 계열의 표면들을 가지며, 그 표면은 차가우면서 엄격함이 보인다. 그런데 근래의 작업인 'w'에서는 그 시선이 공간의 내부로 향하게 되면서 단순한 면들로 이루어진 모서리 공간이 나타나지만, 시각적으로 착시의 효과를 주는 공간성이 드러나는 구조와 표면으로 인해 공감각적인 작업이 되었다. 이러한 내부로의 관심으로 제작된 'w'와는 또 다르게 'p'에서는 새로운 요소들이 작업의 전면에 나타난다. 그것은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빛과 그림자로 'p'시리즈는 전반적으로 하얀 표면을 가지며, 원래의 물건이 빠진 빈 공간이 그림자와 따뜻한 빛으로 채워져 있다. 이로인해 무채색 속에서 드러나는 공감각적인 부분이 자연스럽게 부각됨으로써 중요한 물건이나 핵심이 빠진 구조를 작업의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이들은 유약한 모습이 아니라 그 어떤 구조보다도 견고하고 단단한 건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빈틈없이 밀도가 높기보다는 여유와 깊이가 있는 모습도 드러난다. 이렇게 주인공이 없지만 이들은 더 없이 생기 있게 빛나고 있다. 이러한 효과에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음영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작품 하나 하나의 모습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외관들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구조를 잘 드러낸다. 또한 KDK는 작품들을 한 벽면에 꽉 채움으로써 기존의 작업방식인 그 외관만을 취해 선과 면으로 정리하듯이 단순한 형태미를 보여주는 스타일을 고수하는 한편마치 하나의 구조물을 다각도로 찍어낸 것과 같은 패턴의 구축적인 형태로 재탄생시킨다.

 

 

 

지금까지 살펴 본대로 'a', 'f', 'sf','w', 'b'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 선보이는'p'시리즈는 여지까지의 작업의 특징과 또한 명확하게 반대 지점의 것이 조합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위에서 살펴보았던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전이 작업들처럼'p'라는 이니셜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뒤에 붙는 이름들은 작품들이 가지고 있었던 원래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름에 붙어있는 제품명은 사실 그들의 본명이 아니다. 그들은 특정한 이름이 없는 무명의 것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붙여주면서 역설적인 제목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을 주변에서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이런 방식으로 KDK는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복잡한 대상을 단순화해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기존의 작업 스타일이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p'시리즈를 통해서 견고한 기하학적인 면을 부각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표면을 가진 작업들을 만들어 냈다. KDK는 이를 통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들이 아닌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들의 견고함과 단단함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이전의 작업스타일과 새로운 스타일을 혼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KDK의 작업의 정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낯설게 하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는 시각의 가장 반대되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사진으로 구현하는 것이 그의 작업을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작업들은 이제 주변의 것들을 중심으로 존재자체가 희미했던 것을 명확하게 만들어 내는 데에까지 전이되어 가면서 서로 다른 스타일들의 결합까지 꾀하고 있다. 그가 찍어내는 이미지들은 모두 현실세계에 굳건히 존재하는 실체를 가진 것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의 사진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현실 속에서 보았을 법한데도 불구하고 현실과는 다른 묘한 공간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는 작가의 눈과 머리에 의해서 새롭게 여과되는 편집 과정을 통해 그의 작업만의 특징인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작업에서 한편으로는 원숙하고 세밀한 곳까지 신경 쓰는 정밀한 기교를 보이기도 하면서 어찌 보면 대상 그 자체를 꾸밈없이 드러내는 소박함을 보인다. 또한 소외되고 무미건조한 이미지를 선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간을 가지고 유희하는 여유도 보인다. 따라서 관객들에 따라서 어떤 이들은 시각적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인공적인 것들을 통해 사색 할 수 있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양한 지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앞으로도 지속될 작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세계의 흥미로운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KDK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눈이 보지 못하는 다른 어떤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신승오 (페리지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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