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ist Project with Korean Art Museum
로그인  |  회원등록  |  English    Contact us

아티스트

Home > 참여작가 > 상세보기

photo

한기창, 당림미술관

출생

1966, 서울

장르

회화, 설치, 사진

홈페이지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Email

뢴트겐의 정원, 2015

LED, FRP, 우레탄, 장지, 배접지, 먹, 아크릴, 엑스선필름, 철, 300 x 250cm

이전
다음

고통과 맞바꾼 생명의 표현 - 트라우마

본질적으로 예술가의 삶이 그의 예술언어를 결정짓는다.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카를로의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그림들은 사실 바로 그의 상처 그대로를 반영한다. 한기창의 예술세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개인적 고통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기창은 중학교 시절 동양화를 전공한 미술 선생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화선지 위의 수묵으로 사생을 하는 전통적 기법을 체득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1980년대 후반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그는 동양화의 새로운 표현방식에 목말라 했다. 특히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의 한계가 주는 지, 필, 묵, 수묵과 채색이라는 전통적인 기법과 주제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한국화의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려는 그에게 유학은 그에게 가장 절실한 방법이었으며 이상적인 동경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 된 미국 유학준비가 거의 마무리 될 1992년. 그는 눈길을 운전하다 불행의 충돌사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기창의 인생은 물론 작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초기에 그는 프레스코라고 하는 서양의 벽화 조형방식을 도입하여 인물등 독특한 작업세계를 보여주었다. 한기창의 작업은 비록 프레스코라는 형식을 빌려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하지만 그 전반적인 조형의 원칙은 다분히 전통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기창의 작업은 인물이 주 모티브이다. 특정인을 사실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묘사, 표현하기보다는 인물이라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대상을 통하여 작가의 나름대로의 조형적 발언을 시도 해왔다. 그는 전신을 깁스한 상태로 1년 넘게 중환자실에 지내면서 병원 침대에서 무려 7차례가 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치명적인 사건의 후유증은 그 뒤로 오래 한기창 작업에 하나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뢴트겐의 정원’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그는 “온몸이 절단 난 상태의 X-선 필름을 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였고 , X-선을 찍는 환자들이 음울하고 싸늘한 그림자를 관통하고 있으면서도 생명에의 염원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겨우 건강을 회복하고 몸을 추스르게 된 1995년, 그는 초기 지필묵을 바탕으로 한 전통회화의 표현 매재 보다는 보다 혁신적이고 참신한 기법의 새로운 실험으로 다른 회화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의 혁신적인 방법은 재료에서 달랐다. 병원의 X-레이 필름을 보면서 그것을 그림 같다고 느끼며 필름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개인의 고통이 작품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는 X-레이 필름 하나하나를 보면서 두려웠던 뼈를 찍은 필름들이 하나의 산수와 자연의 동양적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이 작업들을 금호미술관에서 선보였고 스스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는 작품이고, X-레이 필름을 통해 자신의 한을 승화시키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이 표현처럼 한기창은 죽음과 고통의 경계에서 만난 트라우마(상처)로부터 예술의 세계를 열어 나간 것이다. 이 <뢴트겐 정원>의 작품들은 화단에 주목을 받았고 이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종이와 먹이라는 한국화의 장르에 속성상 재료 문제를 과감하게 뛰어 넘었다는 것이며, X선 필름으로 빛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 보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평면 회화에서 설치 작업으로 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켰다는 점이다. 엑스레이 필름을 이리저리 오려 붙여 꽃과 새를 만들어 라이트 박스에서 강렬하게 투사 시킨 것이다. 상처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X-레이 필름이 꽃과 줄기 잎사귀 등이 되어 식물의 이미지로 화하여 마침내 그 형상은 치유와 생명의 꽃을 피우는 ‘반전의 효과’가 됨으로서 이는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했다고 그는 평가했다. 엑스레이 필름의 네거티브 이미지에 모든 실핏줄 같은 형태들이 그의 손을 거쳐 필름오브제가 되어 창백한 그러나 화사한 꽃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한기창은 이러한 실험에 만족하지 않고 엑스 레이 필름에서 넘어 , 금속성 스테이플을 붓처럼 사용하며 새로운 형식실험을 보였다. 병원에서 봉합용으로 쓰는 철침을 캔버스에 수없이 박아 전통적인 산수풍경을 제작했고, 이런 모든 신체적 고통의 경험이 곧 그의 작업에 모티브가 되고 테마가 되었다. 압박붕대를 캔버스에 스킨 스테이플을 드로잉처럼 박아  김정희의 ‘세한도’가 탄생 되었다. 2007년부터 그가 보여준 <혼성의 풍경>  시리즈 작업은 동 서양에 각기 다른 이미지를 하나의 평면 안에 표현하는 것으로 전통과 현대를 대립시키는 이미지로 나아갔고 이 <혼성의 풍경>은 소재가 풍부해져 X-선 위에 채색으로 꽃과 새, 산수, 인물, 도시의 풍경 등으로 확대되었다, 모티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민화를 차용해 꽃과 사슴, 거북 등 민화의 전통적 문양에서부터 자동차, 현대인의 일상적 생활 모습이 혼재되어 한기창 회화의 또 다른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 보였다.
X-레이 필름을 사용해 새로운 세계를 모색한 <혼성의 풍경> 이후 작가는 죽음에 대한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X-레이 필름으로 승화시켜 나간 것이다. <혼성의 풍경>을 지나면서 작가는 X-레이 사진의 뼈 이미지를 테크니컬하게 조합하여 산, 말, 꽃 등의 이미지로 삶과 죽음의 흔적들을 더 극명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고통에 대한 치유로 해석되며 <씻김 굿>을 통해 고통을 벗어던지려는 작가의 예술 의지의 하나였다.
그 후 실험은 꽃 이미지에서 벗어난 발광 다이어오드(LED)를 가지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말(馬) 형상을 학고재 개인전에서 보여줌으로써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것을 스스로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라 부른다.  그는 여전히  X-레이 필름으로 채집하듯 투사된 이미지들을 모아 예술로 부활시킨다. 그리하여 한기창에게 X-레이 필름 작업은 죽음과 공포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신을 구언해내는 생명의 언어인 것이다.
이전의 LED의 화려한 색채를 통한 죽음과 고통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2010년 개인전에서 모티브가 산수로 옮겨졌다. 그 자연에의 회귀는 어쩌면 모든 고통과 갈등, 번뇌를 넘어선 자유로운 상태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작가가 트라우마에서 해방된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출발을 암시한다. 희망은 아주 멀리 있는게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한 작가의 자전적 고백은 이제 고통스럽고 아픈 상처의 시간을 넘어 생명의 언어가 숨 쉬는 화폭으로 다가가고 있는 시간임을 말해준다. 그의 희망은 “관람객들이 그림을 보면서 아픔이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작은 소망“을 말한다.
비극적 상처에서 출발한 예술, 그러나 치유의 의식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X-레이 사진의 차용된 깊은 상처의 흔적들을 모아 본래의 이미지를 존재와 세계, 실제와 가상, 이상과 현실 등 상반된 다른 이미지의 관계로 대립 시키면서 그의 예술적 존재와 문화적 의미를 탐구한다. 이것이 한기창 작업의 상처가 만들어낸 예술적 영광이며 우리가 그의 작품을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김종근 (미술비평, KAP 감독)

더보기

륀트겐의 아름다운 정원 - 한기창 개인전에 부쳐

한기창은 X-선 사진을 가지고 작업한다. X-선 사진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작가가 직접 구한 것이다. 때로는 어렵게, 때로는 쉽게 X-선 사진을 구하면서 마치 륀트겐의 발명품을 채집하듯, 혹은 숱한 인간과 동물의 상처의 흔적을 품에 안듯 모든 죽어버린 이미지들을 모아낸다. 강한 투과성을 가진 빛으로 그려진 신체 안의 이미지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듯 창백한 모습이다. 병과 상처 부위를 알고 고치기 위해 찍는 신체 내부의 현실이지만, 버려진 X-선을 사진 속에서 치유의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한기창은 그 사진들을 다시 품에 안는다. 그것은 모든 아픔 자들의 고통과 치유의 희망이 담긴 기억이기 때문이다.

병원의 X-선 촬영대 위에 누워 온 몸이 스캐닝 되어 뼈남 남는 순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원할 수 있을까…. 그런 되뇜과 생각들도 함께 모아내면서 말이다. 이렇게 하여 모여진 X-선 사진들은 광고판으로 사용되는 파나플렉스 천위로 덮여져 부착된다. 그리고 아크릴릭이나 과슈로 그 위를 불투명하게 칠한 후, 새로운 이미지의 윤곽선을 칼로 도려낸다. 그러면 파나플렉스 천위로 하얗게 윤곽이 드러난다. 대체로 새로운 이미지의 윤곽선은 아름다운 물의 모습이다.

이름 모를 꽃과 꽃봉오리, 가느다란 가지, 길게 늘어뜨려진 풀잎 등이 하얗게 모양을 만든다. 그 하얀 자리로 다시 여러 형태로 잘린 X-선 사진들이 꼴라쥬처럼, 때로는 모자이크처럼 붙여진다. 손가락 사진, 동물 머리의 사진, 척추 사진, 뼈에 박힌 쇠가 보이는 사진, 바스러진 상태의 뼈가 보이는 사진, 변형된 신체 부위 사진들이 아름다운 식물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어서 이 화면을 가지고 형광등을 사용하는 광고판의 형태 그대로 판을 짠다. 형광들을 판 안에 넣고 전기를 주면 X-선 사진들이 빛을 받아 형상을 드러낸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화면 전체에 송진이 섞인 밀납을 칠해주면, X-선 사진들의 접착에 효과를 주면서도 화면 위로 빛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마무리 작업이 있게 된다. 그 마무리로 화면 위로는 얕은 마티에르 효과가 만들어지면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기운을 만들어준다.

X-선 사진이 갖는 음울함, 싸늘함 위로 우리는 살아있는 자의 예비적 죽음의 이미지와 뼈만 남은 생명체의 쓸쓸한 혹은 불긴한 그림자를 본다. X-선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있는 누구라도 그런 느낌을 갖지 않는 이가 없으리라. X-선 촬영실에서의 어떤 숨죽이게 되는 상황, 사실 찍는 순간 ‘숨 멈추시고…….’ 라는 지시나 ‘움직이지 마시고…….’ 라는 지시에 꼭 따라야 하니 말이다. 그 순간에는 누구라도 잠시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사진 촬영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죽음의 이미지를 관통하면서 생명에의 염원을 갖게 된다. 그 싸늘한 그림자를 보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키워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기창이 그 그림자들을, 삶을 그리워하는 그 앙상한 죽음의 그림자들을 다시 모아내는 것이다. 그림자 속에 묻어있는 숱한 상처들은 그의 손을 통해 어루만져지고 감싸 안아지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병원에서 만들어져 폐기된 사진들은 다시 빛으로 태어나 아름다운 꽃들로, 식물로, 산수풍경으로 성형(成形)된다. 그 풍경이 마치 달밤의 아름답고 교교한 분위기의 정원을 연상케 한다. X-선의 발명자 륀트켄에게 정원을 선물하려는 것이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원에 펼쳐진 꽃들과 식물들의 이미지는 매우 선적이고 리드미컬하며, 결코 과하지 않은 움직임이 있는 동적인 느낌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래서 정교한 맛과 조형적 신선함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X-선 사진의 아름다운 변형과 해학적 반전이라는 효과에서 더 큰 발견의 기쁨을 갖게 한다.

우울한 이미지를 밝고 투명하게 바꾸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재치로 그 우울의 분위기를 떼러버린다는 의미에서의 ‘반전’(反戰)의 효과란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목표가 될 것이다. 한기창은 그런 반전의 효과를 단순히 조형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문화론적인 맥락에서 집중하려는 것 같다. 폐기된 상처를 살린다는 일, 그러나 그렇게 살린다는 것이 이미 외과적 성형 혹은 정형의 형태라는 점, 그래서 언뜻 아름다운 꽃과 식물의 형태이지만 이미 사이보그적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러나 그럼에도 생명력은 남아있다는 것, 이런 의미의 과정이 오히려 한기창의 작업을 훨씬 구체적이고 절실한 것으로 만든다고 본다. 거의 사이보그적인 형태로 다시 태어난 륀트겐의 X-선과 그 그림자들, 그것들이 또 다른 삶을 노래하니 다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한기창은 동양화를 전공하였으나, 그 자체로 자신의 작업에서의 장르적 제한을 두지 않았던 작가다. 무엇보다도 동양화가 갖는 재료적 한계를 탈피하고자 다양한 재료기법에서의 실험을 지속해 왔다는 점에서 작가로서의 투철함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그의 면모가 궁극적으로 삶에 늘 가깝게 가려는 자세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벽화 작업의 주요 기법인 프레스코 방식으로 익명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나, 이번 전시처럼 X-선 사진을 통한 정형(整形)적 자연의 이미지를 만들었을 때도, 그는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삶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 그가 겪었던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전신을 깁스한 상태로 1년 반의 회복기를 지낸 경험이 이번 작업과 무관한 것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의 삶도 정형의 기술로 지탱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작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모든 삶이 어떤 의미에서 정형의 기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삶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이미 정형이라는 인위의 조건 속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삶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삶에 반(反)하는 것들과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박신의(미술평론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주임교수)

더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