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 이미지의 연금술사 -강상우의 작은 그림들과 설치작업
1.
강상우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구멍과 같다. 들여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머리가 통째로 그 구멍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있다. 그에게 현재는 없다. 현재란 그에게 무의미한 회색공간이고 아무 소리도 대화도 들리지 않는 비현실계일 뿐이다. 그의 드로잉 가운데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을 그린 것이 있는데 바이올린이 머리와 어깨 사이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머리가 바이올린 위로 올라가 있다. 바이올린이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킨 형국이다. 그 연주자가 바로 작가 자신일지 모른다.
현실이 그에게 완전히 비현실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날씨의 변화에 민감한 작가이고 또한(기후나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의 변화에 대해서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를 지닌 작가이다. 그 민감성을 갖고 그는 자신의 과거의 시간과 그 과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변화를, 기억 속의 어떤 사실, 이미지, 사건, 인물 등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꼼꼼히 관찰하고 분석한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간직한 인상적인 기억들과 그에 연관되어 강화되거나 변화, 소멸되는 향수, 상실감, 또는 단절감, 고립감 등 자신의 감정의 변화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드로잉,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을 통해 재조립하고 재가공한다. 때로는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영화나 비디오, 만화, 광고 혹은 명화 이미지 등 이미지를 차용할 때도 있다.
그에게는 그만의 고유한 구멍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기억의 은하계와 그 별자리들이 있다. 마치 크리스 웨어(Chris Ware, 미국의 만화가)가 창조한 고독하고 소심한 중년의 마마보이 지미 코리건처럼. 웨어가 두 페이지에 걸쳐 그린 그림으로 화면 전체가 밤하늘인데 별자리들이 가득하고 각각의 별자리들이 하나하나 모두 유소년의 기억에 관련된 이야기 속 인물이나 사물들인 그림이 있다. 강상우의 작업의 양적 주종을 이루는 1000여점의 드로잉들의 거의 모두가 그 기억의 별자리에서 잉태된 것들이다. “꿈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고, 현실은 눈을 감고 바라보는 어둠처럼 흐릿하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일이 혼돈과 충격의 경험이다”라고 소설가 김연수가 크리스 웨어의 그래픽 노블(크리스 웨어,『지미 코리건, 가장 똑똑한 아이』, 세미콜론, 2009)에 대해 말했는데 강상우가 지난 10년 동안 작은 스케치 북에 칼라 콩테, 투명 마커 등을 재료로 그린 정교하기 그지없는 수수께끼 같은 드로잉들이 바로 그러하다. 강상우 또한 지미 코리건 처럼 단절과 고립과 상실감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끝없이 헤집어내어 다시 조사하고 가공한다. 그 조사와 가공 속에서 어떤 이미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표현적인 것으로 되고 또 다른 이미지들은 은유적이고 추상적이고 해독되기 어려운 암호처럼 제시된다.
이런 드로잉들의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영화나 음악 만화 삽화그림 속에 그 이미지들이 환기하는 감정과 더불어 그 장면 속에 들어가서 자신이 본 혹은 느낀 서정을 그리거나 구성해기도 하고 간혹 서양 페인팅 고전 그림이나 판화 그림을 차용할 때도 있다. 돌아이 같은 신문광고나 관운장이 투구에 황충의 화살이 꽂힌 순간을 그린 고우영의 삼국지 만화, 산울림의 김창환 노래, 미국 포크 가수 조니 캐쉬, 영화 고래사냥,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비 내리는 날 주인공인 두 연인의 처절한 이별 장면을 설치작품으로 풀어낸 것도 있다.
감정의 전달과 감정의 재구성. 과거 속의 시간을 전유하기. 이런 것이 그의 작업의 감성적 기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그는 매우 다감하고 감성적인 사람인 것 같다. 일기나 회고 같은 것. 무심히 본 장면이나 스쳐지나가는 생각 이런 것들을 그는 놓치지 않고 담는다. 옛날 장난감들, 꿈에서 나온 그림들, 껌이 안 뱉어져 짜증내는 네덜란드 거리에서 본 소녀, 거꾸로 된 도로에서 뒤집혀 있는 차등 도치된 우스꽝스런 기이한 장면들, 우주, 유에프오, 밤하늘의 구름, 이카루스, 엄마고래 새끼고래, 인형, 삼형제가 같이 앉아 뭐 먹는 것 등. 엄마와 아이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조카를 보며 떠올린 감정을 그림에 담기도 한다. 일기 비슷하기도 하고, 무작위적으로 시작해 형태를 찾아가는 그림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업들은 작은 스케치 북에 칼라 콩테, 투명 마커 등을 재료로 그린 것들인데 무척 섬세하고 정교하다.
2.
이와는 달리 무의식적인 사고를 외부로 이끌어 내고 이를 구체적으로 개념화 하거나 언어화하여 입체, 페인팅 작업등으로 영역을 확장시킨 작업도 있다. 강상우의 2008년 작 '잠자는 숲 속의 미녀'(Sleeping Beauty)는 작가가 어린 시절 느꼈던 특정한 이미지에 대한 공포를 다룬 작은 조각 작품인데 기억, 감정, 이미지에 대한 이 작가의 태도나 ‘재현’ 문제에 대해 작가가 작업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잘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디즈니 만화영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에 나온 한 장면을 입체로 재현한 작품이다. 그런데 그 공포감을 시각적, 물질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하여 그가 택한 재현의 방식이 특이하다. 그가 그 비디오를 보았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1985년)인데 나중에 그는 23년 전에 가졌던 공포감의 원인이 다른 장면보다 더 입체적으로 묘사된 한 장면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당시 어렸을 때 본 그대로 미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입체화하여 당시의 감정적 충격을 상징화하여 보여줄 생각을 갖는다. 이를 위해 그는 관객 쪽으로 등을 보인 채 엎어져 쓰러진 미녀의 풍성한 머리칼과 등을 감싼 옷자락을 당시 2D 화면 속의 머리칼, 옷 등의 볼륨 스케일을 그대로 따르면서 사실적이고 매끈하게, 그리고 그 뒤쪽(2D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쪽)은 마치 낭떠러지처럼 무너지고 할퀴어지고 패어 들어간 자국들이 미녀를 기절 시킨 마녀의 가시 숲을 연상시키도록, 그래서 마녀나 마법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기이한 방식, 일종의 ‘해체주의적 사실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방식이다.
얼핏 보아 녹아내린 촛농처럼 볼품없고 버려진 물건처럼 아주 작은(그러나 그것이 작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기이하고 불구인 느낌을 주는, 인포멀(formless form)하고 반-형태적(anti-form)인 이 소품 조각이 천연스럽게, 저항적이고 역설적인 방식으로 뿜어내는 심리적 효과의 강력함은 바로 어린 시절 그에게 그토록 공포감을 주었던 이 애니메이션의 재현의 파싸드(정면)을 해체하고픈 욕망을 작가가 가졌던 것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면과 배면의 공존, 그리고 2D와 3D의 기이한 조우라는 이 작업의 ‘해체주의적 사실주의’가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효과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우리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문화산업의 배면을 함께 보여주면서 우리를 새로운 두려움의 심연으로 이끈다할까.
의류회사(제만Zeeman)의 로고 그림을 입체화한 '아픈 제만'(Ill Zeeman, 2009)은 로고 이미지 속 소년의 신체적인 상태에 대한 상상적인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 작업이다. 평면으로 만든 이미지를 입체화하면서 평면에서 제시되지 않은 어떤 실마리들을 찾아내 덧붙여서, 이를테면 그 소년의 마음이나 감정의 상태 혹은 감추어진 질병 같은 것을 상상적으로 찾아내어 그것을 추가하여, 다시 만든 조각인데 여기서 소년은 (마치 정신박약아나 신체장애자처럼) 콧물과 침을 흘리고 있다. 입체적 볼륨 속에 2D 그래픽이 합체된 작품인 셈인데 부분적으로(얼굴 부위) 곱게 물갈기한 석고 표면 위의 그래픽 라인들은 청색볼펜 선을 무수히 중첩시켜 만들어낸 것이다. 주의해보면 선의 가장자리는 미세하게 깎아내어 돋을새김 된 라인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인쇄물처럼) 균질하게 찍어낸 그래픽 라인의 느낌이 입체 작품 위에서도 그대로 잘 살아나 있다. 모델링도 또한 고전적인 사실적 모델링이 아니라 제작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거칠음과 구조적인 맛을 일부러 살려내었다. 소스 이미지의 2D 그래픽과 3D 모델링의 하얀 지점토 볼륨의 그런 맛들이 합쳐지면서 콧물과 침까지 흘리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세일러복의 이 주근깨 얼굴의 소년의 두상에 박진감 있는 ‘이미지의 현대성’을 부여한다.
이런 작품들은 그 밖에도 여러 점이 더 있다. 약 2년 전부터 그는 레디메이드 오브제의 표면에 특정한 순간의 명암과 그림자를 모방하여 묘사하는 입체작품을 제시하는 것으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고립된 흔적과 기록을 추적해왔다. ('흔적'(Trace, 2007))이 그런 예가 되는 작품인데 시간에 따라 바뀌는 태양 빛에도 스스로 가진 명암을 변하지 않는 효과를 일으키고자 한 이 작품은 수년 전 작가 자신이 어둠 속에서 보았던 알 수 없는 존재의 형상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후 기억에 관련된 소재는 나아가 미국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 일본만화 '드래곤 볼' 등에서 관찰된 등장인물에 관한 미스터리 등으로 넓혀져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거나 사라지는 기억 속의 환상을 다루게 된다. ('거기 제리말고 누구 없어요?'(Is anyone here, except Jerry?, 2007)는 미국만화 ‘톰과 제리’에 나오는 한 장면을 소재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는 동심과 환상에 관해 다룬 작업이다. 입체화로 해석된 제리의 집은 현재 내가 어른이 되어 뒤돌아보는 유년시절 상상의 세계처럼 본래 장면으로부터 느낀 신비한 빛과 그림자 등의 분위기가 사라진 체 그 윤곽만을 남긴 듯 공허한 느낌을 가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Mona Lisa'와 베르메르의 'Milkmaid'의 차용을 통해 특정 명화에 대해 가졌던 감정적인 반응을 페인팅과 입체작업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풍경'(The Landscape, 2007), '달콤한'(Sweet, 2007)’.
주제는 과거의 명화들에 대한 관찰 속에서 상상적 이미지들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으로도 눈을 돌려 홀바인의 '대사들 The Ambassadors', 엘 그레코의 페인팅들 속의 구름 이미지들을 차용한 설치작품을 제작하여 과거 명작 안에서 보여 지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였다. ('지평선과 해골' (Horizon&Skull, 2009)). '세븐 볼스'(Seven Balls, 2007)는 그가 컷 만화들을 보며 가졌던 호기심을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이다. 일본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동일한 배경무늬를 가진 총 7개의 장면들을 서로 연결해 각각의 컷이 무너졌을 때 확장되는 공간에 대한 상상을 묘사했다.
현재 그가 기억에 관련한 감정적인 반응, 그리고 그것의 구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련해 진행시키고 있는 작업은 '프로젝트 휴거'이다. 1992년 우리나라에서 컬트 종교집단 '다미선교회'에 의해 생겨난 '휴거소동'은 현대사회에서 범람하는 '종말론'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그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우연히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동시에 '휴거소동'을 목격한 그는 그 이후 현재까지도 신의 존재,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상상과 관련해 떨쳐낼 수 없는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현재 그는 이러한 사실에 초점을 두고 해외, 국내의 관련 사례 등에 대한 리서치와 그것들을 차용한 작품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3.
강상우에게 있어서 구름 낀 밤하늘 같은 몽환계에 산다는 것과 유니크한 예술을 향한 헌신(“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술 밖에 없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중으로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이 중의 발판 위에 올라 있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하나가 기억과 감정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미지 제작자 내지 아티스트로서의 민감성과 예술에 대한 헌신이다. 감정에 대한 민감성과 이미지의 세공술. 그리고 분명한 초점을, 대단히 집중된 비전과 초점을 지닌 작가다. 아마도 이것이 그를 다른 많은 동시대 젊은 작가들과 다른 그의 예술가적 강점이리라.
그것은 감금이자 (주관적) 행복인 그 무엇이다. 그는 현재와 관계가 없다. 오직 예술에 대한 신뢰와 그리고 그가 탐색해 들어가고 재조립을 멈추지 않는 기억 속에 그리고 감정적 민감성의 세계 속에 머리를 박고 산다. 이것이 그의 기본 감정이자 삶에 대한 태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순수하고 진지한 무엇이며 그리고 무중력계인 그 무엇이다. 비록 예술가적 삶에 대한 확신과 그것에 대한 순수한 헌신에 기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무중력에서 부숴지기 쉬운 어떤 연약함에 대한 나의 예감과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다.
성완경(미술평론가)
Shout at the Wall
아티스트의 현실은 다른 누군가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사회는 (예술의 재현 안에서) 예술가가 인지하고 관찰하는 대상이다.
이는 그 사회에서 하나의 기능을 한다.
- 로렌스 위너, 예술을 둘러싼 그리고 관한 메모들, 아트저널, 1982 여름호
‘Shout at the Wall: 강상우 개인전’은 1982년이라는 현실을 다시 바라본다. 강상우의 형들과 친구들이 모두 열광한 국내 프로야구는 82년 3월에 출범하였고, 같은 해 9월 제 27회 세계야구대회에서 우승한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아버지가 불온서적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수개월간 부당한 옥살이를 한 직후였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였고, 같은 해 석방된 김대중은 미국행에 올라야 했다. 해외에서는 그레이스 켈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차학경이 뉴욕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으며, 중남미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가 ‘백 년 동안의 고독 (Cien anos de soledad)’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82년부터 한국정부가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 개발 계획을 극비리에 추진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레이건 정부는 계획 중지를 요구했으며, 1983년 전두환은 미국의 지원과 정권의 정당성을 승인받기 위해 미국에게 핵개발 계획 중지를 약속했다. 당시 국내는 급조된 프로야구-프로축구 출범, 칼라 TV 방송 전격실시, 영화 및 드라마 성적 표현 검열완화, 교복자율화 등을 민심수습책으로 삼았다. 1983년 5월 25일 경향신문 칼럼은 당시를 “흔히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의 두문자(頭文子)를 따라서 현대를 3S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백성들에게 최면을 거는 수단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현대국가에서는 이른바 3S정책이 이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축제 분위기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강상우의 가족들은 당시 정치상황에 대한 불만은 있으되 그 불만을 자기검열로 늘 도피시켜야 했던 상황이었다고 작가는 기억한다. 이는 30년이 지난 후, 2012년 대통령 선거를 겪는 과정에서도 암묵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는 지속되었다.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2013년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현재의 정치상황이 갖는 문제점들을 공론화하는데 동참하려 한다.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작가는 계몽적인 태도나 관념적 예술 재현의 방법 대신, 특정 정치인과 관련한 일반적이고 익숙한 시각 기호들을 작품으로 재해석한다. 인동초나 수감생활을 연상시키는 면회용 책상이나 ‘Republic’이라는 텍스트가 쓰여진 페인팅들이 그들이다.
전시 제목 ‘Shout at the Wall’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작가 아버지의 수감생활에서 한국의 굴곡진 현실에 당시 감옥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행위는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것이었음 암시한다. Shout at the Wall의 인동초 모양의 입체물과 Study of Salvation 의 김대중 옥중편지 중 구원에 관련된 단어들 ‘사랑, 평화, 이웃사랑’의 자필을 복제하는 행위, 프로야구에 관한 회화 작품은 전시공간을 김대중과 1982년이라는 두 개의 현실을 재현하는 무대로 기능하게 한다.
85년 작가의 아버지가 출판한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랑과 고뇌와 고독의 순례자여’는 강상우의 정치적 관심을 일깨우는 지점이 되었고, 이 책에서 작가는 좌절에 빠진 한 등장인물의 상황과 수감 당시 인간 김대중과 작가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절망감과 신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톨스토이의 소설 속 판화 이미지를 반 입체의 형태로 재현하고 그것의 투과성을 이용해 뒤에 가려진 텍스트를 드러낸다. 러시아 민중문학이 갖는 태도와 우리나라 근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저항미술의 형식 중 하나인 목판화의 방식을 연결한다고 강상우는 말한다.
80년대를 격렬하게 살아온 이들의 아들과 딸이 유년기를 통해 겪었던 80년대는 분명 다른 현실일 것이다. 강상우는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특정 정치인과 자신의 아버지에 관련한 유년시절의 기억들에서 출발하여, 82년이라는 특정한 시대를 재조망한다. 우리는 이제 그 다음 세대가 겪었던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한다. 프로야구에 열광하며, 자신의 부모의 정치의식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공존한다. 그리고 반복된다.
양지윤(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