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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OCI 미술관

출생

1965, 아산

장르

회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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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유춘(遊春), 2012

한지에 수묵 채색, 84 x 25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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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존재와 지각방식에 대한 질문, 몸의 수행성 그리고 그 사이들

                                                                            
Ⅰ.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이 그것을 바라보는 자에게 정서적 반향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복잡한 심리적 메카니즘의 작용 때문이다. 그것을 가리켜 흔히 ‘감정’이라고 한다. 이른바 ‘마음의 느낌 혹은 마음의 움직임’과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사물의 객관적 현실태(現實態)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 반향은 다양한 예술 행위를 낳는 동인(動因)이 된다. 가령, 창밖에 보이는 버드나무 가지는 단지 바람에 의해 살랑일 뿐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섬세한 마음은 ‘이별’을 연상하는 것 같은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유근택의 그림에 있어서 이 ‘감정’은 아주 각별한 데가 있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서 이 감정의 문제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 다음에 인용하는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세 번째는 내가 바로 그 산을 여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산과 나무의 형태와 모양새가 아니라 나의 감정으로 바라보는 거대한 에너지의 산이 가져다주는 힘의 아름다움이 빛에 의해 움직이는 점과 꿈틀거리는 선들의 구조적 공간 속으로 산길처럼 여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유근택, 자작수상 중에서, 1991년 제1회 개인전 도록 중에서-
 “나는 동양미학이 운필론(運筆論)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특히 현대사회에선 운필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거든요. 문화도 문화지만 단편적인 예로 슬픈 사람이 보는 세계와 기쁜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도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인지 저는 대학원 때부터 운필의 문제보다는 정서의 문제를 들춰내는 것이 내 작업의 중요한 목표이자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 논문도 정선(鄭?, 1676-1759) 정서에 관한 논문을 썼으니까요.”
-유근택, 강홍구 작가와의 대담, 2009,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도록 중에서-
 
 첫 번째 인용한 글은 자신의 수묵작업이 어떤 단계를 거쳐 현재의 지점, 즉 1991년 당시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밝힌 것이고, 두 번째 글은 그 뒤로부터 근 20여 년이 지닌 현재의 시점에서 동양화에 있어서 ‘정서’의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글의 내용은 습작 시기의 경과에 관한 것이다. 이 자작수상에서 밝힌 그의 술회에 의하면, 그는 첫 번째 단계로서 “준(?)에 의한 구성과 물체와 물체를 떼어놓는 흰 면”만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산이 산인 줄 몰랐다”고 밝히고 있다. 두 번째로 본 것은 이른바 ‘임모(臨摸)’의 단계다. 그의 말을 빌리면 “실재하는 대상을 화폭에 옮기는 일”, 즉 “놓여있는 모양과 형태를 돌아보면서 사진처럼 묘사하는 일”이다. 이른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 곧 회화에 있어서의 ‘핍진성(逼眞性)’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끝으로 세 번째에 해당하는 과정이 바로 앞에서 인용한 글의 핵심어인 ‘감정’의 문제다.
 유근택에게 있어서 이 감정의 문제는 그 후의 작업에서 ‘정서’의 문제로 치환되기에 이른다. 그는 같은 풍경이라도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고 함으로써 이 감정의 문제에 우회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앞에 인용한 두 번째 글에서 “슬픈 사람이 보는 세계와 기쁜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도 같은 수 없는 것”이라고 한 진술이 바로 그것이다.
Ⅱ.
역사적으로 볼 때, 동양화론의 대세를 이루는 운필(運筆)의 문제는 산수화에 있어서 특히 준법(?法)과 관련된다. 사전적인 정의로는 “산수화를 그릴 때 산이나 바위, 토파(土坡)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 표면을 처리하는 기법”(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刊)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따라서 정신성의 표출과 관련된 ‘사의(寫意)’보다는 대체로 사물의 형태를 본뜨는 ‘형사(形似)’의 개념에 더 가깝다. 따라서 유근택이 이 준(?)의 단계를 거쳐 임모의 단계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감정의 단계로 나아간 것은 형사에서 사의의 단계로 이행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 동양화에서 이 형사와 사의가 별도의 항목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유근택에게 있어서 감정, 즉 정서의 문제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사의의 개념이 아니라 작가가 느끼는 일상의 감정, 곧 사물을 보는 방식과 관련된 특유의 정서라는 점에서 차별된다. 전통 동양화에서 ‘사의’의 개념이 작가의 흉중에 서려있는 고매한 정신의 표출, 즉 추사가 말한 대로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과 같은 것이라면, 유근택의 ‘정서’가 의미하는 바는 사물을 보는 지각방식과 관련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소재로의 전환과 함께 유근택이 말한 ‘생활세계로의 내려옴(下降)’인 것이다.
1999년, 원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작가 개인사적으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전시회였다. 그는 이 전시의 출품작들을 통해 비로소 기존의 전통 수묵화가 지닌 관념적, 이상적, 정신적 측면에의 경사를 탈피하여 생활세계에 대해 눈길을 돌리게 된, 자신의 화력(畵歷)에서 일종의 기념비적 전시회로 간주한다. <창밖을 나선 풍경> 연작은 눈앞에 보이는 일상적 장면(소재)을 평면적인 표현 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이 연작에서 비롯된 ‘하늘(관념)에서 땅(현실)으로의 하강’은 독자적인 표현방식의 개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의 창으로 바라본 밖의 풍경을 그린 이 연작에는 시간성의 문제와 아울러 대상을 보는 지각방식 혹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지각을 통해 대상을 느끼는, 그리고 거기서 촉발되는 ‘정서’의 문제를 화면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화두가 담겨있다. 즉 틀에 박힌 바라봄에서 어떤 ‘경이(wonder)’를 수반한 지각작용이 일상적 풍경을 통해 일어났던 것이다. 그 결과, 유근택의 화면은 이전의 화면과는 판이한 지각체험의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된다.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의 흐름과 이에 따른 등장인물의 동세 표현에서 찾을 수 있고, 그 다음이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균질적인(all-over)’ 화면효과다. 유근택의 작업에서 이 ‘장관(spectacle)’은 전적으로 큰 화면효과에서 유발되고 있는데, 그의 대작들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박진감이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이 장관적 요소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Ⅲ.
 유근택은 1999년에 이르러 호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물에 풀어 사용하는 호분은 그것을 한지에 발랐을 때 수분은 종이로 흡수되고 호분의 입자들만 종이 표면에 머물러 텁텁한 느낌을 주는 재료다. 그는 그러한 성질을 지닌 호분과 과슈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이번 개인전에 전시한 25호 크기의 <만유사생(萬有寫生> 24점과 <만찬> 연작, <폭포> 연작, <사막> 연작에는 최근에 그가 심혈을 기울여 시도하고 있는 실험적인 기법들이 담겨 있다.   그의 디스플레이 연출 계획에 의하면, 사비나 미술관의 지하 1층 전시실에는 독립된 방을 꾸며 사람 키 정도의 높이로 <만유사생> 연작 24점을 전시하고, 1층 전시실에는 <만찬> 연작을, 2층 전시실에는 <사막> 연작을 전시하여 전체적으로 작품이 지닌 ‘스펙타클’한 성격을 부각시킬 계획으로 있다. 특히 1층에 전시될 길이 4.8미터에 높이가 2.4 미터에 이르는 <만찬> 연작은 ‘욕망이 충돌하는 장소’로서의 만찬장의 광경이 거대한 화면을 통해 표출돼 유근택 화면 특유의 장관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여러 평자들의 지적처럼 유근택의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일상성이다. 일상적 소재는 그가 관념이 아닌 현실의 생활세계에 눈길을 주면서부터 등장한 것이다. 그 맹아는 80년대 초반의 작품에 이미 엿보이고 있지만(<빛>, 39x69cm, 한지 위에 먹, 1982), 점묘법을 위시한 새로운 기법에 의해 전개되는 것은 <공원에서의 하루 혹은 기억>(191x264cm, 한지 위에 혼합재료, 1996)에 이르러서이다.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할머니를 사생한 바 있는데, 그것은 역사성을 수반한 인물의 표현에 연결돼 일상적 풍경과 함께 작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 계열의 작업은 90년대 후반의 <지하철> 연작과 특히 길이 10미터에 높이가 3.4 미터에 이르는 대작 <맹인을 이끄는 맹인>에 이르러 극대화되기에 이른다.
 
Ⅳ.
 모두 24점으로 구성된 <만유사생> 연작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유근택 특유의 필치, 즉 미끈거리는 듯한, 그리고 녹아서 흘러내리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필치로 그린 것이다. 호분과 과슈를 혼합한 채색 재료의 특성상, 모필을 사용하여 옆으로 스치듯 뭉개서 초점을 흐리는 그 특유의 기법은 소재적으로는 현실에 기반을 두되 시각적 으로는 마치 꿈속의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비현실적 내지는 몽환적 효과를 낳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특히 두드러진 것은 증식하는 식물들이 방 안에 서식하여 종국에는 방 전체를 점유할 것처럼 보이는 실내 풍경을 그린 일련의 연작들이다. 식물들의 배경을 이루는 방의 일상적 풍경과 그 위를 뒤덮고 있는 식물들 간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초현실적인 ‘낯선’ 풍경을 연출해 내는 유근택의 화면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장경이 하나의 화면에서 만난 일종의 몽타주적 장치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서로 다른 차원의 결합은 사물의 존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다른 이미지가 인쇄된 두 장의 투명 필름들이 겹쳐질 때처럼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식물들의 등장은 평평해 보이던 방 안의 풍경을 깊이감이 존재하는 풍경으로 전환시키는 시각적 효과를 낳고 있다.
 작가 자신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에서 <만유사생>이라고 붙인 이 24점의 일상적 풍경들은 작가 자신의 몸이 ‘기투(企投)’돼 있다는 점에서 ‘신체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내 눈 앞에 펼쳐진 저 풍경이 결국은 나의 눈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보이는 것이고, 내게 의미를 띠게 된다는 작가의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유근택은 그러한 행위를 가리켜 ‘시각적 호흡’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이는 회화를 호흡의 지평에서 보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몸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련시켜 볼 때, 만찬장이나 연회장은 몸의 던짐, 즉 육체적 ‘기투(企投)’가 보다 직접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그러나 그의 <만찬> 연작에는 정작 인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술병과 음식이 담긴 접시들, 포크와 나이프, 꽃 등등이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 있다. 그의 <만찬> 연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어질러지는 만찬장의 모습을 통해 시간의 추이는 물론 ‘욕망이 충돌하는 장소’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즉 ‘6자 회담’이나 ‘남북대화’와 같은 정치적 담론이 무성하게 전개되는 만찬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음험한 정치적 거래에 대한 풍자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Ⅴ.
 <만찬>을 통해 보여준 시간의 소멸은 다시 <사막> 연작에 이르러 더욱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회오리바람이 부는 듯한 소용돌이의 구조를 지닌 이 작품은 LA에 있는 죠수아 트리 사막에서 본 작가의 시각적 체험이 계기가 돼 탄생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하늘이라든가 우주, 어떤 세상의 구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모래로 흩어지는 바위, 나무, 수 백 년 된 선인장들과 모든 사물들이 사막화해 가는’ 그 곳에서 본 풍경은 작가에게 소멸의 문제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는 사막에서 의당 보여야 할 바위나 선인장들보다는 침대, 변기, 나무들, 피아노, 식탁 등등 일상적 사물들이 어울려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다. 그는 마치 사막의 풍경을 공중에서 촬영한 것 같은 구도를 통해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통해 소용돌이 자체보다는 우주의 운행 원리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가 하는 문제는 향후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방안을 뒤덮은 식물들처럼 마치 사막에 서식하는 식물들 사이에 일상적 사물들을 부려놓은 것처럼 초현실적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보다는 더 큰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유근택의 근작들은 ‘본다’는 지각작용을 수행하는 눈의 적극적인 참여와 그러한 신체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경이로운’ 느낌에 대한 회화적 표출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 이 문제가 드러나 있는 것이 <만유사생> 연작과 <분수> 연작이다. 거기에 덧붙여 몸의 또 다른 수행적(performative) 측면, 즉 언어를 통한 정치성,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다룬 <만찬> 연작이 있고, 시간성과 더불어 몸의 소멸의 문제를 다룬 <사막> 연작이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분수> 연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거대한 크기의 <만찬>에서 볼 수 있듯이 유근택의 작업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과 식지 않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윤진섭(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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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재잘거림, 침묵, 때로는 소음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좋은 작품을 우연히 만났을 때, 아름다운 사람과 우연히 길거리에서 스쳐 지났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사람은 평온한 마음에 감동을 불러 일으켜 주지만, 작품은, 그것에 하나 더해서,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을 질(質)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질, 즉, 감동에 근거를 부여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유근택의 작품과의 만남은 실로 그런 기쁨이었다. 2000년 가을, 우연히 방문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의 한 모퉁이에, 그것은 가장 수수한 표정으로 걸려있었다. 수수하다고 하는 것은, 온갖 기법과 새로운 표현 형태를 경쟁하는듯한 신세대전 속에서, 색채가 극단적으로 적은 수묵기법의 사생화가 참으로 온화하며, 욕심이 없다고까지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그 곳 뿐이었다. 공원이나 숲속 오솔길을 따라가는 정경을, 짧은 터치의 묵필로 화면을 빈틈없이 메워 나가는 듯이 조밀하게 그린 그림이 5장인가 6장, 시리즈를 이루는듯한 모습으로 나란히 놓여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가의 이름도 결국 알지 못했다. 그림도 세세한 부분은 잊어버렸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결코 규칙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붓놀림이, 그래도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묘사대상과는 별개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따스함과 엄격함이 섞여져 있는 묘한 분위기가 빚어져 나오고 있었던 점이다. 따스함은 일종의 정서의 작용에 의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엄격함에 속하는 쪽은 정서라기보다는 정서가 태어나는 뿌리의 구조를 보여주는 사인(sign)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정서라는 직접적으로 감각과 감정에 울림을 주는 그림의 표정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언어의 구조와 같은 골격적인 요소와 혼연일체가 되어 스쳐 지나가는 관객에 불과한 나의 전체를 조용히 동요 시켜 감싸 안았던 것이었다.
 
다음해, 도쿄의 Gallery 21+葉 는 이 유근택의 개인전을 개최 도쿄에 첫 선을 보였다. 전시된 목판에 의한 자화상의 연작과 그 목판은 기억에 없었지만, 화랑의 사무실의 안쪽에는 서울에서 본적이 있는 그 양식의 작은 작품이 걸려있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고동쳤다. 사람이라면 또 몰라도, 스쳐 지나간 작품(양식)에 재회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대체 무슨 일인가라고는 하지만,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 원대의 문인화가 예찬(倪瓚)의 작품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은, 몇 번을 보아도 매번 같은 종류의 조용한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의 구조가 어딘가 닮아있기 때문이리라. 유근택은 현대의 아직 젊은 화가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 작품이 거칠기는 해도 정서와 언어적 구조와의 떼어놓기 힘든 융합에 이르러 있기에 14세기, 15세기 선조들에게 이어지는 퀼리티를 얻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개인전 이후 오늘까지 가능한 한 실제 작품과 카탈로그 자료 등을 통해 작가의 변화와 전개를 쫒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최초에 느낀 인상의 뼈대가 되는 부분은 그다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하나의 중요한 징후에 주목해 보고 싶다. 어느 시기까지의 그의 그림은 굵고, 긴 스트로크를 특징으로 하고 있었던 듯하다. 작품은 대체로 주장이 격렬한 표현적인 것이었다. 분노와 풍자가 넘쳐 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스트로크는 90년대 말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짧아져서, 때로는 화면 전체를 빗방울과도 같은 점, 물보라와도 같은 선으로 뒤덮는 듯이 된다.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붓질의 시행과의 함께 해나간 변화였던 것이다.
 
1999년 무렵, 그의 풍경화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듯하다. 공원이나 수풀의 정경과 그 것을 응시하는 화가와의 사이에 일정의 거리와 시야가 의식적으로 설정되면서 그렇게 해서 얻어진 눈과 대상 사이의 중간지대 자체가 마치 회화의 무대가 된 것처럼 애매하게 부유하는 면 공간에 수미일관한 일정한 필법이 행해지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대상의 바로 앞에 반투명한 면이 있는 듯해서, 그 면 위에 기존 대상과 그려진 선과 상이 혼합되면서 만나 대상과 화필 어느 쪽이 현전(現前)하고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든 자유자재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가끔 등장하는 인물은 망령 또는 몽유병자처럼 흐릿한 윤곽을 두른 채 지나가버리는 시간의 수탁자(受託者)가 되며, 산중에 갑자기 불어 닥친 연기나 바람은 그 면이야말로 회화적 현실이라는 점을 생각나게라도 하려는 듯, 상감 된 간유리처럼 시계를 막는다. 말하자면 이 시기 그는, 대상으로부터도 주관으로부터도 반반씩 자립한 회화의 공간을 추상회화와는 별도의 방식으로 획득한 것이다. 내가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작품은 다행히도 그 시기에 돌입한 초기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흥미깊은 것은 이와 같이 뛰어난 회화적 공간을 낳은 「추상회화와는 별도의 방식」이란 왜 생겨난 것일까? 앞서 나는 「애매한 부유하는 면 공간에 수미일관 한 일정한 필법이 행해지게 되었다」 라고 지적하였지만 실로 그것은 화가의 시각의 변화를 뒷받침하는 필법의 문제, 어법의 문제였기도 했다. 풍경화라기보다는 정경화(情景畵)에 한정지어 말한다면 그의 스트로크는 길이 수 센티미터 정도의 중간 굵기로 거의 통일되어지며 때로는 필요에 의해 긴 선, 물방울 같은 검은 반점이 섞이는 정도로 되었다. 즉, 필세가 강한 긴 필치와 점묘와 같은 섬세한 터치는 사라지고, 중간 정도의 붓 사용이 중심이 된 것이다.
이 「중간」이라는 것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체로 말하자면 단숨에 그어 내리는 긴 스트로크는 화가의 주관? 감정에 따라 흘러간다. 90년대 중반까지의 그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었던 선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한층, 그가 자화상을 그릴 때는 대부분이 길고 굵은 격렬한 스트로크가 사용되고 있다. 한편, 점묘기법으로 대표되는 짧은 필촉은 대상의 묘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본질적으로 자연주의자였던 프랑스 인상파의 화가들이 점묘법을 사용한 것이 그 증거이며 그들은 분해한 빛의 효과를 쫓아 오로지 대상세계의 충실한 재현에 힘썼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것이 이해된다면, 유근택의 중간 정도의 길이의 스트로크가 그저 선분의 길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회화가 대상과 주관과의 중간의 위치에 성립되기 위해 결정적인 적어도 가장 어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대상과 주관과의 중간에 있으면서 그 자체의 수미일관 한 필법이 행사되고 있는 것, 그것은 실로 하나의 언어가 독자의 법칙성곽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독자적이라 해도 우리들이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가 늘 피지시대상과 발언자의 의도에 견인되며 독자적인 언어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이 필법이 형성하는 회화 구조의 독자성도, 묘사 대상과 화가 주체의 양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의 회화 공간은 눈(주관)과 대상과의 중간에 부유하여 양쪽에서 반반씩 자립하면서 독자의 법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회화의 발견이란, 이와 같이 반(半)자립성이 독자적 구조에 대해 눈뜨는 것과 같다. 또한 그것은중국 회화에 있어서는 수묵화에서 그 중에서도 원대의 문인화에 있어 이미 행해져 있었던 것이다. 유 근택이 동양화과 출신임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 점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문인화가 그랬던 것 같이 법을 자각한 회화는 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일이 가능하다. 때로는 침묵, 때로는 소음에 젖을 수도 있다, 그래도 법은 그 중간에 반투명한 면 위에 존재하는 한, 사라질 일은 없다. 이것은, 그의 지금부터의 전개를 지켜볼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를 해 줄 것이다.

 

미네무라 도시아키 (미술평론가, 일본 타마미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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