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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한광미술관

출생

1963, 충청남도

장르

회화, 조각, 설치, 사진

홈페이지

www.kimjongk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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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를 들었어요, 2003

C-Print, 40 x 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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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 조각가 김종구

김종구는 남달리 쇠에 집착하는 쇠붙이 조각가이다. 전에는 통쇠를 갈아 수직형의 조상을 만들더니, 이제는 바닥에 깔리는 쇳가루로 수평의 조형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수직의 오브제 세계에서 수평의 탈오브제 세계로의 전환, 이는 곧 객관적 사물의 세계에서 주관적 심상의 세계, 현상의 세계에서 가사의 세계로의 진입을 뜻한다. 또한 페미니즘 비평의 시각에서 보면 수직지향성은 남성적 권위, 수평지향성은 여성적 포용에 결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관념적인 미학적 논의나 젠더 특징적인 페미니즘 독해보다는 그의 작업의 매체적 특성, 좀 더 구체적으로 매체의 사용법에 일단 주목하고자 한다. 그가 쇠를 사용하는 방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고유하고 특이하다. 예전 작업에서는 쇳덩이를 돌덩이처럼 갈고 닦았는가 하면, 근자에는 일종의 폐기물인 쇳가루를 창조매체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흔한 조각 재료인 쇠를 사용하면서 이렇게 고유한 사용법과 특이한 방법론으로 전혀 새로운 조각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쇠 조각은 주조나 용접을 통해 조형화 된다. 그러나 김종구는 돌이나 나무를 조각하듯 통쇠를 깎고 다듬는다. 주조나 용접 조각과는 달리, 깎고 갈고 다듬은 전통적 방법의 조각에서는 외형이나 구성보다는 노동과 그 과정에 유념하게 된다. 김종구의 작업에서도 통쇠를 깎고 가는 조각적 노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러한 공전 속에서 형태가 발생된다. 즉 재료와 창작자의 만남, 물질과 행위의 충돌에서 우연 발생적이고 비의도적인 조형이 탄생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완성된 형태보다는 과정이 중시되며 순수 노동이 창작을 대행한다. 근자의 쇳가루 작업에서도 통쇠를 깎아내는 고행이 선행되듯, 노동이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개념을 이룬다.
쇳가루는 조각적 노동, 즉 창작의 부산물이다. 조각적 노동은 통쇠에 생명을 부여하는 창작행위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통쇠를 손상시키는 파괴행위이다. 죽음으로써 생명을 잉태하는 유기체와도 같이, 통쇠는 몸체를 갉아먹는 자기 파괴적 과정을 통해서만 창조를 성취한다. 창조 행위이자 파괴적인 조각적 노동의 산물인 쇳가루, 그것은 창조를 위한 파괴 또는 파괴를 통한 창조라는 ‘창조 레토릭’의 물질적 증거이다.
창조와 파괴, 생명과 죽음의 이중 부호이자 그것의 은유적 물질인 쇳가루는 동시에 작가적 실존의 투영이기도 하다. 김종구는 어느새 작가 자신이 소모한 에너지만큼, 소비한 시간만큼 생성되는 쇳가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통쇠의 몸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쇳가루에서 그는 자신의 분리 자아, 타자적 자아를 발견한 것일까. 자신의 분신과 같은 쇳가루, 작업실 바닥을 가득 채우는 쇳가루를 보며 그는 재창조의 영감을 떠올린 것이다.

2. 쇳가루로 만드는 새로운 회화주의 조각

김종구는 작업실을 가로질러 눕혀진 긴 통쇠를 갈기 위해 분주히 왔다갔다 한다. 그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자국이 크고 작은 둔덕을 만들며 바닥의 쇳가루 지형을 변형시킨다. 밀폐된 작업공간의 유일한 지배자로서 깎고 갈기 위한 그의 신체적 동작이 쇳가루 바닥 풍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쇳가루 풍경을 멀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높이가 압축된 추상적 지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눈높이의 수평시각에서 보면 그 쇳가루의 둔덕들이 높고 낮은 미시적 산봉우리의 연쇄로 변모한다. 그의 카메라 렌즈로 수평적 앵글을 잡아 쇳가루 산세 풍경을 모니터 화면에 투시한다. 화면에 비치는 장면은 고요하고 신비한 심상의 풍경,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적 자연, 김종구가 창조한 미시적 환상의 세계인 것이다.
결국 쇳가루의 재발견, 그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그를 수직의 세계로부터 수평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이전은 조각에서 회화로의 조형적 발상의 전환을 유도했다. 그는 쇳가루가 제공하는 수평적 풍경에 만족치 않고 쇳가루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것이다. 쇳가루를 먹물삼아 산수화를 그리고 붓글씨를 쓴다. 안견을 그려보고 추사를 써본다. 간혹 쇳가루 그림이나 글씨에 “물을 준다”. 물을 준다는 작가의 표현에서 쇳가루에 대한 생명적 유추가 암시되는데, 그렇게 물먹은 쇳가루가 화면 위에 흘러내려 녹물의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만드는 것이다.
요컨대 김종구는 서구의 구성주의 조각가들이 시도한 회화주의(pictorialism) 조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새로운 회화주의 조각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쇳덩이에서 쇳가루, 때로는 쇳가루에서 쇳 녹물로의 연금술적 변형, 환생적 순환을 통해 조각의 생존 양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여기서 과정, 흔적, 변형 등 탈 서구적 시간성의 개념이 김종구의 작업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자로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쇳가루 작업은 결국 시간적 추이를 내포하는 ‘변형적(metamorphic) 회화주의’ 조각으로서, 이것이 조형 요소를 공간적으로 배치하는 서구적 발상의 ‘구성적(constructive) 회화주의’ 조각과 구별되는 점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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