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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근, 아트선재센터

출생

1963,  

장르

사진

홈페이지

www.heinkuhn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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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나무와 군인, 그리고 군견 ‘북두’, 2010년 4월, 2010

Pigments on Fine Art paper, 127 x 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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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인’이라는 유형 -모호한 불안과 미세한 파열

“거리에서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로 그 사람의 약점이다” (다이안 아버스)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이 카메라의 눈이 가져다 줄 새로운 시지각적 경험을 기대어린 어조로 선언했을 때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열광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장엄하고 우아한 자연, 미묘하고 찰나적인 순간, 일상과 가족의 따뜻함처럼 관습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에 천착했지만, 개중에는 빛의 이면에 가려진 어둠과 사회 병리적 결함에 눈을 돌린 이들도 많았다. 사회에서 소외된 빈민과 노동자들을 담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거나, 부르주아들의 고상한 마스크 아래에 들끓는 위선과 허위를 폭로하거나,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을 피사체로 선택함으로써 도덕주의 이면의 편견과 고통을 노출시켰던 사진가들이 그들이다. 이런 단순한 구분에 굳이 대입시키자면 사진가 오형근은 분명 후자에 속하는 작가다.
첫 작품 <미국인 그들>에서부터 2012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군인들의 초상 사진 연작 <중간인>에 이르기까지 오형근이 줄곧 추구해온 것은 인물 사진이라는 형식을 통한 사회적 다큐멘터리다. 초기 작업인 <미국인 그들>, <이태원 이야기>가 거리를 다니며 사회적 풍경을 채집하는 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면, 유명한 <아줌마> 연작과 <소녀연기>, <화장소녀>는 초상 사진이라는 형식을 빌어 ‘아줌마’, ‘소녀’로 일컬어지는 특정 사회적 유형의 이미지를 일종의 도감(圖鑑)처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볼 때 약점부터 보인다는 아버스처럼 카메라를 통해 사회의 틈새를 간파하는 오형근의 눈을 붙잡는 것은 피사체가 내세우는 외형적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이들의 모호한 정체성과 불안이다. “눈썹 문신에 빨간 립스틱을 하고 대차게 웃는” 아줌마와 “짧은 치마를 입고 아무것도 몰라요의 표정을 짓는” 여고생(작가가 생각하는 아줌마와 여고생의 대표적인 모습)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아줌마의 경우 유복한 사모님, 여고생의 경우 닮고 싶은 연예인의 모습)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만, 실상 그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스스로의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에 맞추는 수동적 주체의 불안이다. 기실 아줌마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닌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부이고, 짧게 줄인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떠는 내숭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일찍부터 성적으로 대상화된 탓에 은연중에 요구되는 행동거지가 아닌가. 이들의 모순은 스스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고 불안정하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한데, 사진가로서 오형근을 매혹하는 것은 이런 중간자적 불안이다.
인물사진가로서 촬영 대상의 선정은 작업의 출발이자 전부라고 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오형근이 선호하는 피사체는 소위 중간적 불안을 내포한 존재로, 그의 사진적 대상 전체는 ‘중간인’이라는 범주로 환원될 수 있다. <미국인 그들>은 미국 사회의 주변적 인물들을 찍은 것이고, 이태원은 한국과 미국의 접경지대이자 일반과 이반이 뒤섞이는 곳이며, 아줌마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이고, 소녀는 성인 여성과 아이의 중간이다. 이러한 경계인의 속성은 군인을 찍은 <중간인> 시리즈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여기서 대상의 중간적 속성은 특별히 큰 흥미를 유발하는데, 오형근의 사병 사진이 일반적으로 군인의 초상에서 기대하는 바를 전혀 만족시켜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명하달의 한국 특유의 조직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군대는 남성성과 집단성을 극도로 강요받는 장소다. 하지만 ‘우리’라는 말로 대변되는 집단 정체성은 오형근의 사진에서 묘하게 미끄러진다. 오형근이 선택한 대상은 규율과 명령이 몸에 배인 각 잡힌 대한의 건아가 아니다. 그렇다고 눈에 띌 만큼 특이하거나 명백하게 소외되어 있지는 않으나 이들은 어딘가 미세하게 어긋나 있거나 틈이 있다. 아직 군대라는 조직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 사회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거나, 군대 밖에서 혹은 안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안고 있거나, 비교적 군인의 전형에 가깝더라도 우리보다는 ‘나’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아직 앳되고 순진한 20대 청년의 얼굴을 지우지 못한 ‘개인’으로서의 사병들은 군인과 민간인, 순응과 일탈, 적응과 부적응 사이의 존재들이다. 이들의 존재론적 불안감은 사진의 디테일에서 간취되는데, 얼굴보다는 손이나 발의 놓임에서 두드러진다. 반쯤 주먹을 쥐고는 있지만 불안하게 움찔거리는 손가락, 불안정함이 바닥에서 들린 발놀림으로 표출된 구두, 지나치게 꼭 쥐어서 도리어 부자연스러운 주먹, 다소곳이 가지런히 모은 두 발은 군인다움에 편입되지 못한 어떤 탈구들을 가리키는 지표다.
처음으로 시도한 남성 초상 및 집단 초상이며 초기 작업 이후 사라졌던 배경을 다시 집어넣어 이야기의 여지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일견 전작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 보이는 <중간인>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단절보다 연속의 맥락이 훨씬 강하다. 모호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대상 선정과 아울러 눈에 띄는 것은 사진가와 촬영 대상의 심리적 거리다. ‘중간인’을 지나치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중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오형근의 태도는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외견상 다큐멘터리 혹은 독일 유형학적 사진을 닮은 그의 작업이 실상 다큐멘터리가 아닌 의사(擬似) 다큐멘터리, 유형학이 아닌 의사 유형학임을 깨닫게 만드는 핵심 기제다. 오형근은 특정 유형의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동일 조건에서 사진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최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유형학적 접근법을 이용하는 동시에 비튼다. <아줌마>, <소녀연기>, <화장소녀> 작업은 모두 도감이라는 형식과 유형학적 접근법을 이용해 아줌마와 소녀의 유형을 추출한다. 예를 들어 <화장소녀>의 경우 작가는 표본 선정에 있어 신뢰성을 위해 범위를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압구정과 청담동, 동대문 밀리오레와 신림동 순대골목, 이대 앞으로 세분해 가능한 모든 대상을 아우르도록 나름대로 범위와 체계를 구축했다. <중간인> 역시 비슷한 기준이 적용되어서 육해공군과 여러 계급을 모두 포함시키되, 전체 비중 상 절반을 육군으로 나머지 절반을 해군과 공군으로 할당하는 유형학적 분류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객관적 수집과 기록이라는 유형학의 원칙은 대상을 대하는 사진가의 시선에서 결정적으로 이탈되고 만다. 피사체의 심리적 불안을 예리하게 감지하는 오형근의 예민함은 대상에 일정부분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작가가 관심을 둔 것은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중간적 불안이기에 해당 인물이 지닌 미세한 이물감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대상과 어느 정도 공명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오형근은 훨씬 더 공공연한 기인들을 철저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찍은 아버스와 다르며, 유사한 사회적 주변인이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내부자의 관점에서 친구들을 기록한 낸 골딘도 아니다. 피사체와 정서적으로 조응하면서도 어느 이상 거리감을 유지하는 오형근의 태도는 객관과 주관의 ‘중간’인 것이다. 이 중간성은 형식적으로 회색이라는 중간계조와 3-5m라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미디엄 숏 거리로 표출된다.
결국 사진가 오형근이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모호한 불안을 표면에 드러내는 중간인들의 징후다. 이 징후는 사회적인 것이라 사회에서 회색지대가 늘어날수록 표출되는 불안의 양상은 미묘해지며 이를 드러내는 파열 또한 미세해진다. 과거에 비해 외부와의 소통이 늘어나고 이념이 약화되면서 복잡해진 군대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며, 군대라는 공간 내부의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발생한 이 “미열 같은 불안”(작가)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이번 <중간인> 연작이다. ‘중간인’이라는 하나의 유형으로 수렴되는 오형근의 모든 피사체는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한국 사회의 미세 불안을 증언하는 낱낱의 표지다. 이를 포착해내는 작가 역시 그 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1.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사진 자체보다는 젠더에 따른 해석 쪽이다. 이를테면 군필자 남성의 경우 사병들의 계급에 따른 미묘한 권력관계의 표지에 훨씬 예민하게 반응한다.

문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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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자를 바라보는 경계에 선 자

 20세기 초 독일사회 각계각층의 인간군상을 찍은 아구스트 잔더 (1876-1964)의 사진연작 <20세기 사람들>  이 여전히 현대사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단지 잘 찍은 인물사진이어서 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획되고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인물사진만으로 당대 독일의 사회구조를 드러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잔더 이후 우리는 인물사진에서 사진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가 입은 옷이나 속한 배경 등 그의 외면까지도 눈 여겨 보게 되었고, 단지 한 장의 사진만을 보지 않고 그 사진을 포함한 전체 연작을 통해 그들이 속한 사회를 보게 되었다. 20여 년 간 인물사진을 찍어 온 한국의 대표적 사진작가 오형근(1963- )의 사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잔더가 여러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당시 독일 사회 전체의 횡단면을 그리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형근은 개인적 관심에 따라 각 연작마다 하나의 인물 군(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그 결과, 대한민국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태원이야기>, <광주이야기>, <아줌마>, <소녀연기>, <화장불안> 등 그간 오형근의 인물사진에서 주목해 온 인물 군은 작가가 오랫동안 살아 온 이태원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사람들 , 영화촬영 현장에서 그 지역 실제 거주민과 한 화면에 공존하는 무명의 배우들 , 대한민국에서 제3의 성(性)으로 불리며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중년의 기혼 여성인 아줌마, 교복을 입은 여고생,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화장한 소녀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구성원이면서도 중심에 있기보다는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소수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호기심 어린 관찰자의 것이되 묘하게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오형근의 사진은 언제나 상이한 둘 사이의 경계에 서 있으며 ‘이중성’은 그의 작업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다. 사진과 영화를 동시에 전공한 뒤 순수사진과 영화 관련 사진작업을 병행해 온 이력에서부터 실재(다큐멘터리)와 비실재(연출)를 오가는 작업방식, 그리고 그간 주목해 온 인물 군의 사회적 위치와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경계에 선 자의 모호함이 있다.
특히 사진의 소재로써 여성을 대하는 그의 이중적 시선은 흥미롭다. 그는 분명 대한민국 대다수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 - 아줌마와 소녀 ? 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시선은 ‘그들’과 공감하기보다는 ‘그녀들’과 교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들어 낸 강하고 억척스러운 아줌마라는 특유의 집단을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 그녀들의 애환과 유머를 놓치지 않고, 동년의 남자 아이들과 달리 일찍이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전형화된 이미지를 강요 받는 소녀를 소재로 삼지만 그녀들의 정서적 흔들림과 불안정한 정체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여성을 대상으로서 바라보면서도 자신과 결코 이질적이지 않은 공감의 영역을 확보한 채 그들에게 다가선다. 이러한 모호함으로부터 비롯된 특유의 긴장감이 오형근의 인물사진이 가진 가장 큰 힘일 것이다.
오형근은 최근 몇 년간 십대 소녀에 천착하고 있다. 작업노트를 영어 단어 ‘ambivalent’의 사전적 정의로부터 시작하고 있듯 그에게 소녀가 인물사진의 소재로서 가치 있는 이유는 그녀들이 아이와 여성의 경계에 선 모호하고 불안정한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들은 ‘내부적’으로 아직 가치관이 채 형성되지 않은 ‘아이’면서 ‘외부적’으로는 일찍이 ‘여성’으로서의 시선을 부여 받는다. 이 상충하는 두 지점 사이에서 그녀들의 자아는 허공에 뜨고 정체성은 확립되지 못한다. 오형근은 이러한 우리 사회 십대 소녀의 모호한 존재적 위치에서 비롯된 불안을 사진에 포착하고자 노력해 왔다.
먼저 <소녀연기>(2003)는 교복을 입은 채 비슷한 표정과 포즈를 한 소녀들을 유사한 포맷으로 찍은 흑백사진연작이다. 이 사진들은 인물과 배경의 명암대비가 극단적인 그의 이전 사진들과 달리 전체적으로 중간 계조의 미묘한 차이가 풍부한 흑백사진으로 그러한 특징은 사진 속 소녀들의 모호함과 불안을 살려주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작가가 사진에 담고자 한 그녀들의 ‘모호한 시기의 정서적 흔들림’은 개별 사진에서는 읽혀지나 전체 연작으로 볼 때 소재, 형식과 함께 그마저 반복되어 일정한 유형으로 보이게 된다. 이처럼 그가 ‘소녀도감’이라는 표현을 쓰며 소녀를 일종의 유형학적 사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 사진들로부터 우리 사회가 십대 소녀에게 부여하는 정형화된 모습과 그들의 사회적 위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 매체는 연예인을 통해 전형적인 소녀의 표정과 포즈를 은연중 강요하고 가치관이 채 성립되지 않은 소녀들은 그 모습을 쫓아 자연스레 습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에서 십대를 보내고 있는 소녀들에게 개성이란 사라지고 그 겉모습은 도감을 만들어도 무리가 없을 객관적 산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눈에 띄는 유형학적 요소 뒤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사회구조를 말하는 본래 유형학 사진의 특징처럼 오형근의 소녀사진 역시 유사한 표정과 포즈 너머 그녀들이 소녀이면서 소녀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오형근의 소녀사진이 형식상의 변화와 내용상의 심화를 거쳐 나온 것이 최근작 <화장불안> (2007-8) 연작이다. <소녀들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으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십대 소녀의 화장한 얼굴과 그녀들의 머리모양, 옷 매무새, 몸짓, 태도를 드러내는 전신과 신체 일부분을 일정한 형식으로 찍은 대형 컬러사진연작이다.  흑백으로 일관하던 작가의 이전 사진과 달리 처음으로 컬러가 시도되었으며 고성능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초대형 크기(최대 약 200x260cm)로 인화한 덕분에 적나라한 소녀들의 얼굴과 몸의 디테일이 관객을 압도한다.
사진 속 소녀들은 하나같이 아이인 듯 하면서도 동시에 성인인 듯 나이를 가늠할 수 없고, 컬러렌즈를 착용한 눈에서는 알 수 없는 흔들림이 감지되며, 밀착되지 않고 들뜬 피부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이 느껴진다. 이는 마치 아직 수확할 때가 안된 과일을 인위적으로 익혀 겉은 익었지만 속은 떫은 ‘성숙을 가장한 미성숙’의 징후처럼 보인다. 소녀들은 컬러렌즈와 색조화장뿐 아니라 염색머리, 붙임머리(짧은 머리에 인조 모발을 붙여 길게 한 머리 모양), 매니큐어, 페디큐어, 문신 등 성숙한 외양을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여드름, 화장이 들뜬 피부, 볼의 홍조, 렌즈로 인해 충혈된 눈, 몸의 흉터나 상처, 옷과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 양말 등 미성숙의 증표를 완전히 가리지 못한다. 이렇게 그들은 모호한 존재로 남아 있다. 한편 사진 속 소녀를 소녀로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화장이나 기타 다른 외양적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일부 소녀들에게는 보통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는 살아온 세월이나 성격과 같은 흔적이 전혀 없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으며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한 중성적 시선만이 머물 뿐이다. 이는 정체성의 부재를 내포하는 바 작가는 자신의 사진을 통해 이 사회의 청소년이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경고하고자 한다. 그것은 개성이 없는 일률적인 화장술을 넘어서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어쩌면 내면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우리 사회 청소년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녀들 대부분은 손을 앞으로 포개 모으거나 가랑이 사이에 넣어 성기 부분을 가리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주문한 것이 아닌 1시간 반 여의 촬영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나온 그녀들의 평소 자세다. 어쩌면 소녀들은 이미 자신들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또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그러한 소녀들의 자세나 태도에서 성적 긴장감과 불안의 징후를 포착하였고, 일부 사진은 앵글에서 직접적으로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여 유사한 포맷으로 반복하고 있다. 작가는 소녀를 일종의 상품으로 대상화하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을 강조하기 위해 소녀들을 스튜디오로 들여와 장식물을 올려놓듯 좌대 위에 융단 천을 깔고 색깔 있는 배경 앞에 앉혀놓았다. 단 배경색을 보통의 유형학 사진처럼 중성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각 소녀의 느낌에 따라 다르게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반복이 아닌 미묘한 감각적 차이를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오형근의 인물사진이 단순히 독일식 유형학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변형된 유형학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아줌마와 두 소녀 시리즈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 지위를 부여 받은 여성 군을 다룬다는 점 외에 사진 별 인물들간의 미세한 차이를 강조하는 변형된 유형학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줌마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종(種)을 보여주고자 그들을 유사한 포맷으로 찍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각 인물의 개성과 표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개인을 사라지게 하고 단체를 두드러지게 하는 졸업앨범을 모티브로 “여고생이라는 인물 군 전체의 아우라를 담아내고자” 한 <소녀연기>에서도 그는 그녀들의 미묘한 감수성을 부각시키고자 단순한 반복이 아닌 연작의 형식을 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장불안>에 이르러서는 형태적으로 토마스 루프 와 같은 기존의 유형학적 인물사진에 보다 근접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의도적으로 변형시켜 차별화하고 있다. 루프가 최대한 인물의 감정과 개성을 제거하고 일률적인 형식으로 인물을 찍었다면, 오형근은 전체 연작 안에서 사진들 간의 유사한 형식을 유지하되 각 소녀들의 불안과 흔들림을 포착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전체 연작 안에서 포맷을 다양화하고  고화질 대형사진의 핍진(逼眞)성으로 각 소녀와 마주하는 느낌을 강조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인물마다 배경색을 달리 하거나 촬영 후 전혀 다른 두 사진을 이면화(diptych)로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이는 특정한 인물 군을 하나의 사진연작 안에서 다루면서도 사람을 여타 다른 유형학의 소재처럼 객관화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오형근의 인물사진은 이중적이고 모호하다. 한 가지 소재에 대해 일정하게 유지하는 반복적 형식과 그 속에 잠재된 주제의식은 분명 유형학의 특징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각 인물의 구체성과 그에 대한 자신의 주관은 거두지 않고 있다. 이는 전체 연작을 통해 사진 속 인물 군을 둘러싼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개별 사진 안에서 그들간의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이중적 욕망에서 기인한다. 오형근은 작업 전반을 통해서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영역의 경계에 선 중간자의 면모를 유지해왔다. 그것은 그가 찍은 소녀들처럼 모호함과 불안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확실하고 안정된 것이 긴장과 자극을 줄 수 없고 현대미술의 본질적인 속성이 긴장과 자극이라면, 오형근의 사진이 계속하여 지켜가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이중성일 것이다.

1. 잔더의 <20세기 사람들>은 1924년경 농민, 장인, 여성, 전문직종, 예술가, 대도시, 최후의 사람들(노숙자, 퇴역군인 등)이라는 7개의 섹션으로 분류하고, 12장씩 45개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한 백과사전식 인물사진연작으로 이 중 60장만을 선별하여 1929년 첫 작품집 <시대의 얼굴Face of Our Time>이 출판되었다.

2. 이태원은 한국 전쟁 이후 주한미군의 주요 위락지구로 번창하여 현재는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가 찾는 쇼핑과 유흥의 장소로서 외국문화가 한국식으로 변형된 형태의 식당, 술집, 유흥업소 등이 밀집되어 있다. 작가는 1997년 당시 배우, 가수, 웨이터, 게이, 디제이 등 이태원에 거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들의 생활환경을 배경으로 찍었다.
3. <광주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사진연작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꽃잎>(1996)의 포스터와 스틸 컷을 담당한 작가가 당시 영화촬영현장에서 무명 배우와 광주 시민이 한 데 얽힌 모습을 의도적으로 한 장의 사진에 담아 실재(촬영현장)와 비실재(영화)를 혼재하게 한 작품이다.  

4. 주로 화장한 얼굴에 초점을 맞추어 2008년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제목이 <소녀들의 화장법>이었다면, 대상과 형식 면에서 보다 범위가 확대된 이 연작의 최종적인 제목이 <화장불안>이다.

5. 서울 시내 여러 지역에서 섭외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500여 명의 십대 소녀 중 촬영을 수락한 138명을 모델로 한 이 사진연작은 작품제목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화장법과 패션 스타일이 드러나는 일종의 사회적 보고서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업으로서 그 형식과 주제를 파악하는 편이 작가의 의도에 보다 적합하다.  
6. 독일의 대표적 유형학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인 토마스 루프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완전히 무표정하고 중립적인 모습을 요구하고 동일한 포맷으로 찍은 인물사진 <포트레이트>(1986)으로 잘 알려져 있다.

7. 스튜디오의 좌대에 앉아 증명사진, 전신, 하반신 세 가지의 일정한 포맷으로 찍은 <소녀들의 화장법>으로부터 범위를 확대하여, 앉지 않고 서있거나 스튜디오가 아닌 실생활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을 찍는 등 포맷을 다양화하였다.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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