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한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상당수 이미지들은 사건, 사고 그리고 사후대책 등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거기에 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 재난 사진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현대인들이 우리가 몰라도 될 법한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거나 혹은 그들이 처한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일상과 다른 특별한 상황을 다룬 이미지들은 글로벌하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름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사건이 일어난 지역, 시대, 국가, 민족 등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진들이지만 그것들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실상을 실감할 수 없는 ‘의미없는’ 이미지일 뿐이다. 하태범은 이러한 리얼리티를 담은 이미지를 이용함으로써 작업을 전개시키고 있다.
하태범의 작업이 처음부터 미디어를 통해 발견되는 이미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자신이 일상에서 직접 마주치는 순간의 장면, 그리고 그로부터 겪는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2007년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본다'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적 세계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은 세상 밖으로 향한 시선을 담게 되었다. 시각적인 충격이지만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또다른 일상의 모습이 바로 미디어를 통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에 대하여 무심하고, 무신경하며, 아무런 연민이 생기지 않는 자신에 대하여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2008년부터 'White'시리즈를 통해서 작가는 모든 대상을 하얗게 만드는 작업을 선보이게 되었고 이미지의 탈각화, 의미의 객관화를 시도하였다. 특히 평면사진, 조각작업은 모든 것을 얇고 질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종이모형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평론가 이은주가 말하듯 ‘껍데기적 표상’으로서 이미지의 리얼리티를 전혀 의도하고 있지 않다. 관람객이 그걸 인지하는 순간 이미지는 촉각적, 지각적, 시각적인 허무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미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건과 사고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진, 입체작업을 통해 이미지 속의 공간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가에 좌우되는 문제이다. 이미지 선별작업이 끝나면 작가는 원래의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나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최적화되는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이미지 속의 공간이 나타내는 인상을 얼마나 똑같이 나타낼 수 있는 가에 대한 문제이며, 오로지 자신의 조형적 사고에 의해 좌우되는 이미지이므로 작업 속에 인물의 등장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하태범은 미디어에 의해 생산된 샘플링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Type Casting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원래의 이미지에서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지역적 상황이 제거되고 비극적 맥락, 공간적 맥락이 지워지고 새로 만들어짐으로써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하태범의 작품은 전쟁의 참상, 재난의 피해와 같은 표피적인 의미 너머 의미의 부재, 시대의 상실, 원인의 망각, 나아가 삶의 부재로 인한 죽음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이 아무리 자신들만의 독특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작품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을 취하더라도 그들이 살고있는, 맞닥뜨린 현실은 비슷하다. 작업의 원천이 비슷하므로 그들이 생산해낸 결과물이 유사한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한 경향들이 특정한 시대에 집중되어 하나의 시대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디어에 의한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하태범은 한가지 특정장르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설치, 조각, 사진,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로 작업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장르를 이용한다는 점과 종이모형작업에서 유희적 측면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작업의 시작은 오로지 작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모형작업은 부분적인 모형이 파편화되어 나타남으로써 손의 흔적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또한 현장의 공간감, 색감, 공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백색의 공간은 이미지의 실제감을 불어넣기 보다는 오히려 초현실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있음으로 인해 하태범의 작품 속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자로서 예술가의 역할을 인식함에 따라 작가는 작업의 근원이 되는 전쟁, 재난의 상황의 원인제공자, 피해자로서 인간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그러므로 방관자로서 입장이었던 이전작업과 달리 퍼포먼스 'Dance on the City', 'Playing War Games'에서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거대한 놀이로서 파괴, 전쟁의 과정,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본능과 희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시선이 한동안 세상을 향해 있었다면 이제 인간이 작업에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만이 가득했던 작업에 생명이 개입되어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경험과 해석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하태범의 작업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동시에 향후 작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