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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하태범, 토탈미술관

출생

1974, 서울

장르

조각, 설치, 사진

홈페이지

www.hataebum.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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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1, 2010

피그먼트프린트&페이스마운트, 150 x 11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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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 평론_1

TV,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를 통한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상당수 이미지들은 사건, 사고 그리고 사후대책 등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거기에 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 재난 사진이 더해지면서 오늘날 현대인들이 우리가 몰라도 될 법한 일들에 대해서 알게 되거나 혹은 그들이 처한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일상과 다른 특별한 상황을 다룬 이미지들은 글로벌하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름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사건이 일어난 지역, 시대, 국가, 민족 등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진들이지만 그것들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실상을 실감할 수 없는 의미없는이미지일 뿐이다. 하태범은 이러한 리얼리티를 담은 이미지를 이용함으로써 작업을 전개시키고 있다.

하태범의 작업이 처음부터 미디어를 통해 발견되는 이미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자신이 일상에서 직접 마주치는 순간의 장면, 그리고 그로부터 겪는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2007'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본다'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내면적 세계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고 있지만 실은 세상 밖으로 향한 시선을 담게 되었다. 시각적인 충격이지만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또다른 일상의 모습이 바로 미디어를 통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에 대하여 무심하고, 무신경하며, 아무런 연민이 생기지 않는 자신에 대하여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2008년부터 'White'시리즈를 통해서 작가는 모든 대상을 하얗게 만드는 작업을 선보이게 되었고 이미지의 탈각화, 의미의 객관화를 시도하였다. 특히 평면사진, 조각작업은 모든 것을 얇고 질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종이모형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평론가 이은주가 말하듯 껍데기적 표상으로서 이미지의 리얼리티를 전혀 의도하고 있지 않다. 관람객이 그걸 인지하는 순간 이미지는 촉각적, 지각적, 시각적인 허무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미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건과 사고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진, 입체작업을 통해 이미지 속의 공간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가에 좌우되는 문제이다. 이미지 선별작업이 끝나면 작가는 원래의 이미지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나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최적화되는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이미지 속의 공간이 나타내는 인상을 얼마나 똑같이 나타낼 수 있는 가에 대한 문제이며, 오로지 자신의 조형적 사고에 의해 좌우되는 이미지이므로 작업 속에 인물의 등장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하태범은 미디어에 의해 생산된 샘플링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Type Casting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원래의 이미지에서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지역적 상황이 제거되고 비극적 맥락, 공간적 맥락이 지워지고 새로 만들어짐으로써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하태범의 작품은 전쟁의 참상, 재난의 피해와 같은 표피적인 의미 너머 의미의 부재, 시대의 상실, 원인의 망각, 나아가 삶의 부재로 인한 죽음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이 아무리 자신들만의 독특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의 작품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을 취하더라도 그들이 살고있는, 맞닥뜨린 현실은 비슷하다. 작업의 원천이 비슷하므로 그들이 생산해낸 결과물이 유사한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한 경향들이 특정한 시대에 집중되어 하나의 시대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디어에 의한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하태범은 한가지 특정장르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설치, 조각, 사진,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로 작업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장르를 이용한다는 점과 종이모형작업에서 유희적 측면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작업의 시작은 오로지 작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모형작업은 부분적인 모형이 파편화되어 나타남으로써 손의 흔적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또한 현장의 공간감, 색감, 공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백색의 공간은 이미지의 실제감을 불어넣기 보다는 오히려 초현실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있음으로 인해 하태범의 작품 속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자로서 예술가의 역할을 인식함에 따라 작가는 작업의 근원이 되는 전쟁, 재난의 상황의 원인제공자, 피해자로서 인간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그러므로 방관자로서 입장이었던 이전작업과 달리 퍼포먼스 'Dance on the City', 'Playing War Games'에서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거대한 놀이로서 파괴, 전쟁의 과정,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본능과 희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시선이 한동안 세상을 향해 있었다면 이제 인간이 작업에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전환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질만이 가득했던 작업에 생명이 개입되어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경험과 해석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하태범의 작업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동시에 향후 작업을 기대해본다.

류지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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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범 평론_2

하얀 먼지나 눈이 내려앉은듯한 백색 풍경들은 언뜻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유적지, 가령 낭만적 폐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파키스탄, 노르웨이, 뉴욕 등지에서 일어난 테러, 용산 참사,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대부분 피바람이 몰아친 재난의 현장이다. 거기에는 서울의 쪽방촌, 창신동 재개발 지역 같이 곧 사라질 장소, 요컨대 일상화된 재난 또는 폭력 현장도 포함된다. 반파, 또는 완파되어 아수라장이 된 현장은 신문이나 인터넷 등 미디어에 실린, 사건사고를 참조했다. 작품 소재는 대부분 실제 일어난 사건사고 이미지이지만, 작가가 직접 촬영한 것은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사건사고를 보는 관점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일어난 사건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없는 ‘Imagination’ 시리즈는 사건 현장의 재현에 주력한 ‘Actuality’ 시리즈와 달리, 작가가 임의로 사건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부엌이나 사무실 등 사건이 일어남직한, 고요하지만 긴장감 도는 생활의 무대이다. 자세히 봐야 장면 한구석이 흐트러진 것을 알아 챌 수 있는 이 시리즈는 폭력의 편재화(일상화)를 말한다. 사건은 그것이 공적으로 인지되건 아니건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집단의 이해관계와 권력관계가 충돌하는 보도 사진처럼, 관점과 해석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바뀌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보도사진이라는 실제 사건의 2차원적 해석을 3차원 축소 모형으로 재현하고, 이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차원의 변주가 일어난다.

그것은 포토샵처럼 단지 평면에서 평면으로 평행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최종 산물은 전체가 같은 톤으로 조율 된 하얀 풍경이 담긴 디지털 프린트지만, 작업은 오랜 인내와 기술을 요구하는 수공적 과정을 거친다. 이 변주에서 원본 사진의 주인공들이 제거됨으로써 사건의 무대가 전면에 드러난다. 석고상같이 하얀 표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을 질감과 음영을 강조한다. 그 과정이 너무 치밀하여, 작가는 사건의 핵심 의미를 괄호치고 세부적 표면에 탐닉하는 심미적 태도를 노출하기도 한다. 시체 또는 치명적 부상자들이 대부분일 주인공의 제거는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사건 현장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전면화 되지 않은 사건의 무의식적 차원이 드러난다. 크기와 색의 변화, 주인공의 제거라는 축소모델화 과정에서 작가는 대중의 무감각을 강조한다. A4 용지로 무기를 재현하거나 무용수의 춤 동작에 짓이겨지는 종이 모형 도시가 나오는 영상설치 작품은 A4 용지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사건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무차별적 파괴는 게임이나 댄스와 다를 바 없다. 세계가 세계화 과정으로 축소됨으로써 모순과 갈등이 빈번히 폭발하는 현대에, 대중들은 분명 사회적 원인을 가지고 있는 사건들을 수많은 스펙터클의 하나로 무심하게 소비한다. 미디어에 의한 사건의 왜곡과 스펙터클 소비자의 방관자적 시각은 폭력을 재생산하게 된다.

이선영(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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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on the City

종이로 만들어진 백색 건물들이 바닥에 빽빽이 놓여 있고 저 멀리 무용수의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함과 동시에 무용수는 종이로 만들어진 건물들을 휘젓고 맘껏 밟으며 춤을 춘다. 춤사위는 점점 빠르고 강력해지며 마침내 그 절정을 지나 끝을 맺게 되자 바닥에 재현되었던 건물들은 마치 무언가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파괴되어 작가가 그 동안 사진으로 선보여 왔던 사진 장면처럼 연출된다. 여기에는 작가의 특정한 기억과 감상이 들어있고 작업에서 드러나는 서사적 구조와 연극성에 대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화면이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의 공간감과 전개과정에 의해 완성되고 아울러 관객의 시점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작품의 구성요소로 가져왔다.

매체에서 보여주는 사건의 장면을 접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실제 그 현장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정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은 마치 연극이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강 건너 불구경이 되어 버린다. 우리들에게 노출된 장면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즉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무수히 반복되어 결국 지켜보는 이들에게 허구인지 실재인지 인지하는 것조차 무감각해지게 될 정도로 소비된다. 즉 중간 매체를 통해 현실을 접하게 되면서 마치 연극이나 영화를 보듯 태만한 태도에 사로잡히게 된다. 작가 하태범은 이렇게 무분별하게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지각과 인식의 태도를 사회적인 구조 문제 안에서 마치 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감성을 통해 드러내고 때로는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작가 본인 뿐 아니라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획득한 카타르시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 처한 현실이나 당면한 문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과 대응하는 방식이 고정적이거나 유일한 것이 아니며 언제나 바라보기의 다른 방식과 대안적 행동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 영상 작업은 어떠한 현상의 질서와 그것의 프로세스를 보여주며 컨텐츠들이 스스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놀수 있는 공간의 영역이 한 층 넓어지게 되었다.

 

김선일(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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