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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토탈미술관

출생

1961, 서울

장르

설치

홈페이지

www.choijeong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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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천연색(전시전경_문화역서울 284, 서울), 2014

혼합매체, Variable s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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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의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최정화, 버나큐러, 그리고 팝아트
1990년대 중반부터 인테리어, 설치, 아트 디렉터로서 활약하여 온 최정화가 미술감독을 맡은 영화 <모텔 선인장>(1997)의 인테리어는 작가가 선호하는 물건들로 채워 있다. 붉은 정육점 불빛으로부터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빨강색의 꽃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주 배경인 모텔룸 407호은 저급스러운 물건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폭포수 그림을 애지중지하는 남자친구(정우성분)에게 여주인공(진희경분)은 이발소에서나 발견되는 유형의 그림을 왜 그리 소중히 다루냐고 핀잔을 준다. 사막과 연관된 이름을 지닌 모텔의 내부에 위치한 폭포수 그림은 흥미롭게도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절제된 톤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넓게 펼쳐진 폭포의 모습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지형이다. 오히려 수평적으로 널리 펼쳐진 폭포는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를 연상시킨다.
  최정화의 초기 미술감독 작업인 <모텔 선인장>의 세팅은 작가가 1987년 뮤지움 그룹의 멤버로 미술계에 등장한 이래로 취하여온 10년간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407호에는 싸구려 취향의 물건들 뿐 아니라 ‘이발소 그림’과 같이 그 소재나 기법의 문화적인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텔 선인장이라는 생뚱맞은 외래어나 붉은 색의 싸구려 모텔 간판은 정확히 말해서 세련된 대중소비문화나 전통 문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팝아트와 버나큐러 문화』(2007)의 저자인 코베나 머서는 서구의 팝아트가 비서구권에 이양되면서 생겨난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버나큐러라는 개념을 인용한다. 원래 버나큐러는 귀족이 사용하는 외래의 세련된 언어들, 예를 들어 유럽의 라틴어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나 반대로 완전히 토착적인,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토착노예’의 문화를 가리킨다. 그러나 머서에 따르면 후기 식민지이후 시대에 버나큐러는 단순히 토속적인 문화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서구 산업시대로부터 파생된 “대중소비문화”와 산업시대 이전의 전통적인 공예의 영역사이에서 일종의 모호한 영역을 점유한 문화를 가리키게 된다.1) 예를 들어 관광지에서 만들어진 짝퉁 토착문화상품은 중간자적인 문화 지대를 차지하게 된다. 실제로 최정화의 <신사숙녀 여러분>(2000)은 토속신앙과 서구의 대중소비문화, 전통 공예와 대중문화의 캐릭터를 결합해 놓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정화의 예술을 단순히 한국식 팝아트의 한 부류로 간주할 수 있을지는 논란거리이다. 물론 최정화가 일상적인 삶의 파편들을 순수예술의 분야에 편입시켜왔다는 점에 있어서 그의 예술이 팝아트와 유사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화가 누차 강조하고 있는 시장통 문화는 서구 유럽과 미국의 주요 팝아트 관련 작가들이 인용하였던 전후의 발달된 대중소비문화와는 분명히 차이를 보인다. 최정화의 시장통 문화는 워홀이 1960년대에 즐겨 인용하였던 미디어 문화나 대량생산을 위주로 하는 슈퍼마켓의 문화와 실은 대척점에 놓여 있다. 시장통 문화는 전후 서구사회의 풍요로운 대중소비문화와는 달리 저급으로 생산해낸 짝퉁 소비문화의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포장마차의 천막과 낱장 광고로부터 영감을 받은 1998년 쌈지 스포츠의 인테리어, 플라스틱 소쿠리를 쌓아 올려서 만든 <플라스틱 파라다이스>(1997)등은 결정적으로 작가가 주장하는 사라지면 아쉬운, 촌스럽지만 정감어린 빈티지 문화에 속한다. 만약 워홀이 1962년에 인용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0년대 말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면 1997년 최정화가 인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소쿠리는 엄밀히 말해서 국내에서는 사라져가는 전 세대의 소비문화이다. 실제로 최정화는 1997년 방콕 전시를 계기로 플라스틱 소쿠리를 세련된 소비문화가 한국에 비하여 덜 발달한 태국에서 주문제작한 바 있다. 즉 1970년대 국내에서 ‘신(新)가라’의 상징이었던 플라스틱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소비문화의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빈티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정화와 노스탤지어
그렇다면 왜 최정화는 1990년대 말 철 지나간 빈티지 문화를 자신의 주요한 예술적 영감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의 작업은 일차적으로 1990년대 국내 포스트모던 담론과 함께 젊은 세대 한국의 작가들이 기존의 ‘오브제(물건)’들을 그대로 차용해가는 전법을 사용한 역사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90년대는 또한 영화 <칠수와 만수>(1989)에 등장하는 바와 같이 1990년대는 한국 대중소비문화가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특히 이 시기에 작가는 특정한 브랜드나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총괄하는 총체적 디자이너로서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였고 그의 초기 인테리어 취향을 반영하는 미니멀적인 강남의 부티크 샵들(박윤수의 올 스타일, 보티첼리)을 디자인 하였다. 이들 인테리어는 최정화가 뮤지움 그룹과 함께 활동하면서 선보인 오브제 작업들과는 전혀 단절된 성향을 보이는데 이것은 최정화가 1990년대 한국의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분화, 또는 양극화되는 과정에서 가능한 예술적, 문화적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1988년 올림픽 이후에 각종 해외여행이나 수입과 연관된 규정들이 완화되면서 외국의 소비문화나 대중문화가 이 시기에 국내로 급격하게 유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정화에게 빈티지 문화는 1970-80년대에 성장기를 지낸 작가의 향수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 특유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1970년대 저소득층 도시인들을 위한 싸구려 생활용품들을 만들어 내는데에 주로 사용되었던 일종의 플라스틱 소쿠리의 탑이다. 그러나 최정화에게 빈티지 문화는 단순히 그가 보존하거나 재활용할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원래 플라스틱과 파라다이스의 개념을 연관시키는 것은 고전적인 문화 이론과는 모순된다. 문화이론의 고전서인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일상의 신화들』(1957)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모든 물건을 원래 재료의 특성을 무시한 채 그것이 자연적이건 인공적이건간에 외형만 모방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비관적인 시점에 따르면, 플라스틱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전후 소비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2) 게다가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은 환경적으로도 가장 유해한 물질로 손꼽힌다.   하지만 플라스틱에 대한 최정화의 해석은 다르다. 그는 플라스틱 소쿠리를 보면서 천국을 상상한다. 물론 시장통의 플라스틱 소쿠리가 실제적인 풍요를 상징한다고 작가가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작가는 동일한 종류의 물건을 집적하는 방식을 즐겨 왔는데 이것은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가난하기 때문에 소위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쌓아놓는” 시장통 사람들의 습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게 유사한 물건을 많이 찍어서 만들어 내는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는 착시적으로 ‘풍요’의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플라스틱은 단순히 덜 세련된 외관과 시각적 효과에서뿐 아니라 그 재료나 설치 방식에 있어서 결국 시장통 문화가 지닌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은 최정화에 의하여 환경 친화적인 소재로도 탈바꿈한다. 최정화는 공동프로젝트(이재영 감독, 오형근 사진작가)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1994-2004)와 연관하여 미술관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폐품들을 미술관이나 특정한 장소에 관람객들이 들고 오는 “해피 해피(혹은 해피 투케더)” 시리즈 프로젝트(가고시마, 상해, 벨기에, 영국)로 지난 10년간 발전시켜 왔다. 2008년 서울 디자인 올림픽, “모으자, 모이자”를 통하여 국내에도 소개된 이 프로젝트는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설치한 철제구조물에다가 관람객들이 취합한 생활재들을 들고와서 거는 참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공공예술이다.  “해피 해피” 시리즈에서 한물간 문화를 상징하는 플라스틱은 이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니 플라스틱은 미래 우리의 환경을 보존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과거를 상징하는 재료가 미래의 이상향(작업의 개방적이고 관객참여적인 속성과 아우러져서)을 상정하는 재료로 거듭난 것이다. 안드레아스 휴이센의 말대로 노스탤지어는 과거의 특정한 이상향을 상정하고 흘러간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실현되지 못한 미래에 대한 염원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3)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흔히들 최정화의 작업이 쉽고도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작업의 소재들인 꽃, 로봇트, 소쿠리등이 지나치게 평범하고 심지어 어떤 때는 상스럽기까지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예술작업들을 관통하는 이상주의적인 메시지가 한편으로는 단순하고 쉽지만 그것을 무턱대고 관람객들이 받아들이게 되지는 않는다. 특히 싸구려 미학을 신봉하는 냉소적인 작업의 외관에 비하여 저변에 깔려 있는 이상주의적인 메시지는 그가 소통하고자하는 바를 관람객들이 정확히 감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아가서 관람객들은 플라스틱 파라다이스와 <대형 꽃>(2000)을 미술관에서 맞딱드리게 되면서 의아해하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그가 인용하여 온 싸구려 관광용품,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한물간 버나큐러 문화의 상징이라면 시장통 사람들과 최정화는 실제적으로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가? 그는 2004년 교육방송 인터뷰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종로의 만물상이나 1960년대 말에 지어진 동대문 시민아파트(속칭 연예인 아파트)의 미적 가치를 탐사하는 작가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고물상들이나 오래된 아파트의 주민들과 그의 삶이 그다지 밀착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고물상이나 주민들은 발전하는 대중소비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뒤쳐진 세대일 뿐이다. 게다가 플라스틱 폐품작업들은 미술관이나 디자인 페어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이벤트일 뿐이다. (물론 선전이나 홍보의 효과는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최정화의 ‘플라스틱 파라다이스’는 단순히 혼용된 빈티지 문화를 이상화할 뿐 그 문화의 단계에 머무른 사람들의 경제적 처지는 도외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아직도 최정화의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반신반의한다. 그의 이상주의에 대한 우려만큼이나 기대를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1) Kobena Mercer, Pop Art and Vernacular Culture (Cambridge, MA: MIT Press, 2007), 9 2) Roland Barthes, Mythologies (1957), trans. by Annette Lavers (Farrar, Straus and Giroux, 1972), 118-119. 3) Andreas Huyssen, “Notalgia for Ruins,” Grey Room 23(2006): 7.

평론가 소개글
고동연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론과에 출강중이다. 2010년에는 뉴욕 시립대학교의 박사 논문인 <레리 리버스와 프랭크 오하라: 1950년대 미국의 예술과 문화적인 맥락에서 남성성에 대한 재고찰>이 책으로 발간되었고 미술사나 전시기획에 관한 그녀의 프로젝트들은 주로 현대 동아시아미술과 물질문화나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동아시아의 현대미술과 노스탤지어라는 제목의 저서를 집필 중에 있다.

고동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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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무한한 변형이라는 관념 자체이다

플라스틱은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무한한 변형이라는 관념 자체이다. 플라스틱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가시화한 편재(遍在)성이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플라스틱을 기적적인 물질로 만드는 것이다. 기적은 늘 자연의 갑작스러운 전환이다. 플라스틱은 이런 경이로 충만하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움직임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거의 무한하여 본래의 크리스털을 다양한 놀랄만한 물건들로 만드는 해독해야 할 스펙터클이 된다.
-롤랑 바르트, 『신화론』
생활의 달인
현재 인기리에 방송 중인 TV 프로그램 중에‘생활의 달인’이라는 것이 있다. 만두 빚기, 떡 썰기, 면발 끊기, 밥상 나르기, 접시 닦기, 스탬프 찍기, 타이어 쌓기, 박스 접기 등 단순해 보이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기 어려운 일로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가 된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선보이는 프로이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달인들의 퍼포먼스와 주변의 친숙한 물건들의 제조공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포인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고된 세상살이에서 쌓인 내공이 찡한 여운으로 남기에 이 프로에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사람이나 하이테크 작업은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이 굳은살 박인 손으로 일하는 곳은 대개 허름한 공장이나 비좁은 가게 한구석 또는 복잡한 시장통이며, 값싼 먹을거리나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산품들이 주역이다. 이쯤에서 이들의 무대에 최정화를 슬쩍 끼워 넣는 것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스스로 시장통이야말로 작업에 영감을 주는 최대의 소스로 꼽고, 교육받지 않은 아줌마들을 가장 ‘쎈’ 스승으로 모시며, 저급 가운데서 ‘고품격’ 미감을 발견하거나 또는 저급과 고급을 서로 환골 탈태시키는 일종의 게릴라식 ‘환치기’ 전략을 구사하는 그의 작업세계가 달인들의 그것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급미술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체질적인 반감과 미술의 배타적 경계 짓기에 대한 거부감, 생활이 증발한 미술의 공허함에 대한 비판의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고 닦지 않은 날것의 미감으로 만들어진 값싸고 허름한 물건들에 대한 향수 어린 애착과 집념이 낳은 결과이다. TV를 보지 않는다는 그가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과 공모할 의혹이 있는 ‘장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달인’을 발굴하고 그 기준을 철저히 서민의 ‘생활’ 속에 둔다는 점에서, 그가 ‘장인’보다는 ‘달인’의 칭호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까지 하게 한다. 이런 배경에서 그가 초창기에 서민들의 먹을거리로 작업하고 이후 값싸고 흔한 플라스틱 제품을 주 매체로 선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또한 이런 작업들은 떠들썩한 시장통을 비롯, 서민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그려낸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의 계보를 이어받는다.
최정화가 즐겨 다루어온 것들은 삼겹살, 돼지머리, 생선, 통닭, 배추, 과일 등 각종 식품이고 그것들은 우리의 필멸의 육신을 지탱하는 자양분이면서 또 쉽사리 변질하고 부패하는 물질들이다. 이들은 그의 또 다른 주요 모티프인 꽃과 함께 바니타스 또는 메멘토 모리를 주제로 한 장르화의 단골 메뉴들이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과일들, 그리고 정육점 갈고리에 걸린 육감적인 고기들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려놓고‘색즉시공’을 설파했던 이율배반적인 그림들 말이다. 물질의 덧없음을 가장 통렬하게 보여주는 꽃이나 먹을거리 그림들은 그 시각적인 매혹이 대전제이지만, 그 중에는 이미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적지 않다. 삶과 죽음 또는 신선함과 부패함이 한자리에서 비교되는 이런 그림들은 예를 들어 <썩은 미술, 썩는 미술>이나 조화와 생화를 섞어놓고 일정 기간 프로세스 아트를 진행시킨 작업의 대선배들이다. 후자의 작품에서 생화는 시들고 조화만이 싱싱하게 ‘살아남는’ 과정을 목도하게 하는데, 이처럼 과거 바니타스 그림의 교훈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물론 현대문명의 위대한 발명품인 플라스틱 때문이다. 바르트가 지적하지 않았더라도 플라스틱은 본질적으로 연금술적인 실체이지만 그 신화는 무엇보다 마모되고 파쇄될지언정 썩지 않는다는 불패(不敗)의 그것이리라. 시간의 권능을 부인하는 이 속수무책의 완고한 물성, 이것이 그의 작업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극점인 것이다.
여기서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모티프 중의 하나가 부패와 소멸, 그리고 이를 관장하는 시간이라면 세상의 모든 물상(物象)은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으로 나눠지고 현대의 일상적인 시간 개념은 플라스틱의 등장으로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룩한 것이 된다. 더 나아가 그의 꽃이나 식품과 플라스틱은 부패를 코드로 ‘변증법적’으로 연결되는데, 이때 변증법적이라 함은 플라스틱은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선한 식재료와 꽃을 가장 그럴싸하게 모방해내는 주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그 명칭이 말해주듯 조형성 또는 가소성(可塑性)이 극대화된 재료이기에 그것으로 만든 식품이나 꽃들은 가장 효과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일상에 편재한다. 결국 플라스틱은 이들과 뫼비우스의 띠처럼, 또는 DNA 나선구조처럼 엮여있으며 그래서 작가는 이 양극을 저항 없이 왕복하고 있는 것일 게다. 이 글은 최정화 작업의 염기서열을 더듬어가는 서술이자 미술이라는 언어로 시대를 살아내는 그만의 독특한 관점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를 새삼 되돌아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난지도 가는 길 긴 유리컵에 넘치는/횡설수설의 거품들,/서울의 밤은 밑 빠진 채/깊어만 간다, 아니 얕아만 간다/낙원상가의 밤,/술병 속에 나를 절여 넣으며/술 마시는 밤,/…우르릉거리는 허공에서 거푸거푸 잔을 돌리며/허공에서 춤추느라 길길 뛰며 쿵쾅거린다/이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다/쓰레기로 변하는 식품 찌꺼기들과/엎어진 빈 술병과/쓴물나는 구토,/그 뒤에 밝아오는 허망한 새벽이 없다면
- 최승호, 「세속도시의 즐거움 3」

최정화의 행동반경은 재래시장과 모란시장, 그리고 동남아의 비슷한 시장들, 황학동, 고물상, 만물상 등을 포괄하고, 최대의 선생은 난지도로 알려져 있다. 그가 난지도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80년대 중반쯤이었고 직접 찍은 개발 이전의 사진도 여럿 있는데 그 중에도 난지도의 원체험을 기술하는 핵심 이미지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은 대형 꽃무늬 이불홑청 사진이다.(1994) 생활쓰레기와 폐기물들로 이루어진 광대한 죽음의 극지에 피어 있는 불사의 왕꽃(Super Flower)! 그러나 최정화(1961년생)가 난지도의 이런 미학적, 철학적 충격을 자신의 것으로 해석해 내기까지는 일정 기간 과도기가 필요했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는데 재학 중인 1980년대 후반에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과 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또 당초 미술가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 때늦은 고3 때였고 그림공부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전국실기대회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는데, 초년의 이런 성공은 그로 하여금 지금까지도‘순간 예술가’, ‘취미예술가’ 등으로 자신을 규정하면서도 미술판을 넘나들게 하는 원동력이 된 듯하다. 그에게 대학 시절은 변형된 캔버스를 이용한 설치적인 평면 회화와, 변형 또는 분절된 몸의 표현에 관심이 모아졌던 시기로 신표현주의 화풍의 그림들은 당시 태동하던 이른바 ‘신세대미술’의 “즉흥성”이나 “감각의 탐닉”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시 우리 미술계에 변화의 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으로 그를 포함한 홍익대학 재학 중인 작가들이 만든 《뮤지엄》(1987. 2)전이 거론되거니와 이 문제의 전시에도 그는 여성의 전신 누드를 다루었고, 같은 그룹의 이듬해 《UAO》전에도 틀을 매기지 않은 커다란 천에 발을 확대해서 그린 작업을 출품했다.
1980년대 후반은 사회 전반이 변화와 개방을 향해 열려가고 있던 시기로 국내 미술계에서는 전통과 추상을 접목시킨 노쇄한 ‘모더니즘’ 미술과 사회비판적이고 참여적인 민중미술의 대립구도가 시의성과 참신성을 잃어가고, 급격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동반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미술의 전통적인 권위와 역할이 심각하게 도전 받는 지각변동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두한 ‘신세대미술’은 개별 작품의 급진성이나 완성도보다는 기존 미술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 성역을 정면 공격하는 자유분방하고 때로 치기 발랄한 태도가 핵심이었다. 개인 최정화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 계기는 패션에 눈을 뜨게 해준 일본, 홍콩 여행과 앞에 언급한 난지도의 경험으로 정리될 수 있다. 굳이 나누자면 전자는 장래의 직업과 일을, 후자는 미술작업의 내용과 향방을 결정지은 것으로 둘 다 그의 향후 행보에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1987년 졸업 후에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보다는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고, 얼마 후에는 독립하여 아예 인테리어 회사를 차리기까지 했다. 그가 기존 작업을 청산하고 한동안 소원했던 미술계에 복귀하여 새로운 작업세계를 정립해가기 시작한 것은 1990년 8월 《선데이 서울》전을 기획하고 참여하면서부터이다.
과거의 난지도는 100여 미터 높이의 쓰레기 동산으로 한마디로 앤트로피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 광경은 충격적인 부패의 실상이자 보여지는 모든 것이 곧 허상이라고 역설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산 교과서였거니와 최정화는 이곳에서 서브라임(Sublime)과 에로티시즘이 교차하는 “죽이는” 감흥을 체험한다. 진부한 얘기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 짝이기에 그가 이 죽음의 언덕을 섹시하게 바라본 것은 하등 놀랄 일이 못 된다. 무릇 모든 바니타스 회화의 농염한 표면에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쾌락의 유혹이 전제되듯이, 그는 물질의 죽음 앞에서 그를 추체험 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난지도는 이처럼 삼라만상의 궁극적인 해체의 모습을 시간대별로 보여주는 프로세스의 거대한 현장이다. 그것은 미술로 말하면 대지미술이자, 미니멀리즘을 극복한 포스트미니멀리즘이며, 또한 비정형의 앵포름(informe)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낭비의 처참한 인덱스들을 마주하는 충격은 세속도시의 즐거움을 역설적으로 그려낸 앞의 시 구절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정화는 《선데이서울》전에 실리콘으로 된 삼겹살, 배추, 생선 등을 얕은 투명 아크릴 선반 위에 하나씩 늘어놓은 작업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식품 모형을 제작하는 공장을 방문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는데 당시 국제 미술계에서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시옹(Simulation) 이론이 대유행이었고, 소비사회를 다루는 일군의 상품미술가들은 상품이자 작품인 그들의 작업을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처럼 선반 위에 진열하곤 했다. 최정화의 디스플레이는 진짜와 가짜 또는 실물과 모사품의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부패의 기미로 포화된 날것들을 전시장으로 들여오면서 고상한 미술공간을 공격하는 도발과 충격의 효과를 함께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함께 전시된 이불의 조야한 천으로 만든 촉수 달린 괴물이나 거대한 파리를 천장에 매달고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고 선언한 이형주의 글 등은 당시 이들이 신성모독적인 애브젝트(Abject) 미술에 공감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부패와 기형의 비천함을 통해 실재에 이르고자 했던 애브젝트 미술은 1980년대 후반부터 안드레스 세라노(Andres Serrano)의 악명 높은 <오줌예수(Piss Christ)>나 배설물이나 기형의 몸을 다룬 신디 셔먼(Cindy Sherman), 또는 보다 가깝게는 동식물이 뒤섞인 총체적 부패의 프로세스를 미술관 공간에서 진행시킨 헬렌 체드윅(Helen CHadwick) 등의 ‘쎈’ 작업들이 선도하고 있었다.
《선데이서울》전을 필두로 최정화는 1990년대 전반을 미술작업과 전시기획을 병행하며 보낸다. 1991년 8월에는 《선데이서울》전과 비슷한 계열의 《메이드 인 코리아》전을 기획, 참여하고, 그 해 12월에는 카페 스페이스 오존(Ozone)에서 릴레이 퍼포먼스전 《바이오 인스톨레이션》을, 이듬해 5월에는 같은 공간에서 《쇼쇼쇼》를, 그리고 7월에는 아직 유명세를 타기 이전의 무라카미 다카시가 참여한 《나카무라와 무라카미》2인전을 기획한다. 스페이스 오존은 최정화 자신이 기획, 설계 디자인한 주점이자 공연, 전시, 퍼포먼스 등이 벌어지는 복합공간으로 락카페의 기원이 된 바(bar) 올로올로나 +-제로, 또는 살처럼 우리나라에 클럽문화를 선도한 최초의 공간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매체혼합적이고 장르파괴적인 전시와 공연의 장으로 현대미술이 대중문화와 만난 중요한 거점이었다.
1994년 5월의 《설거지》전 역시 최정화가 기획하고 젊은 여성작가들 4인이 함께한 전시이다. “새로운 세대의 미적 감수성과 독특한 감각을 통해 가치체계의 혼돈을 보여준”다는 기획 의도를 내건 이 전시에 그는 센서가 내장된 플라스틱 날고기 덩어리를 내놓고 관객이 접근하면 빨갛게 빛을 발하게 했다. 이 작품은 <미스코리아> 또는 <현대미술의 쓰임새 조명빨, 사진빨, 화장빨, 성형빨>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플라스틱 바가지들을 전등갓으로 이용하여 전선과 함께 바닥에 쌓아놓은 <현대미술의 쓰임새 색색색>과 함께 현대미술에 대한 그의 깊은 불신과 조롱을 드러낸 작업이다. 앞서 언급한 <썩은 미술, 썩는 미술>(1995) 역시 부패를 주제로 미술을 야유한 작품으로 이는 한동안 부패시킨 고기, 야채, 생선 등의 사진을 썩지 않는 물건들의 사진과 함께 화려한 액자로 프레임해서 진열한 것이다. 날고기 외에도 돼지머리는 그가 즐겨 다룬 식품으로 ‘싻’전에서는 자개상 위에 마주 보도록 얹어놓았고, <아직까진 좋았어>(1995)라는 작품에서는 인조 꽃, 과일과 함께 바구니에 탐스럽게 담아놓았다. 돼지머리는 제의적인 용도로 애용되기에 우리에게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면, 각종 음식 사진으로 내부를 채운 플라스틱 변기 커버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그럴듯한 깨달음>(1993)은 인간의 먹고 배설하는 사이클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으로 애브젝트의 혐오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업이다. 1990년대 전반의 최정화 작업들은 이처럼 기존 미술이나 인간의 세속적 욕망과 집착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던 것을 보여주는데 이때 그 자신 역시 이런 세속도시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움푹해라 내 욕망은/밥숟갈을 닮았다/천 만 개의 숟갈이 한 냄비에 덤비듯/꿀꿀거리고 덜그럭대는 서울에서/나도 움푹한 욕망 들고 뛰어가고/…부르도자가 움푹한 입 벌리며 굴러가고/기름진 돼지 머리가/웃고 있는 좌판 위의 서울/움푹해라 뒤뚱거리는 영혼도/밥숟갈을 닮았다
- 최승호, 「밥숟갈을 닮았다」

꽃의 소묘
최정화는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서 기획한 쌈지책의 첫 번째 테마를 ‘꽃’으로 잡았다.(1998) 이 책은 꽃무늬 아이스박스와 단추가게의 꽃 단추, 앤디 워홀과 김홍주 등의 작품에 등장한 꽃과 화투의 꽃패로부터 쓰레기 수거차에 찍힌 무궁화까지 세상의 모든 꽃들의 이미지로 구성된 꽃의 만물상이다. 그가 꽃을 다루는 것은 언어가 필요 없고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명하는 생화보다 조화라는 흔한 대체물이 더 널리 통용되는 특이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더 익숙하며 플라스틱만큼이나 흔한 대표적인 팝아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꽃 이미지들을 수집했지만 꽃이 단독 오브제로 구현된 것은 화분에 심어진 대형 풍선 튤립 <슈퍼 플라워>(1995)가 시초이다.
이 작업 이후 꽃은 그의 주요 모티프가 되어 리옹, 리버풀, 광주 등 각종 비엔날레와 일본 모리 미술관, 제주도, 릴, 코펜하겐, 상파울루, 싱가포르, 베이징 등 세계 각지에서 작품화되고 설치되었다. 개중에는 흑색과 백색 또는 황금색 등 모노크롬 꽃과 형광 꽃까지 있는 반면 <터치 미>(1998) 같은 화려하고 치명적인 꽃도 있다. 또 이들 대부분의 봉제 꽃들은 모터와 센서가 달려 있어서 피고 지는 동작을 반복하는 ‘살아 있는’ 꽃들이다.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키네틱 오브제의 효시 중 하나는 1960년대 후반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가 예일대 교정에 설치한 부풀어 오르는 립스틱과 전차를 결합한 <립스틱 모뉴먼트>인데, 공공미술에 처음으로 팝적인 요소를 끌어들인 이 작품은 후에 기술적인 문제로 부동의 모뉴먼트가 되었다. 어쨌거나 피고 지는 시간까지 초스피드화한 이 기계 꽃들의 반복적인 동작은 에로티시즘과 무관하지 않지만 이들이야말로 모든 목숨 가진 것들의 공허함을 역설로 보여주는 또 다른 색즉시공의 재현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최정화는 난지도의 영향으로 1990년대 초반에 꽃으로 건너뛰게 되었고, 가상의 플라스틱 꽃 풍경이 거기서 나왔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1995년에 대형 풍선 설치작업을 여럿 했는데 이 가운데 쓰러진 로봇이 계속 일어나려고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갑갑함에 대하여>(1995)는 만화 캐릭터 마징가제트를 모델로 한 스트레스 해소 게임 <마짱>(2003)이 원전이다. 남성적인 힘의 과시와 그 스트레스가 주제인 이들은 피고 지는 풍선 꽃들과 같은 맥락이고, 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왕관을 모델로 우아한 황금빛 왕관을 만들어 수축팽창하게 한 <농담>(1996) 역시 <갑갑함에 대하여>처럼 힘과 권력의 신화와 몰락을 유머러스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최정화는 2004년 암스테르담에서 진짜 튤립 1000송이와 가짜 튤립1000송이를 전시 일주일 전에 섞어놓고 마지막 날에는 가짜만 싱싱하게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그는 플라스틱 꽃의 ‘적자생존’을 통해 인공이 자연을 대치하는 과정을 연출한 것이다. 그의 꽃들이 이처럼 움직이는 오브제라면 현대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꽃 중의 하나는 수많은 생화로 이루어진 제프 쿤스(Jeff Koons)의 대형 강아지 <퍼피(Puppy)>(1992)일 것이다. 이 작품은 후에 내부 급수 시스템을 갖춘 작업으로 발전했거니와 강아지와 꽃의 결합은 쿤스가 1988년부터 시작한 키치를 주제로 한 진부(Banality) 시리즈의 한 정점이다. 그는 일찌감치 꽃을 주제로 다루어서 공기로 부풀려진 풍선 꽃이나 스텐레스스틸 꽃, 목제 꽃 등 네오팝의 대가답게 다양한 꽃 작업을 남겼으며 돼지나 경찰관 등도 소재로 다루었다. 최정화는 최근 일본 토와다에 조화로 뒤덮은 ‘꽃말(馬)’을 설치했는데(2008) 이는 <퍼피>에 대한 대응이 되겠다. 많은 역사적인 공공조각들이 차가운 금속이나 돌로 제작되었던 것에 반해 ‘조화’라는 의외의 재료를 선택하여, 정복이나 힘을 대변해온 말의 ‘왜곡된’ 이미지를 꽃으로 바꿔놓은 작업이다.
꽃 작업은 이어서 꽃나무와 과일나무로 발전하는데 그 시초는 요코하마 조각공원에 설치된 <과일나무>(2000) 공공조각이다. <꽃나무>는 <과일나무>에서 발전하여 리옹 비엔날레에 출품
되었고(2003), 이후 우리나라에도 몇몇 곳에 설치되었는데 관람자들은 꽃이나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 비현실적인 선물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인다. 서울 외곽의 어둡고 우중충한 고가도로 아래에 형광색 꽃들이 행운의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해피투게더 다함께 차차차>(2004) 역시 이들의 변용이다. 최정화의 모든 꽃 작업에서 ‘이것은 진짜 꽃이 아니다’라는 강렬하고도 노골적인 메시지가 드러나듯이 가짜나 모조로 만연한 우리의 인공적인 삶에서 향기 나는 생화는 그야말로 아득한 추억으로 편입되고 있는 게 아닐까. 꽃이여, 네가 입김으로/대낮에 불을 밝히면/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빛깔이며 향기며/화분
(花粉)이며…나비며 나비며/축제의 날은 그러나/먼 추억으로서만 온다.
-김춘수, 「꽃의 소묘」

플라스틱 스펙터클 플라스틱은 일상성을 허락한 최초의 마술적인 물질이다, 하지만 정확히 플라스틱이 일상성을 받아들인 것은 이러한 일상성이 플라스틱을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당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모조품은 희귀한 것이 아닌 아주 흔한 것들을 추구한다. 이제 세계의 모든 광석들보다 훨씬 더 풍부한 인조적인 물질이 자연을 대체하려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인조적인 물질이 형식들을 창조하기를 원한다.
-롤랑 바르트, 『신화론』

최정화가 플라스틱으로 쌓기를 처음 시도한 것은 1993년 《성형의 봄》전에서 사각 플라스틱 바구니들 안에 트로피들을 넣은 <나의 아름다운 20세기: IQ 점프>를 통해서이다. 이후 플라스틱 쌓기를 집중적으로 선보인 전시는 1997년 10월 방콕에서 열린 그의 첫 해외 개인전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행복의 비전》이며, 마이클 조던 도깨비방망이를 쟁반 위에 쌓은 <적용과 사용>(1997),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초록 플라스틱 바구니를 쌓은 전시제목과 동일한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행복의 비전>(1997), 색색의 한과를 쌓은 <슈가슈가 ? 위험한 관계>(1997) 등이 그 예들이다. 이 가운데 최고의 작품은 단연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이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 부랑쿠시의 <끝없는 칼럼(Endless Column)>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반복적 쌓기로 미니멀리즘적인 배열을 하고 있지만 값싼 레디메이드 일용품의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좀 다른 맥락에 속한다. 이질적 요소를 개입시킨 다른 플라스틱 작업들과 달리 이것은 같은 색과 형태의 크기만 다른 바구니들로 쌓기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간단한 쌓는 동작 하나로 익숙한 일상물의 조형적 변신을 이루고 또 손쉽게 해체가 가능한 일회적 구조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 조각 작품들의 수직상승과 영구보존의 욕망을 가볍게 패러디하고 해체시키면서 존재와 부재의 경계뿐만이 아니라 무게, 부피, 질감, 균형, 형태 등의 여러 미학적 어휘들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쌓은 한시적 구조물을 파라다이스로 칭한 것은 우선 그것이 일상에 편재하는 현상을 말하겠지만 허망하고 위태로운 모든 파라다이스의 속성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 궁극적으로는 ‘모든 형상은 무너진다’는 난지도의 교훈과도 연결된다. 과연 이 초록 바구니들은 진화해서 후에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살짝 띄워지기도 하고, 또 무작위로 쌓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덩어리로 묶여서 <거품(Bubble Bubble)>(2009)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작가에 의하면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달콤한 <슈가슈가>의 관계 역시 위험한 것으로 모든 공든 탑은 행복의 비전처럼 위태로운 플라스틱 바벨탑에 속한다.
현재까지도 플라스틱은 최정화의 최고, 최적의 재료이자 가장 익숙한 작업 매체이다. 플라스틱 제품이야말로 그 형태와 색채가 무궁무진한 채로 값싸고 흔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와 연출이 가능하기에 일단 그 범속(凡俗)을 포용하는 작가에게는 문자 그대로 ‘플라스틱 파라다이스’가 된다. 그는 이 재료를 유감없이 쌓고, 꿰고, 매달고, 늘어놓고, 허물고, 그리고 무엇보다 모으고, 교환한다. 그는 또 고급스러운 파티장 천장에 유치찬란한 무지개 빛깔의 플라스틱들을 샹들리에처럼 매달기도 했는데 놀라운 점은 이것이 공간과 썩 잘 어울렸다는 사실이다. 기실 플라스틱으로 이름을 얻은 작가로는 토니 크랙(Tony Cragg)이 있다. 그가 하잘것없는 플라스틱 파편들을 늘어놓아 의미심장한 미술로 격상시켰다면, 최정화는 플라스틱을 재료로 제품화 과정에서 박제된 그 생래적인 가소성을 일정 부분 회복시키지만 본래의 형태나 용도를 변형하거나 망각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기 작업의 동기와 방법을 “예술스럽지 않은 것들을 예술스러운 곳으로 자리 옮기기”라고 했다. 값싸고 흔한 물건들이 색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즐거운 놀라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일차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적지 않은 조형적인 순간 변신의 예들은 그의 메시지가 조형적인 것으로만 함몰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1998년 1월 그의 첫 대규모 국내 개인전이었던 국제 갤러리에서의 전시 제목은《Dislocation-Relocation》이었다. 여기에서는 플라스틱 쌓기 작업 외에 왕관을 든 천사상을 공기로 부풀린 <앙코르 앙코르>와 외설적인 요소로 다소 생경한 <어머니>, 그리고 속도위반을 감시하기 위해 고속도로에 설치되었던 가짜 경찰관 마네킹들 등이 전시되었다. 그는 스스로 가짜 식품이나 꽃을 제시해왔지만 진짜 가짜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공권력으로 이동한 것은 처음인데 미디어에서 폭력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하는 당시 개봉 영화에서 따온 이 제목은 공권력에까지 가짜가 동원되는 사회 시스템을 조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때밀이 수건들을 이어 붙인 <서울, 서울>(1999)도 11은 대도시 삶에 대한 신랄한 시선을 해학으로 풀어낸 재미있는 작업이다. 살이 얼마나 질긴지/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돌비누 같은 經으로 문질러도/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主日이면/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속죄하러 몰려가는 羊들.
- 최승호, 「때밀이수건」

공공의 적
삼성 밀레니엄타워 뒤에 세워진 <세기의 선물>(2000)은도 12 인근 탑골공원의 원각사 10층 석탑을 본떠서 만든 그의 첫 국내 공공미술이다. 본래의 탑이 유리 상자 안에 박제화되자 합성수지로 제2의 황금탑을 만든 것이다. 야간 조명이 비치면 더욱 빛을 발하는 이 탑은 국보급 진짜가 지척에 있기에 현존하는 기념비나 공공조각 또는 현대적 의미의 공공미술 모두를 조롱하는 뻔뻔스러운 가짜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 ‘의사(擬似)모뉴먼트’의 포인트는 표면을 황금빛으로 칠한 것으로 이는 금을 사용한 우리의 문화재나, 서양 제단화의 금박을 흉내 낸 워홀의 유명한 <골드 마릴린>, 또는 더 나아가 일본 교토에 있는 거대한 금괴 같은 금각사까지도 상기시킨다. 이 작업은 많은 공공미술들이 당초의 건립 배경이나 장소특수성을 잃고 도심의 공간에 방치되어‘공공의 적’이 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통렬한 비틀기이지만 이 선물의 의미를 시민들이 어떻게 접수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인근 청계광장에 세워진 올덴버그의 <스프링>(2006)은 기실 이 모뉴먼트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또 다른 ‘세기의 선물’이니 말이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최정화가 공공미술을 한 것은 1995년 일본 후쿠오카유니버시아드대회를 기해 하카다역에 설치했던 드림랜드 모형을 본떠 만든 복돼지 풍선 <0.5초 동안의 행복>이 시초이다. 그의 이른바‘앞에서 사진을 찍게 만드는’작품들의 시작인 것이다. 그 뒤로 후쿠오카 도심에 다양한 형태의 칼럼들을 맥락파괴해서 쌓아 올린 <기둥은 기둥이다>(1997), 다치가와 페스티벌을 기해 지하철역에 붙인 보철한 입모습을 반복한 <러브>(1997), 도쿄 오바야시 빌딩의 벽에 각종 유리공예 캔디를 만들어 진열한 <맛?>(1999) 등의 작품들이 시도되었고, 이어서 기리시마 조각공원에 금빛 바로크 프레임을 세우고 누구든 잠시 그 액자 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한 <당신이 예술입니다>(2000)와 요코하마에서 첫 <과일나무>(2000) 조각이 뒤따랐다. 이처럼 그의 공공조각은 주로 일본에 설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기의 선물> 이후 각종 꽃이나 과일나무와 플래카드 설치작업 그리고 폐플라스틱 활용작업과 공공기관의 공사가림막이나 외벽장식 작업 등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2008년 10월 서울디자인올림픽을 기해 잠실종합운동장 외벽을 ‘세계최대플라스틱스타디움’으로 만든 <해피 투게더>이다.
그의 공공미술들은 대부분 익명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민의 욕구와 협업이 전제되는 이른바 ‘새 장르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있다. “공공미술은 미술관 밖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상정하는 관객은 사회적인 약자나 소외계층이 아니라 미술을 향유할 특별한 여유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추상적 일반이며 꽃, 나무, 로봇, 왕관, 또는 플라스틱 등 누구든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선택하기에 대상이나 장소의 제약을 덜 받는다. 따라서 그가 시도한 공공미술의 대부분은 ‘공공의 적’으로 변하는 상황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우며, 건물가림막이나 현수막 등의 작업은 한시적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공공미술은 원칙적으로 미술관 외부 작업을 가리키지만 내부라도 작업에 참여하는 주체가 ‘공공’이라면 이는 당연히 공공미술의 성격을 띤다. 최정화는 2002년 일본 가고시마의 기리시마 미술관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미술관에 플라스틱 폐품들을 가지고 와서 마음대로 늘어놓고 즐기는 <해피해피해피>를 처음 시도한 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이 작업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미술품이 아닌 물건들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와서 전시하는 작업은 역사가 짧지 않다. 예를 들어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는 일찍이 1960년대 초반에 <암시장(Black Market)>이라는 작품으로 관객들이 자기 물건을 가져와서 이미 놓여 있는 타인의 물건과 교환해 가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또 1981년에는 기존 대안공간 미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예술과 무관한 관객을 대상으로 거리와 광장, 교회 등지에서 전시할 것을 천명했던 그룹머티리얼(Group Material) 작가들이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사람들의 선택(The People’s Choice)>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이웃 주민들에게 아끼는 물건들을 가져오게 하여 그들의 기념사진, 아이콘, 소장품, 미술작품 등 다양한 물건들을 전시해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국내에서 1994년 어느 날 예술가와 일반인들이 24시간 동안 각종 매체를 망라하여 서울을 기록한 <한도시이야기 프로젝트> 작업을 10년 뒤에 재현한 <한도시이야기 2004>에서 최정화가 하루 동안 시민들이 수집한 갖가지 물건들을 받아서 전시한 것은 이 작업과 바로 연결된다. 미술과 비미술의 정의나 구분 문제는 현대미술의 해묵은 과제이며 이는 당대에서 미술과 시각문화라는 보다 크고 복잡한 관계로 확산된 지도 오래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생활의 때가 묻은 폐기물 수준의 플라스틱을 미술관으로 들여와서 마음대로 늘어놓고 전시해보는 것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특별한 체험이 된다. 최정화는 이런 플라스틱 작업들에 일관되게 ‘해피’라는 제목을 붙이는데, 이 말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미술관 전시가 대중에게는 여전히 선택적인 소수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한편 아르코 미술관의 외벽을 거리에서 수집한 불법 현수막들로 가득 덮은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2004) 역시 <해피해피>를 뒤집어놓은 작업으로, 공공미술관의 외관을 불법으로(그는 온갖 불법에 관심이 많다) 가린 이 작업은 현수막의 만화경 같은 모습뿐만이 아니라 내용들을 음미할 수 있는 것으로 개념미술이자 그에 대한 패러디가 된다. 건물의 외벽을 가려서 한시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은 물론 크리스토가 전문이지만 최정화의 현수막들은 사회 현상을 다루는 보다 직접적인 일종의 ‘정치적인’ 작업에 속한다. 한편 <해피 투게더>는 잠실종합경기장 외벽에 현수막 대신 플라스틱을 곶감 꿰듯이 주렁주렁 매달아 문자 그대로 세계 최대 플라스틱 스펙터클을 실현한 것이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들은 서울 시내 패밀리마트와 구청이나 은행을 통해 수집되었고 설치기간은 한 달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때가 낀 각종 플라스틱 폐품들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럴싸한 무지갯빛 가림막으로, 또 야간조명을 받으면 더욱 화려한 변신을 거듭했던 이 작업은 모두 재활용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색즉시공.
공공미술은 아니지만 2006년 일민미술관의 개인전《믿거나 말거나 박물관》도 14 역시 <해피해피>의 후예이다. 이 전시는 그의 전년도 일민미술대상 수상 기념전이지만 최정화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작업으로 전시를‘연출’만 하려고 했었다. 결국 그 자신의 작업도 포함되었지만 미술과 비미술을 구분 없이 섞어놓고 쌓아놓은 난장같은 전시로 다양한 종류와 계층의 작품들을 망라하여 자신이 참여했던 과거 전시의 일부, 그리고 자신이 제작한 가구와 각종 플라스틱을 늘어놓은 것은 물론이고 갤러리와 아트마트 등 실제 거래도 일어나는 공간까지 연출했다. 큐레이팅이나 전시기획 자체로 작품을 대신하는 것은 당대에 미술관학이나 민속지학에 대한 관심으로 미술가들이 흔히 시도하는 일이다. 또 작가들끼리 전시를 꾸미거나 작가가 전시기획을 하는 일은 최정화가 젊은 시절에 익히 했던 일이며, 전시디자인은 그가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다만 예정된 자신의 개인전을 대부분 다른 작가들의 작업으로 채워 넣고 미술관을 혼잡한 시장처럼 바꾸어놓은 것이 특기할 점이다. 시장이나 난지도를 미술관 안으로 통째로 가지고 들어오고자 하는 그의 꿈이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실현된 것이다. 여기서 전시를 슈퍼마켓처럼 꾸몄던 워홀이 상기되거니와 그는 1960년대 말에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된 여성의 구두 등 400여 점을 전시공간으로 옮겨와서 이들을 창고에 보관되었던 상태 그대로 전시한《아이스박스 털기(Raiding the Icebox)》전을 열기도 했다.
각종 탈(脫)미술관 전시들과 이벤트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 문화의 팽창으로 전통적인미술관의 벽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허물어지고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전은 일반 관객들의 미술관 신화를 깨는 충격요법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로댕갤러리 전시가 무산된 뒤 열린 이 전시 이후에 그의 국내 개인전은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반면,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을 기점으로 시작한 해외전은 점점 활발해져서 2000년대 초반부터는 각종 국제 비엔날레를 위시해서 유럽과 북미로 반경이 넓어졌고, 2007년에는 영국과 미국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으며, 최근 2009년 1월 말부터는 런던의 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한편 전시에 관한 한 외화내빈의 국제적인 작가 최정화는 2009년 초에 한국의 미술전문가들이 뽑은 미술인들 가운데 가장 먼저 네이버 포털의 메인 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일민미술관 전시 이후에 열린 그의 해외 전시는 플라스틱 중심에서 벗어나 불상이나 무속 상에 슈퍼맨이나 손오공 등의 가면을 씌워 희화화하거나 각종 생활용품들을 늘어놓는 난장의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2007년 말 영국의 월버햄튼(Wolverhampton) 갤러리의 《웰컴(Welcome)》도 16전과 LA 레드켓 갤러리의 《트루스(Truth)》전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가면작업이나 작은 인물상들의 시조는 <레이디엔젠틀맨>(2000)도 15인데 이들은 장군상, 보살상, 금강역사, 예수상, 사자상, 비너스, 나이키, 금복주 등 동서고금의 고전과 대중문화의 캐릭터로 확산되었고, 각종 생활용품들 즉 보온병에서 밥솥, 안경집에서 거울, 플라스틱 해골부터 장난감 로봇까지 그야말로 ‘생활사 박물관’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수많은 물건들이 서열 없이 중구난방으로 진열되었다. 이들은 과거의 질서정연한 반복적 쌓기를 반성이라도 하듯 미술관의 공간 질서를 파괴하며 만물상의 좌판을 흉내 낸다. 이 가운데는 장난감 총 옆에 총격을 당했던 워홀의 두상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이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젖힌 대선배에 대한 오마주로 읽힌다.
런던 한국문화원의 전시 《전광석화》에서는 여러 개의 파스텔조 모노크롬 화면이 번갈아 명멸하는 사각의 TV 스크린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미니멀리즘은 그가 좋아하는 미술이거니와 이들이 장식적인 동영상 화면으로 재탄생한 것은 미술과 비미술, 작품과 상품, 그리고 미술과 디자인의 구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의 작업철학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불상에 하회탈이나 로봇 마스크를 씌운다든지, 비너스 석고상에 붉은 물감을 입힌다든지, 개다리소반의 다리를 은박지로 싼다든지, 선재아트센터의 기와 담벼락을 은박지로 싸서 <세한도>(2007)라고 명명한다든지 하는 그의 탈문맥화나 재문맥화 또는 그보다는 문맥파괴 작업의 일환이다.

적과의 동침
오늘날의 작가는 과거처럼 특별한 재능과 통찰력의 소유자이기보다는 기술 좋은 장인들에게 필요한 일을 맡기는 창작감독 같은 것이라고들 말한다. 또 상업미술의 발명으로 탄생한 미술 감독은 다양한 매체와 형식, 포맷으로 작업하지만 반드시 어떤 것을 직접 접촉할 필요는 없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장인(匠人)주의의 종말을 뜻하는 미술감독은 시각예술을 재통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워홀은 이런 관점에서 상업미술가에서 멀티미디어 미술가가 된 것이 아니라 미술을 자신에게 적용한 미술감독이었다는 평을 듣는다.
워홀에 대한 이런 기술을 최정화에게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미술감독이자 창작감독이다. 그는 다방면에서 인정받는 멀티플레이어로 인테리어 디자인, 건축, 영화의 미술감독 및 세트 디자인, 그래픽 편집디자인, 전시디자인, 사진가이자 이런 모든 일을 하는 가슴시각개발연구소의 대표이다. 그러면서도 설치미술 작업과 전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패션과 가까워서 여러 패션 매장과 부티크를 설계하고, 황신혜밴드 등 대중음악의 후원자였으며, 쌈지의 각종 서적을 비롯, 문학잡지 『문학정신』과 무용전문지 『몸』을 편집디자인 했고, 몇몇 영화의 미술감독을 했으며 무엇보다 상업미술과 미술관 전시를 병행하고 있다.
이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워홀처럼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고 ‘하이엔드로우(high and low)’의 구분을 철저히 타파했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에 그가 우상타파적인 작업을 한 것은 일시적인 제스추어가 아니었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굳이 예술이라고 규정하지도 않으며 자신은 ‘거의 예술가(always almost artist)’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처럼 꾸준히 전시하는 작가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진정한’ 예술가에 속한다. 여기서 문제는 예술가임을 부인하는 그가 왜 이처럼 미술관 전시에 골몰하는가라는 의문이다. 그는 미술이란 이를 테면 ‘위장취업’일 뿐이라는 답을 내놓았는데 즉 자신의 다른 일들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술을 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적과의 동침을 뜻하며 이때 적이란 물론 라이벌이나 경쟁관계 또는 호환사업이나 연계업종을 뜻한다.
결국 미술은 그에게 일종의 애증의 대상인 것이다. 한편으로 자기는 취미로도 이 정도 하는데 전업으로 하는 너희들은 그렇게밖에 못하냐며 도발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자기는 마음 약해서 전업미술가는 못할 거라며 한 발짝 물러선다. 그렇다면 그가 미술가라는 딱지를 사양하는 진짜 이유는 제도권화하고 박제화하여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상황 때문일 것이라 짐작된다.
최정화 작업의 에센스가 충격과 도발, 그리고 가차없는 문맥 전치와 파괴의 소격효과에 있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치고 빠지는 ‘프리랜서’ 미술가로 남는 것이 최선이다. 미술은 그에게 꼭 필요한 비빌 언덕이자 야유하고 어깃장 놓을 ‘꼰대’이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 머물 수 없는 이유이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끝없이 도망쳐야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프리랜서 작가를 솜씨 나게 보이려면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베끼는 것이 더욱 유효하고, 힘들여 새롭게 창조하기보다는 기왕에 있는 익숙한 것들을 가볍게 뒤집고 엎어 보이는 재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이 놀이처럼 신기하고 또 재미있어야 하는데 이는 최정화가 그간 스스로를 넘치게 증명해온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업에 즐겁게 매혹당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멀리 보면 이런 의문도 생긴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줄타기를 잘할 수 있을까? 그의 ‘치고 빠지는’ 전략과 무관한 지평에서 미술이 비미술과 점점 경계가 없어진다면? 그만의 작업을 후배들이 힘도 들이지 않고 확대재생산해 브랜드화 시킨다면? 궁극적으로 그의 작업이 제도권화 한다면? 그의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최정화는 한때 문학에 뜻을 두었던 자칭 문학청년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편집디자인했던 『문학정신』에는 다양한 문화계의 소식과 최신 세계미술에 대한 정보, 그리고 최정화 자신의 작업사진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 하나의 축으로 인용한 최승호 시인도 표지로 등장한 바 있다. 최승호의 젊은 날의 시들은 암울한 문명비판이 주조이지만 시인은 스스로 세속화되어 있기에 세속화를 비판하는 자기모순과 이중적 복합성을 현대인의 본질로 파악했다는 평을 듣는다. 세상의 엉망진창을 인정하고 그를 객관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즐기고 부대끼는 소시민의 시점을 유지한 것인데, 이는 최정화의 작업과 관점을 대변하는 데 크게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난지도 말고도 최정화의 또 하나의 큰 사부님은 강하고 자극적인 텍스트이자 이미지 덩어리인 대도시 서울이다. 겉보기에 고뇌가 드러나지 않는 그의 작업은 언뜻 ‘즐거운 인생에 바치는 찬사’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뿌리 깊은 페이소스와 노스탤지어가 자리한다. 그것은 그가 요즘 같은 통신 환경에서 이동통신수단을 거부하는 사람이자,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도 낡고 좁은 골목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면서 곧 허물어질 듯한 너저분한 아파트를 고향으로 여기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당대의 최신 경향을 무리 없이 소화하면서도 혼란스러운 도로 정비나 간판 교체를 반대하는 보존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 역시 잘 알고 있다. 음속으로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는 이런 종류의 노스탤지어도 곧 변덕이 된다는 것을.
우스꽝스런 슬픔이 있었는데, 번개처럼 지나가버렸다. 서울에서의 일이다. 모든 것이 빨랐다. 찐 옥수수보다 팝콘이 빨랐고, 꽃보다 헛꽃의 개화가 빨랐다.//우울은 느리고/변덕은 빨라/일회용 컵라면을/훌훌 마시며 허둥거리는 서울//우스꽝스런 슬픔이 있었는데, 번개처럼 지나가버렸다.
- 최승호, 「우울은 느리고 변덕은 빨라」

강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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